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풀 꺾인 전셋값..입주 물량 부족해 반짝 하락후 반등 가능성
자고 나면 수억원씩 오르던 전셋값이 겨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집값 바로미터’로 평가받는 서울 강남권 아파트 전셋값이 꺾이면서 본격적인 ‘대세 하락’으로 접어들지, 반짝 하락 후 다시 상승세로 전환할지 부동산업계 관심이 뜨겁다.
▶강남구 전셋값 떨어져
▷45주 만에 처음으로 하락 전환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3월 넷째 주 서울 강남구 아파트 전세 가격은 전주 대비 0.02%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5월 둘째 주(-0.01%) 이후 45주 만에 처음으로 떨어졌다.
강남구는 사교육 1번지 대치동이 위치해 학군 수요가 풍부한 만큼 늘 전세난에 시달려왔다. 여기에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임대차보호법 시행이 기름을 부었다. 임대차법 시행 직후인 지난해 8월 첫째 주 전셋값이 한 주만에 0.3% 급등한 이후 뚜렷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해가 바뀌어서도 상승세가 수그러들지 않더니 연말, 연초 이사 수요가 마무리된 3월 들어 비로소 상승률이 둔화하기 시작했다. 3월 셋째 주 0.01% 오르더니 결국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일례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 전세 호가가 최근 6억~7억원대로 떨어졌다. 올 1월까지만 해도 전세 매물이 10억원에 실거래됐지만 몇 달 새 가격이 급락했다.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 84㎡ 전세 실거래가도 지난해 말 18억원에서 올 3월 15억5000만원으로 급락했다. 호가는 15억원 선이다.
강남권 다른 지역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송파구 전셋값은 전주 대비 0.01% 떨어져 지난해 4월 첫째 주(-0.01%) 이후 50주 만에 처음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총 9510가구 대단지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84㎡는 한때 전세가가 13억원까지 치솟았지만 최근 10억원 안팎으로 떨어졌다.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 전용 59㎡ 전셋값 역시 8억원 선에서 6억원대로 하락했다. 서울뿐 아니라 경기도 일부 지역도 전셋값이 하락했다. 성남 수정구, 하남 전셋값이 각각 0.27%, 0.22% 떨어져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전셋값이 떨어지다 보니 전세 매물도 점차 쌓여가는 모습이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3월 25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3796건으로 1월 말(2만900건) 대비 14%가량 늘었다. 전세 매물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수요 대비 공급이 넘쳐난다는 의미다.
▶전셋값 하락세 본격화?
▷청약 대기 수요 몰려 상승세 전환할 듯
고공행진하던 전셋값 상승세가 주춤한 배경은 뭘까.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단기 급등한 고가 아파트 중심으로 전세 매물이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전세 매물이 씨가 말라 높은 가격에도 속속 거래됐지만 대단지 아파트가 입주하면서 수요 대비 공급이 급증한 영향이 크다. 전세 거래가 끊기자 자금 사정이 급한 집 주인들이 가격을 낮추면서 전셋값이 서서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전셋값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하락세를 보일까.
서울 강동구 등 일부 지역 입주 물량이 넘쳐나면서 국지적 하락세가 나타났을 뿐 대세 하락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일례로 서울 강동구에는 2월부터 상일동 고덕자이(1824가구)와 강동리엔파크14단지(943가구), 강일동 강동리버스트8단지(946가구) 등 대단지가 잇따라 입주하면서 강동구뿐 아니라 인근 송파, 강남구 전셋값이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입주 물량이 적은 동작, 노원, 금천구 등 비강남권 전셋값은 가파른 오름세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3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562만원으로 집계돼 사상 처음으로 6억원을 돌파할 정도로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임대차법 여파로 전셋값이 짧은 시간 내 워낙 많이 올라 일시적으로 주춤한 양상을 보인 듯싶다. 세입자들이 웬만해서는 전세 계약을 연장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신규 전세 물량이 나오기 어려워 전셋값은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주택 수급 불균형도 전세 시장 불안 요인으로 손꼽힌다.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급감해 전세 수요 대비 공급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우려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분기 1만1435가구에서 2분기 6096가구로 급감한다. 3분기, 4분기 입주 물량을 합해도 총 3만여가구로 지난해(4만9181가구)보다 2만가구가량 줄어든다.
전국으로 범위를 넓히면 2분기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4만8089가구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32% 감소한다. 2012년 2분기 이후 9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이다.
내년 이후가 더 문제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등 잇따른 정비 사업 규제로 서울 재건축, 재개발 사업이 지연되면서 신축 전세 물량 공급이 급감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가 ‘전월세 금지법’을 시행하면서 전세 공급은 더 줄어들 우려가 크다. 전월세 금지법 시행으로 집주인은 아파트 청약에 당첨돼도 전월세를 놓지 못하고 최장 5년 간 의무 거주해야 한다. 시세차익을 노린 부동산 투기를 막자는 취지지만 이른바 ‘입주장’ 효과가 사라져 전세난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입주장 효과란 준공된 아파트에서 대규모 입주가 이뤄지면 일시적으로 매매, 전세 매물이 늘어나 인근 지역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는 효과를 말한다.
이뿐 아니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데다 공시 가격 인상으로 보유세 부담이 급증한 점도 변수다. 집주인들이 세금 부담을 월세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전세 공급이 급감할 우려가 크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서울 아파트 월세(전용 95㎡ 이하 기준)는 전년 대비 4.93% 뛰었다. KB국민은행이 2015년 말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고 상승률이다. 게다가 양도세 부담을 줄이려 집주인이 직접 실거주하는 사례가 많아진 점도 전세 공급 감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평가다.
한껏 높아진 매매 시장 문턱을 넘지 못한 실수요자들이 전세로 대거 몰린 것도 눈여겨볼 만한 요인이다.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15억원 초과 고가 주택 주택담보대출을 아예 금지했다. 9억원 초과 주택도 대출 가능 금액이 줄어 매매가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실수요자들이 주택 매매를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전세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었다. 분양가상한제 시행으로 ‘로또 분양’이 늘어나자 청약을 노린 대기 수요가 몰리면서 인기 지역 전셋값이 급등할 가능성도 높다.
“정부 대출 규제로 갭투자가 어려워진데다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을 받기 위해 하남, 남양주 등 인기 지역 전세 수요가 몰리면서 전셋값은 당분간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이 급감하는 서울, 경기도 전셋값은 올 한 해 10% 이상 오르며 급등할 것이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전셋값 안정을 위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처럼 신규 주택 공급을 막는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태욱 동양미래대 경영학부 교수는 “재건축, 재개발 규제를 풀어 서울 도심 역세권, 명문 학군 지역 등 수요가 몰리는 곳에 꾸준히 공급을 늘려줘야 한다. 단기간 내 주택 공급에 한계가 있다면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쉽게 내놓을 수 있도록 각종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도 절실하다”고 말한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3호 (2021.04.07~2021.04.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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