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은총의 결과였을 뿐입니다"

유영대 2021. 4. 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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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교회 열전]청주 선교중앙교회 이현 목사
이현 목사


저희 교회는 2009년도에 개척을 하였고, 현재 12년째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오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소수의 성도들이 교회를 시작하면서 목회 방향을 정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하나의 교회를 세우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우면 은연중에 경쟁 심리가 생기고, 때에 따라 사람의 생각과 방법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하 월세에서 평생 신앙 생활을 합시다.’ 하는 말을 가끔씩 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정에 쌀 10Kg씩 나눠 주는 청주 선교중앙교회 교인들. 창주 선교중앙교회 제공


캄보디아 씨엠립에 개척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간식 시간을 갖고 있다.


캄보디아 씨엠립 개척 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가 어린이들과 성경 공부하는 모습.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무릎 꿇고 목회를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된 일은 하나도 없었지만 욕심 내지 않고 아껴 쓰면서 주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되었고 결실이 있었음을 보고 드립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를 시작한 첫 해에는 중국 교포 목사님과 함께 주일 오후를 중국인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중국 선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연말에는 교포 목사님이 목회에 자신감을 얻어 중국인 교회를 독립시키게 되었고, 지난 6월 25일 헌당식과 임직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2010년도부터는 캄보디아에 선교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는데 지원 방법은 캄보디아 목사님과 직접 교류를 통해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자세한 말씀 다 드릴 수는 없지만 캄보디아 문화와 환경, 그리고 삶의 질을 기준 삼아 말씀을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캄보디아 목사님 가정의 생활비를 현재까지 지원하고 있고, 큰 아들 신학교 4년 동안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몇 년 동안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쌀을 구입하여 나누어주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캄보디아는 대부분 불교 신자들이라 많은 구제 사역을 절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작은 부분이지만 교회도 하고 있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알게 하고 이러한 사역들이 전도로 이어지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성탄절에 주민 초청 잔치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서울에 있는 교회와 연합하여 예배당을 짓기도 했는데 그 교회도 예배당을 갖고 있지 않는 교회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캄보디아 사역은 우리가 감당하고,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서 감당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결과였음을 말씀드립니다.

6년 전부터는 캄보디아 교회가 다른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을 하셔서 저희 교회가 교역자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 교회를 ‘손자교회’라고 부릅니다. 씨엠립 지역에서 오토바이로 왕복 2시간 거리에 있는데 매주 캄보디아 목사님 딸이 파송을 받아 예배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 주변에 구제 사역도 지극히 작은 부분이지만 꾸준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고 만나게 해주시는 사람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을 품어왔는데 지금도 한 사람이 저희와 같이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도를 두고 교인들은 말합니다. ‘우리 교회 복덩이’ 그리고 저는 2000년도부터 교도소 사역을 지금까지 감당해 오면서 불우한 수용자들을 위한 지원 사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일을 말씀드리면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되었던 중국 교포(조선족)였는데 여러 우여곡절 끝에 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전기 감전으로 몸의 반신을 잘 사용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 몸으로 한 달에 두 번씩 드리는 예배에 꼭 참석을 하면서 2년 여 지나는 동안 믿음이 자라더니 몸도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난민 신청을 하면서 재판 상태에 있는 동안 많이 지쳐 있어서 직원들과 상의하여 제가 신원보증을 하고 일시보호해제를 해 준 뒤에 저희 교회에서 몇 달 함께 살다가 무사히 중국으로 귀국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목회 사역도 게을리 하지 않으려고 가급적 오전 중에는 열심히 말씀 묵상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영성 지도’라는 이름의 교재를 60과에 걸쳐서 만들게도 하셨고, 몇 안 되는 성도들이 먼 거리에서 모이기 때문에 새벽기도를 못하는 대신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2시부터 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12년여 기간을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였을 뿐입니다. 저는 종으로 열심히 성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지만 차선으로라도 하나님께서 심부름 시키시는 대로 하기 위해 엎드린 것 뿐입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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