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범죄가 6%를 각성시켰다..NYT "아시아계 정치세력 부상"
오는 11월 뉴욕시장 선거를 앞두고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후보는 대만계 앤드루 양(46)이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4일(현지시간) ‘앤드루 양은 아시아계 슈퍼 파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뉴욕이 반(反)아시아계 폭력의 진원지가 된 가운데 양이 선두주자가 됐다”고 전했다. 양은 최근 각종 아시아계 집회에 참여하며 증오범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초 에머슨대가 뉴욕시 유권자 6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양은 32%로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며 2위 후보를 13%포인트 격차로 따돌렸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 이후 아시아계를 겨냥한 차별과 증오범죄 문제는 미국 사회에서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과거와 다른 것은 아시아계가 차별에 맞서 한데 뭉치고, 적극적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 전역에서 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는가 하면 의회에선 한국 등 아시아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연일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뉴욕타임스(NYT)도 각종 증오범죄의 빈발과 함께 ‘조용한 소수’였던 아시아계 미국인이 정치적 각성을 통해 결집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아시아계 미국인은 그간 미국 내에서 가장 투표율이 낮은 집단으로 공동체나 옹호 단체의 참여도 저조했지만 최근 달라지고 있다”며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유권자 그룹으로 정치 세력의 형체를 갖춰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내에서 아시아계는 전체 인구의 대략 6%(약 2200만명)로 백인(60%)은 물론 흑인(13%)에 비해서도 규모가 작다. 그나마 정치적 영향력은 인구 비중에도 훨씬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무엇보다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데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교육 수준이나 소득은 가장 높음에도 투표율은 백인이나 흑인보다 10% 이상 낮았다. 인종적 다양성을 강조한 바이든 행정부에도 아시아계 장관은 한 명도 없다.
이민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았던 탓도 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대부분은 지난 1965년 미국이 아시아계 이민자 쿼터를 대폭 늘리면서 유입된 인구다. 지역에 뿌리박고 정치 집단과 연계해 강력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배경이다.
어린 시절부터 민주당 또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부모로부터 정치적 성향을 이어받는 기존 미국인들과 달리 아시아계의 대다수는 비(非)적극적인 ‘스윙보터’의 성향을 띈다는 게 NYT의 분석이다. 총기 규제와 건강 보험의 확장에선 민주당을, 개인 사업의 자유와 법·질서 강화 등의 분야에선 공화당을 지지하는 식이다.
세대별로도 목소리가 갈린다. 이민 1세대 부모와 미국에서 자란 2세대와의 가치관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계층별로도 이해가 엇갈린다.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1970~2016년 인종에 따른 소득 격차’에 따르면 이민 초창기인 1970년 당시 아시아계는 다른 인종에 비해 소득 수준이 엇비슷했지만, 2016년 기준으로는 인종 내 소득 격차가 흑인을 넘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의 경우에도 아시아계의 성공 신화 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이같은 격차를 수면 위로 끌어낸 것이란 현지 언론의 평가도 나온다.
또 전통적으로 베트남계는 공화당을 지지하고, 인도 출신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등 민족별로도 성향이 제각각인 것도 결집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이유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NYT에 따르면 지난해 연방의회 선거에 출마한 아시아계 미국인은 최소 158명으로, 2018년 선거 당시보다 15% 증가했다. 또 미국 유권자 정보 분석업체인 '캐털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선거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투표율도 역대 최고였다.
인구 비중도 갈수록 커지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려워졌다. 지난 대선에서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이었던 조지아주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0.25%포인트 차로 누르는 데도 이같은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당시 미 언론들은 조지아주의 아시아계 유권자 비율이 4년 전 1.6%에서 올해 2.5%로 크게 늘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 NBC방송의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아시아계의 63%가 바이든에게, 31%가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현 추세대로라면 이민자는 꾸준히 늘어 2050년엔 미국 인구의 9%가 아시아계가 될 예정이다.
아시아계 출신 인사들의 정계 진출도 활발해진 상황이다. 지난 대선과 함께 치러졌던 미국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선 역대 최다인 4명의 한국계 의원이 당선됐다. 대만계 역시 앤드루 양과 함께 보스턴 시장으로 미셸 우가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애틀랜타 총격사건, 각종 증오범죄는 아시아계의 목소리를 결집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민족과 계층, 세대는 달라도 미국 사회 내 크고 작은 차별은 공통으로 겪어 온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같은 차별은 지금까지처럼 개개인의 성공을 추구하는 방식으론 해소되기 어렵다는 '정치적 각성'도 동반되고 있다.
애틀랜타 교외에 사는 마이크 박(42)은 NYT에 "애틀랜타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아시아계를 향한 공격은 경제적으로 성공한다고 해서 인종적 반감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혹독한 사실을 일깨웠다"면서 "이제는 이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고 미국 내 정치적 공간을 확보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생태탕집 아들 "吳 얼굴 몰랐지만 옷은 기억난다"
- [단독]이규원 질문이 윤중천 답 둔갑…尹별장접대 오보 전말
- 이재영·다영 자매, 학폭 폭로자 고발 예고…"틀린 내용 있다"
- 與 싫다는 2030…손혜원·유시민·설훈 '입'때문만은 아니다
- [단독]신상철의 천안함 재조사, 애초 규명위는 반려했었다
- 민주화유공자 반납 김영환 "文정부, 운동권 폐족시켰다"
- 김어준 또 찾은 박영선 "文 간절한 눈빛···우리가 이기고 있다"
- 맹견에 물려 5분 끌려다닌 애견카페 알바생 "사장이 수술비 못준다더라"
- 16만원 짜리가 338만원에…코로나에 몸값 수십 배 오른 장난감
- 공시가 세금폭탄 막아줬다, 똘똘한 '한지붕 두집' 아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