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어느 CEO의 정주행

2021. 4. 8.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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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아이돌이 노래하면 무의식적으로 채널을 돌릴 정도로 데면데면하다.

그런데 어느 날 유튜브를 타고 전해진 브레이브걸스(쁘걸) 스토리가 뒤통수를 쳤다.

유튜브 댓글엔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BTS가 팬클럽 '아미'를 거느리고 있다면 '밀보드(밀리터리+빌보드)' 1위에 오른 쁘걸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K아미' 즉 현역과 예비역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등장한다.

어느 팬의 요청에 유튜브 인플루언서가 올린 롤린 공연과 댓글 모음은 쁘걸을 스타덤에 오르게 하는 불쏘시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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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금융전문기자


TV에서 아이돌이 노래하면 무의식적으로 채널을 돌릴 정도로 데면데면하다. 그런데 어느 날 유튜브를 타고 전해진 브레이브걸스(쁘걸) 스토리가 뒤통수를 쳤다. 이 걸그룹은 2017년 발표한 노래 ‘롤린’이 뒤늦게 터져 음원차트를 ‘올킬’하고 지상파 음악방송 순위 1위로 올라서면서 가요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가고 있다. 노래의 인기도 인기지만, 주식투자자 드립에나 등장하는 ‘존버가 결국 승리한다’는 결기로 무장한 쁘걸의 역주행 드라마는 사람들을 울컥하게 만들 정도다.

5년 전 그룹 2기로 데뷔한 쁘걸을 불러주는 곳은 국방TV ‘위문열차’ 뿐이었다. 이들은 62차례나 산간벽지의 군부대를 찾았다. 백령도 해병대 공연을 위해 왕복 10시간이 걸리는 뱃길에 오르기도 했다. 지금 연병장에서 흙먼지를 날리며 떼창하는 군인들에겐 롤린이 제2의 군가로 자리 잡았다. 선임이 후임에게 가오리춤을 전수하고 제대하는 전통도 생겨났다. 유튜브 댓글엔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BTS가 팬클럽 ‘아미’를 거느리고 있다면 ‘밀보드(밀리터리+빌보드)’ 1위에 오른 쁘걸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K아미’ 즉 현역과 예비역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등장한다. 어느 예비역은 “제대한 뒤 롤린 공연을 다시 보려고 국방TV를 구독할 줄은 몰랐다”며 “힘든 군 생활을 위로해준 쁘걸에게 우리가 보답할 차례”라고 했다.

코로나19로 군부대 공연마저 중단돼 더 이상 버틸 힘마저 없어 해체를 각오하던 2월 말. 어느 팬의 요청에 유튜브 인플루언서가 올린 롤린 공연과 댓글 모음은 쁘걸을 스타덤에 오르게 하는 불쏘시개가 됐다. 한 달 새 쁘걸과 K아미의 애틋함은 사방으로 전해졌다. 조회수 2000만개가 넘는 댓글 모음은 연예계의 학교폭력 사태, 고위층의 부동산 투기 등으로 지친 국민에게 ‘사이다’가 됐다. 꽃다운 20대를 무명으로 지내다 평균 나이 31세에 인기를 끈 쁘걸 4명은 취업난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됐다. 유튜브 댓글의 절반을 외국인이 올릴 만큼 스토리는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이들은 다른 기획사에 있었으면 벌써 해체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을 프로듀싱한 기획사 대표 ‘용감한 형제(강동철)’는 기다렸다. 롤린의 인기를 타고 유튜브에 재생되는 과거 방송들엔 그의 경영 철학이 배어 있다. 쁘걸의 지난날 실패를 비웃는 이들에게 그는 실력보다 인성을 먼저 따져 연습생을 뽑는다고 답한다. 쁘걸에겐 “너희는 돈 버는 상품이 아니다”고 다독였다. 돈 안 되는 위문 공연이지만 부대 분위기에 맞게 항상 다른 의상을 챙겨 보낸 데서도 진정성이 드러난다.

이는 힘든 20대를 겪은 자신의 경험이 멤버들에 오버랩됐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교 시절 가정 불화로 가출해 폭력 전과까지 있는 용감한 형제는 이렇게 살지 말자고 뉘우치며 힙합 작곡에 도전했다. 음악에 문외한인 그는 서울 종로 악기상가를 찾아 기초부터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다. 아르바이트로 뒷바라지하는 형과 함께 쪽방에 살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2년 전 CBS의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한 그는 몸조차 가누기 힘들 때 예수님 음성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한때 음악방송 10위 안에 자신의 곡이 절반을 차지하고, 저작권료만 한 해에 50억원이 들어올 정도로 성공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간증했다.

악기상가 인근에서 마주친 노숙인을 위해 도시락 봉사를 한다는 용감한 형제는 음악으로 번 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겠다고 했다. 쁘걸의 역주행은 멤버들의 열정적 끈기와 이들을 믿고 지원해 준 중소기획사 대표 용감한 형제의 ‘선한 정주행’이 함께 어우러졌기에 가능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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