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뜰에 벤치 놨을 뿐인데.. 애들이 보여준 놀라운 변화

이도경 2021. 4. 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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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교육 대전환 프로젝트 2021] ① 전주교대 전주부설초 '공간혁신'
전주교대 전주부설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지난달 23일 쉬는 시간에 교실과 연결돼 조성된 광장에 나와 책을 읽고 있다. 기존의 학교가 복도로 활용하던 공간을 이 학교는 6학년 3개 학급과 교사 연구실이 둘러싸고 있는 실내 광장으로 만들었다.


다른 학생보다 우월하다는 뜻의 우등생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 공부 잘하는 학생이며, 곧 시험 잘 치는 학생이었다. 교과서만 달달 외워선 도달하기 어려운 수준이 있다. 진짜 ‘선수’들은 문제를 낸 사람의 의도를 꿰뚫어 본다. 그리고 그의 생각을 거스르지 않고 원하는 정답을 골라낸다. 학교는 이들에게 높은 점수로 후하게 보상해왔다. ‘장래가 촉망되는’이란 수식어도 붙여줬다.

평가 현장에선 출제자와 다른 생각은 ‘틀린 생각’이다. 출제자의 의도와 다른 독특한 생각을 하는 학생은 ‘너 커서 뭐 될래’란 말을 들어야 했다. 촉박한 시험 시간은 기계적인 문제 풀이를 요구하며 내적 갈등은 허용치 않는다. 상상하는 아이는 순응하는 아이를 이기기 어렵다. 어린 괴짜들은 개성을 삭제하길 강요받고 늘 저평가됐다. 청소년기 12년, 이런 공교육 시스템을 거쳐 표준화된 인재들이 양산돼왔다.

적당한 지식과 근면성, 적당히 체제 순응적인 인재를 양산하는 교육 시스템은 산업화 시대에는 유효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틀이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 등은 이런 표준화된 인재들을 빠르게 직업 세계 밖으로 밀어낼 예정이다. 직업 세계의 지각변동과 눈앞에 닥친 ‘인구절벽’ 속에서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국민일보는 ‘미래교육 대전환 프로젝트 2021’이란 이름으로 연말까지 미래교육의 방향을 짚어보는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학교 단위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움직임도 있고, 정부가 이끄는 흐름도 존재한다. 코로나19가 가속화한 측면도 있다. 이런 변화의 씨앗을 포착하고 공론의 장으로 이끌기 위해 기획 기사를 마련했다. 미래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한 의미 있는 힌트들을 발견하길 기대해본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시작되자 초등학생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 교실에서 쏟아져 나왔다. 한 무리는 광장으로, 다른 무리는 뒤뜰로 향했다. 마음이 급한 몇몇은 친구들 사이를 헤집고 달린다. 뒤뜰은 교실 왼편의 문을 열면 모습을 드러낸다. 뒤뜰 한쪽에는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텃밭이 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벤치에 앉아 봄볕을 즐기기도 하고 나무 사이를 거닐며 선생님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한 남학생이 하늘을 보려고 벤치에 드러눕자 여학생들이 다가와 “민폐”라며 옥신각신했다. 남학생이 ‘탁탁’ 털고 일어나자 일으켜 세우던 친구들이 웃으며 어깨동무했다.

교실 오른편은 유리로 된 폴딩 도어가 벽 역할을 하고 있었다. 폴딩 도어 너머 광장에는 좀 더 일찍 쉬는 시간을 맞은 아이들이 교실 안을 들여다보며 친구들을 기다렸다. 폴딩 도어가 열리자 교실과 광장의 경계가 사라지고 아이들이 뒤섞였다. 교실에 홀로 남겨진 아이는 없었다. 지난달 23일 찾은 전북 전주교대 전주부설초등학교(전주부설초) 6학년 학생들의 쉬는 시간 모습이었다.

전주부설초는 공간혁신 1년 차 학교다. 공간혁신이란 학교 공간을 직접 쓰는 학생·교사의 의견을 반영해 설계한다는 개념의 정부 사업이다.

전주부설초 학생들이 지난달 23일 교실과 맞닿아 있는 광장에서 장난스럽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올해부터 공간혁신이 적용된 이 학교에서는 복도로 쓰이던 공간을 바꿔 실내 광장을 조성했다. 학교 관계자들은 공간을 유연하게 활용하면서 학생들이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이다. 공간 설계뿐만 아니라 운용까지 학생 주도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과거 시설 개선사업과 다르다. 천편일률적인 일자형 복도식 구조에 학생을 욱여넣는 게 아니라 공간을 학생에게 맞춘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도 교육적 효과가 있어 학교 현장에서 호응하는 상황이다.

이 학교는 지난해 사업에 선정돼 공사를 마치고 올해부터 6학년 전체(3개) 학급에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5학년이 공간을 꾸몄고 이들이 올해 6학년으로 올라와 자신들이 만든 공간에서 지내고 있다.

특징은 개방성과 유연성이다. 먼저 복도를 광장처럼 조성했다. 광장을 3개 학급과 교사 연구실이 둘러싼 구조다. 광장은 아무것도 채우지 않고 학생 몫으로 남겨 놨다. 지금은 학생들이 이따금 이동식 탁구대를 놓고 즐기고 있다.

공간의 개방성과 유연성은 수업에서 더욱 효과를 발휘한다. 짝과 둘이 조를 이루거나 5~6명을 모둠으로 묶는 방식, 폴딩 도어를 개방해 옆 반 혹은 전체 학년이 함께 공부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형 수업이 가능해졌다. 학교 안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학교 인근에는 전주 한옥마을, 전주향교, 서학 예술촌이 있다. 현재는 코로나19 때문에 어렵지만 지역 사회의 인프라를 학교 교육에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공간의 개방성 덕분에 교사와 지역의 전문가들이 가르치는 내용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수업을 시도할 수 있다. 현재는 경제교육의 일환으로 교실 상거래 수업이 6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 중이다.

학생들은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동물조련사가 꿈이라는 박모양은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 쉬는 시간에 교실에 머무는 편이었는데 다른 반 아이들과 나가 햇볕도 쬐고 좀 더 활동적으로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양모양은 "친구들과 더 친해졌다. 예전에 남자애들이 내 성씨를 가지고 놀리는 게 유치하고 이해되지 않았는데 얘기를 많이 나눠보니 친해지려고 그런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환 교장은 보이지 않는 변화에 주목하라고 강조했다. 탁 트인 공간에서 폭력성이 감소하고 교우 관계가 좋아지는 건 부수 효과다. 공간의 유연성이 사고의 유연성으로 이어진다는 게 이 교장의 주장이다. 틀에 박힌 공간에서 틀에 박힌 수업으로 중요한 청소년 시기 12년을 보내면 결과는 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전주 한옥마을에서 14시간 동안 프로젝트형 수업을 진행했다. 한옥을 꼼꼼히 공부하면서 3D프린터로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 모든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은 "살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 교장은 "아이들 중에 누구는 건축가, 누구는 문화재 전문가가 될 것이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한옥의 아름다움'을 심었다. 나중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모른다. 한옥을 응용하는 세계적 건축가가 나오지 말라는 법 있는가"라며 "예산상의 어려움으로 지금은 6학년만 혜택을 보지만 저학년은 놀이 중심, 3~4학년은 체험 중심, 5~6학년은 수업 중심으로 공간을 설계해 혁신을 촉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주=글·사진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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