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과 코로나 속에 40주년 맞은 '대학로의 상징'

장지영 2021. 4. 8. 14:5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르코예술극장 40주년 맞아 관객참여형 전시 '없는 극장' 선보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옆에 있는 아르코 예술극장의 외관. 올해 건립 40주년을 맞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대학로가 ‘공연예술의 일번지’가 된 것은 1981년 한국문예진흥원 문예회관(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극장)이 들어서면서부터다.

박정희 정권의 ‘서울대학교 종합화’ 계획에 따라 흩어져 있던 단과대들은 관악 캠퍼스로 옮겨갔다. 75년 1월 종로구 동숭동에 있던 문리대가 이전한 뒤 그 부지는 주택공사에 팔렸다. 주택공사는 아파트 단지를 세우려다 반대 여론에 부딪히자 부지를 쪼개서 주택지로 팔았다. 이때 나선 것이 지식인층이었다. 샘터사를 창업한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동숭동 부지 200평을 샀고, 건축가 김수근이 800평을 매입했다. 이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서울대 대학본부(현 예술가의 집) 및 부지 600평을 샀다.

특히 문리대 부지가 문화예술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김수근은 미술관과 공연장 건립을 제안하며 자신이 산 땅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 기증하고 대신 설계를 맡았다. 이에 따라 79년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에 이어 81년 문예회관이 차례로 들어서게 됐다. 마로니에 공원을 끼고 빨간 벽돌로 지어진 두 곳은 바로 대학로의 랜드마크가 됐다.

700여석의 중극장과 200여석의 소극장(지금은 리노베이션 등을 거쳐 각각 608석과 150석), 연습실, 분장실 등으로 이뤄진 문예회관이 완공된 후 샘터파랑새극장을 시작으로 바탕골소극장, 대학로극장 등 몇몇 소극장들이 문을 열었다. 이어 신촌과 명동에 있던 소극장 10여개도 옮겨오면서 대학로는 90년대 중반 소극장 30여개가 모인 연극 타운으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이후 2004년 문화지구로 지정된 대학로에는 소극장이 점점 늘어 2010년대 초반 160여개로 정점을 찍었다. 비록 소극장이 증가했어도 아르코 예술극장은 민간에 비해 대관료가 싼 편인데다 시설이 좋은 편이라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첫 번째 극장이었다. 덕분에 한국 연극사 및 무용사의 주요 작품이 이곳에서 첫선을 보였다.

그런데, 2000년대 후반부터 대학로에서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됐던 곳이 활성화 된 후 상업화로 원주민이 쫓겨나는 현상)이 진행돼 유서 깊은 소극장들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폐관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일이 잇따랐다. 2015년 3월 전통의 대학로극장(1987년 개관)의 폐관은 연극인들이 “대학로의 소극장은 죽었다”고 외치며 상여 퍼포먼스를 벌이도록 만들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지속된 위기 가운데 지난해 시작돼 지금도 진행중인 코로나19 사태는 대학로를 더욱 깊은 위기에 빠뜨렸다. 코로나19가 주로 비말로 감염되다 보니 소극장들이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연영상을 스트리밍하는 ‘온라인 공연’이 지난해부터 주목받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라이브 공연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을 뿐이다.

아르코 예술극장의 개관 40주년을 맞아 극장 안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없는 극장'. 관객은 헤드셋을 쓰고 극장 곳곳을 돌아다니도록 구성됐는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헤드셋으로 듣게 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이런 우울한 상황에서 대학로의 상징인 아르코 예술극장이 40주년을 맞아 4월부터 한달간 독특한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없는 극장’이란 제목의 이 관객참여형 전시는 100년 뒤 아르코예술극장이 폐관 40주년을 맞은 2121년을 배경으로 한다. 관객들이 헤드셋을 쓰고 홀로그램으로 재현된 100년 전 극장을 둘러보는 콘셉트다. 극장을 방문한 김수근(건축가와 같은 이름의 관객) 등 다양한 인물들이 극장과 관련해 가지고 있던 기억이나 경험을 엿들을 수 있다.

코로나19로 공연예술 장르가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에 주목한 이번 전시는 김시습의 ‘금오신화’ 속 ‘만복사저포기’에 나오는 총각 양생과 귀신 처녀의 사랑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눈앞에 실제하는 극장을 없다고 설정하고 그곳을 배경으로 가상의 사건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일종의 패러디다. 관행적인 이벤트로 40주년을 기념하는 대신 없는 극장이라는 상징을 통해 역설적으로 지금의 극장을 체감하도록 한다.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등장할 미래의 극장을 고민하도록 만든다. 정순민 아르코 예술극장 극장장은 “극장은 기본적으로 연극 등 재현의 예술을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40주년을 맞아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공연 형태 대신 극장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관객이 적극적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관객참여형 전시로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권병준이 미디어 연출을 담당하고 건축가 함성호와 최장원이 공간설치를 맡았다. 또 극작가 배해률 이홍도 장영이 이야기를 만들고, 배우 김미수 박지아 윤상화 이지혜 최희진과 소리꾼 박수범 등이 소리로 등장한다. 전시는 무료이며 관람시간은 1시간이다. 한 회당 최대 수용인원 7명으로 예약이 필수다.

장지영 문화스포츠레저부장 jyja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