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내 돈 300!" 리딩방에 속은 경수씨, 고난이 시작됐다
▒ 글 싣는 순서
① 괴롭힘은 이렇게 시작됐다
② 금감원이 물었다 “텔레그램이 뭔가요?”
③ “환불요? 줄 돈 없어요” 주린이 울린 수법들
④ “방치하면 당신도 주가조작 공범 될 수 있다”
경수씨는 아침을 고대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스탁에서 운영하는 주식 리딩방에 가입한 첫날이었다. 오전 9시 주식시장이 열리기 직전, 부푼 기대감에 경수씨는 자신의 VIP 방 입성을 안내했던 매니저의 메시지를 반복해 읽었다.
“저희가 매일 회원님들께 5~10%씩 수익을 내드리고 있어요. 1000만원 투자해서 하루 5%씩만 수익을 얻더라도 한 달이면 수백만원, 1년이면 수천만원을 벌 수 있어요.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정식 업체인 만큼 저희만의 투자 기술이 있답니다.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중도 해지하시면 되죠. 일주일 이내면 일별 사용료만 빼고 100% 환불해드립니다. 손해 보면 환불해드리는 특약도 계약서에 있어요.”
15개월 동안 서비스를 받는 조건으로 낸 가입비 현금 300만원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업체의 VIP 리딩방은 텔레그램 메신저에 개설돼 있었다. 업체는 주가 상승 예상 종목을 지목하고, 매수·매도 가격과 타이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의 ‘리딩’을 제공했다. 경수씨를 포함한 2000여명의 회원은 텔레그램 대화방을 진두지휘하는 자칭 ‘단타 기법 최고 전문가’의 신호를 조용히 기다리다 똑같이 따르면 되는 거였다.
실전에 돌입한 경수씨 앞에 첫 지시가 날아왔다. “AA 종목 모니터링하겠습니다.” 개장 이후 5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다. 주가가 오를 낌새가 있으니 매수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였다.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으로 눈을 돌려 그들이 찍어준 AA 종목을 검색하려는데 곧바로 1900원에 매수하라는 사인이 떨어졌다. 불과 5초 만이었다. 경수씨의 손가락이 마음만큼이나 급해졌다. 종목을 찾아 가격과 수량을 입력해 뒤늦게 매수 버튼을 눌렀지만, AA 종목의 주가는 이미 4% 넘게 올라 있었다.
‘미체결’ 내역을 바라보며 가격 정정을 고민하는 순간, 텔레그램 알람이 다시 시끄럽게 울렸다. “수익 났으니 절반 매도합니다” 업체의 다음 지시였다. 또다시 5초 후 “상승 시도 나오고 있는데, 더 올라가든 말든 욕심 없이 전량 매도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왔다. 그리고 3초가 지나자 “수익 다 챙겼고 다른 종목 찾아보겠습니다” 메시지가 연이어 떴다. 불과 1~2분 사이 리딩이 끝난 셈이다. 당황한 경수씨는 황급히 AA 종목 주문 취소 버튼을 눌러댔다.
두 번째 도전은 5분 뒤에 시작됐다. 절치부심한 경수씨는 BB 종목을 4만8500원에 매수하라는 지시에 곧바로 대응했고, 100주 매수 체결까지 성공시켰다. 동시에 몇 초 동안 BB 종목의 주가가 1~2% 상승하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드디어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찬 그는 매도 지시를 기다렸다.
그러나 뿌듯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BB 종목의 주가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하락세로 반전했다. 1~2분 사이에 주가가 10% 이상 떨어지자 리딩방에는 해당 종목을 매수가였던 4만8500원에 다시 매도하라는 공지가 뒤늦게 올라왔다. 경수씨는 주가가 이미 바닥으로 꼬꾸라진 뒤에야 전량 매도를 할 수 있었고, 12%(58만2000원)의 손실을 봐야 했다.
☆☆스탁의 리딩은 늘 이런 식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초 단위 거래 방식이 계속됐다. 업체는 이미 급등세를 보이는 종목을 한두 박자 느리게 알려줬다. 그럴 때마다 경수씨는 추격 매수를 노렸다가 ‘상투’(주가변동의 폭이 클 때 가장 고가권의 주가 수준)를 잡아 돈을 잃었다. 또 업체가 매수 사인을 보낸 종목 주가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거나, 매수 지시 후 급락해 손실을 본 경우도 많았다.
가입 4일 만에 200여만원의 손해를 본 경수씨는 결국 리딩방을 탈퇴하기로 했다. 계약서를 작성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환불 과정은 복잡할 것이 없어 보였다. 4일 치의 사용료 정도야 ‘인생 수업비’ 정도로 여기며 깔끔하게 지불할 마음이 있었다.
☆☆스탁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어졌다. 이어 “문의가 많아 카카오톡으로 연락 달라”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업체는 이상하게도 오로지 문자 대화만을 고집했다.
경수씨가 담당자에게 환불을 요청하자 업체 측에선 엉뚱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가입비로 300만원을 내셨는데 그중에 저희 VOD(동영상) 자료 가격 259만원이랑 일 사용료를 제외하면 38만원 정도 돌려받으실 수 있겠네요”라고 했다. 난데없이 등장한 VOD의 존재에 놀란 경수씨가 “그런 걸 산 적도 본 적도 없다”고 반문하자 업체 측 담당자는 “계약서에 동의한 증거가 있고 녹취도 다 있다”며 당당하게 받아쳤다.
경수씨는 부리나케 계약서를 살폈다. 가입 당시 카톡으로 받은 전자문서 형식의 계약서였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된 환불 특약 약관을 읽어 내려가던 중 ‘특약 가입 시 VOD 자료를 구매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쓰인 한 문장이 눈길을 붙잡았다. 서비스 종료 후 업체의 리딩을 따랐는데도 손해를 볼 경우 100% 환불이 가능하지만, 해당 특약에 동의하면 동시에 259만원짜리 VOD 자료를 구매하는 데도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었다. 100% 환불이 가능하다는 설명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경수씨는 스마트폰에 자동 녹음돼 있던 ☆☆스탁 매니저와의 통화를 재생시켰다. 매니저는 거의 숨 쉴 틈 없이 말을 내뱉었고, 그걸 여러 번 들은 뒤에야 VOD라는 단어가 숨어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매니저는 내내 두루뭉술하게 말하면서도 ‘전액 환불’ ‘7일 이내 환불’ 등의 몇몇 단어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디지털 콘텐츠 자료를 제외한’이라는 덫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 아마 그때로 돌아가 똑같은 설명을 다시 듣는다 해도 문제가 뭔지 모른 채로 넘어가고 말 거라고 경수씨는 생각했다. 매니저가 경수씨에게 한 말은 이랬다.
그럼 ☆☆스탁이 제공했다는 VOD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한참을 고민하던 경수씨는 가입 직후 매니저가 VIP 방 연결 링크를 주겠다며 만든 텔레그램 대화방 하나를 클릭했다. 대화방에는 ‘☆☆스탁 VIP 매수 매도 타점 잡는 요령. 매매 시작 전 필수 확인하셔야 한다’며 보내온 포털 블로그 링크가 남겨져 있었고, 뒤이어 ‘☆☆스탁 동영상 강의 1, 2’를 제목으로 한 압축파일 두 개가 아무 설명 없이 덩그러니 전송돼 있었다. 경수씨는 업체가 말한 VOD가 이거구나 그제서야 알았지만, 계약서에 명시된 ‘주도선정기법’ ‘세력매집봉 탐색기법’이라는 표현은 어디에도 없었기에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경수씨는 “매니저로부터 관련 내용을 사전에 고지받지 못했으니 이건 불공정 계약입니다. 만약 알았다면 가입조차 안 했을 거예요. 환불 안 해주시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라며 업체 측에 따져 물었다. 그러나 업체 측 담당자는 아까보다 더 자신 있는 말투로 말했다.
“우린 금감원에 신고된 합법적인 업체입니다. 다른 소송에서 이긴 사례가 많으니 할 테면 한번 해보시고요. 소비자원, 금감원, 방송 인터뷰, 민사소송 등등 고객님 자유니 저희에게 알릴 필요 없이 마음대로 하세요.”
경수씨의 고난은 이제 시작이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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