옥수수 하나로.. 23년 주부의 삶에 '대반전'이 일어났다

최육상 2021. 4. 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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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3년 만에 다시 시작한 미술로 대한민국미술대전 수상까지.. 박명옥 작가를 만나다

[최육상 기자]

 아이 낳고 23년 만에 다시 시작한 미술. 박명옥 작가는 “그림을 그림으로 해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 최육상
그림만 그리던 대학 4년 생활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고 곧바로 아이를 낳았다. 집안일과 육아에 전념하느라 그림을 손에서 뗐다.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고 살아왔는데 뒤돌아보니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허무하다는 생각을 하던 어느 여행길, 새로울 것 없는 '말린 옥수수 한 더미'가 눈에 꽂혔다. 너무 아름다웠다. 습관처럼 사진에 담았다. 말린 옥수수 한 더미가, 그 사진 한 장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을까? 대학생 때 그 열정으로 돌아가 보자고 다시 그림을 시작했다. 23년 만에 잡은 붓으로 그 옥수수 더미를 그렸다. 액자를 끼우려고 그림을 화방에 맡겼다.

뜻밖에도 화방 주인이 그림을 공모전에 내 보라고 추천했다. 전혀 생각을 못 했던 일이라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작품을 접수했다. 덜컥,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에서 입선을 했다. 지난 2010년의 일이다.

2년이 지난 뒤, 다른 그림을 또 화방 주인의 추천으로 국전에 출품했다. 이번엔 한 단계 더 높은 우수상을 수상했다. 우수상을 받은 그림은 전에 입선했던 작품에서 질적인 변화를 꾀했다. '거품'이 더해졌다. 특이한 이력을 소유한 박명옥 작가 이야기다.

"방구석 작가, 세상물정 모르고 그림만 그린다"

지난 4월 1일부터 오는 5월 2일까지, 전북 순창 옥천골미술관에서 박명옥 작가의 기획초대전이 열린다. 지난 2일 오후 안면이 있던 김정훈 옥천골미술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초대전 작가를 만날 수 있느냐고. 작가가 누군지도 모른 채 무작정 미술관을 찾았다.

박 작가는 갑작스런 취재 제안에 "언론과 대화는 처음"이라며 "미리 연락하고 왔으면 자리를 피했을 텐데"라고 진심으로 당황했다. 그녀는 "살면서 언론 인터뷰도 처음이고, 말 주변도 없는데…"라면서 "저는 방구석 작가로, 정말 세상 물정 모르고 그림만 그리고 있다"고 첫 마디를 뗐다.

"사회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아무것도 몰라요. 주부 일을 하다 보니까 (그림 그리는 걸) 멈출 때가 많아요."

1981년 미대에 입학한 박 작가는 "대학 4년은 제 인생에서 진짜 놀지도 않고 그림만 그리던, 제일 행복한 때였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결혼 후 어느 날 그림을 그리려고 '이젤(그림판을 올려놓는 틀)'을 폈는데 남편이 결벽증 환자처럼 '이걸 왜 안 치우느냐?'고 한마디 해요. 그때 저는 자존심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다음부터 작업이 안 되더라고요."

아들 낳고 23년이 지나 다시 찾은 미술

그녀는 1985년 결혼해 1986년에 아들을 낳았다. 미술을 다시 찾은 건 그로부터 23년이 흐른 2009년 전후다.

"아이 군대 가고 나서야 홍대 (미술)교육원을 찾아간 거예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데생부터, 기초부터 다시 미술을 시작하자 그랬죠(웃음). 근데 첫 번째 수업에서 교수님이 한눈에 제가 미술 전공한 걸 알아보셨어요. 다음 수업부터는 바로 수채화를 하라고 말씀하셔서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하게 됐죠."

박 작가가 '국전'에서 상을 받게 된 이야기는 극적이었다. 여행 중에 '말린 옥수수 더미'가 너무 아름다워서 무심코 찍어온 사진 한 장이 그녀의 삶을 가정주부에서 작가로 완전히 바꿔놓았다.

"옥수수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100호짜리(162.2×130.3센티미터)에 크게 그렸어요. 옥수수 그림은 집에서 작업한 거라 당시 교육원 교수님도 모르시는 작품인데, 액자 만드시는 화방 아저씨가 공모전에 내 보라고 추천해 주신 게 국전(2010년)에서 덜컥 입선을 했어요." 
 
 방구석에서 세상물정 모르고 그림만 그린다는 박명옥 작가. 옥수수가 인생을 바꿨다. 문제의 그 옥수수 그림.
ⓒ 최육상
 
옥수수가 만들고 화방 아저씨가 거든 '거품' 작품

무려 23년 만에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작가의 표현대로 "덜컥"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고 규모가 큰 국전에서 상을 받았다. 그녀는 "상을 받고 좋았다기보다는 '이렇게 큰 상을 내가 왜 받았지?', '이 상을 내가 받을 자격이 있는 건가?' 충격을 받았다"고 말았다. 한동안 작품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다는 그녀가 '거품' 작품에 집중하게 된 계기도 극적이었다.

"국전 입선을 한 뒤 어느 날이었어요. 옥수수를 찌려고 무심코 물을 틀었는데, 옥수수와 부딪히며 일어나는 물거품에, 갑자기 충격을 받았어요. 옥수수를 되살릴 것 같은 오묘한 세계가 느껴지면서 한번 그려보자고 시작한 게 지금의 '거품'이에요. 거품 작품도 화방 아저씨 추천으로 국전(2012년)에 냈는데 이게 또 우수상을 받았어요."

방구석 작가의 독특한 거품 작품은 옥수수가 만들고 화방 아저씨가 거든 셈이다. 옥천골미술관 김정훈 관장은 "조그만 알갱이 거품 하나하나 표현한 작품은 미치지 않으면 그릴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대학생 때인 1980년대 유행했던, 사실을 극대화해서 그리는 하이퍼리즘(하이퍼리얼리즘ㆍ극사실주의)이 마음 속에 잠재돼 있다가 23년이 지나서 뒤늦게 세상 밖으로 나온 거죠. 사실적인 사물에 거품을 집어넣은 거예요. 물체와 거품의 관계를 다룬 작품은, 작가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23년의 시간을 건너뛰었어요. 80년대 그림을 박명옥 작가가 오늘날 새롭게 대변하고 있는 거지요."

"그림을 그림으로 해서 제가 너무 행복해요"

김 관장은 "어떻게 보면 코로나 시대에 잘 맞는 작품"이라며 "거품이, 자연적인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중화시켜버린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작품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김 관장은 이어 "제가 작가를 방구석에서 바깥세상으로 끄집어낼 때, '유명했던, 유명한, 유명해질 작가' 중에서 '유명해질 작가'라고 생각했다"라며 "박명옥 작가에게는 미래지향적인 작품 세계가 내재돼 있다"고 덧붙였다.

박 작가는 "제가 거품을 너무 힘들게 그리니까 진짜 육체적으로 병이 난다"며 "거품 한 작품에 보통 5~6개월씩 그리는 게 너무 힘들고, 제 몸(건강)을 팔아야 되는 것 같아서 갈수록 거품을 못 그린다"며 말을 맺었다.

"저는 굳이 전시회에 작품을 펼쳐놓지 않아도 되는데 관장님께서 몇 년 전부터 계속 설득하셨어요. 지금도 사람들 앞에 작품을 내놓는 게 두렵고 무섭고 그래요. 저를 위한 그림인데. 저는, 저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그림이지 보여주려는 그림은 아니에요. 그림을 그림으로 해서 제가 너무 행복한 거죠. 어떤 이유를 달고 싶지 않아요. 전 그냥 방구석에서 그리는 거거든요."
 
 전시회를 찾은 순창고 3학년 학생들.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꼽으라고 했더니 이 거품 작품 앞에 섰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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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4월 8일 보도된 내용을 추가,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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