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타고 조선시대로.. '자산어보'가 부린 마법

장혜령 2021. 4. 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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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차가운 흑백 필름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숨결, 영화 <자산어보>

[장혜령 기자]

 영화 <자산어보>포스터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정약전(설경구)은 순조 1년 신유박해로 동생 정약용(류승룡)과 귀양살이하게 된다. 한양에서 가장 먼 곳인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은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를 만나며 고무된다. 양반이지만 호기심이 많아 낯선 문화와 장소라고 해도 연구에 거리낌이 없던 약전은 어느 날 처음 보는 바다 생물에 매료되고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음을 알기에 흑산도에서 나고 자라 바다 생물에 해박한 창대의 도움이 필요했다. 대역 죄인을 도울 수 없다고 생각한 창대는 단박에 거절하지만, 약전은 창대의 지적 호기심을 이용해 거래를 제안한다. 거래 조건인즉슨, 자신의 지식과 창대의 물고기 지식과 맞바꾸자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면서 서로의 스승과 제자가 되어 나이와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을 나누게 된다.

'배움'을 통해 나눈 진한 우정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정약전의 <자산어보> 서문에 등장하는 창대는 실존 인물에 살을 덧붙인 복합적인 인물이다. 책을 구하지 못해 같은 책을 읽고 또 읽어 닳아 없어질 정도로 깊이 학문에 정진하는 뚝심 있고 성실한 인물이다. 그런 창대의 성정을 약전은 일찌감치 파악한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브로맨스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배움을 통해 친구가 된다. 서자였던 창대는 신분 탓에 벼슬에 나가지 못해 한계에 부딪힌다. 어릴 때는 버림받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공부했고, 성인이 돼서는 사람 노릇하고 싶어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출세가 목적이 아니었다. 부조리에 맞서기 위해 성리학을 공부하고, 출세 가도에 끼어야 할 이유를 찾아갔다. 창대가 꿈꾸는 나라를 위한 저항은 기존 체제 속으로 정면돌파하는 것이었다.

반면, 약전은 배움은 나누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지식은 평등하게 누리는 거라 믿었다. 그래서 성리학과 서학을 접목하는 시도, 여러 학문의 탐구도 서슴지 않는 개방적인 면모를 보였다. 성리학만이 진리라 믿는 지식인과 달리 백성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모색하는 학자다.

책 속 글만 읽느라 세상을 익히지 못한 점을 후회하며 다양한 학문의 융합을 꿈꿨다. 지금까지 사람에 대해 알고자 했던 공부를 잠시 멈추고 명징한 사물을 공부해보려 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시의성 있는 메시지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두 사람의 신분 차이만큼 목적과 이해가 달라 티격태격한다. 하지만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은 같았다. 먹고 자는 시간을 줄여 무언가에 몰두할 때 느끼는 쾌감,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위해 정진하는 자세, 알고 싶어 하는 열정까지 닮았다. 오랜 시간 버티기만 하는 공부, 암기식과 주입식 교육, 명문고 타이틀에 갇혀 자아성찰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을 향한 날카로운 지적도 느껴진다.

영화는 여러 번 분위기 반전을 시도한다. 진중하다가도 해학이 돋보이고, 날카롭다가도 따스한 품을 내어주는 드라마적 서사가 짙다. 127분 동안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 흑산도에 있었던 것 같은 경험까지 얻을 수 있다. 아름다운 남도의 자연은 무채색임에도 눈이 아릴 정도로 선명하게 그려지고,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노고와 해학이 깊게 배어 있다. 마치 화선지 위에 수묵화를 보는 듯한 편안함, 그와 어울리는 시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다.

영화 속 약전과 창대, 약전과 가거댁의 케미도 인상적이었지만, 정약용과 편지를 주고 받는 대목에선 빈센트와 테오 반 고흐 형제의 아련함이 느껴진다. 형제 중에서도 각별했던 두 사람은 흑산도와 강진으로 갈라지며 생이별을 하게 된다. 유배지에서 서로 저술에 힘쓰면서 부지런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각별함이 전해지는 대목이 많았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은 물론, 책에 대한 견해를 해주거나, 시를 선보이기도 했다.

<자산어보>는 이준익 감독의 장기를 한데 모은 종합선물 세트 같다. 실존 인물을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상상에 빗대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만드는데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이번에는 <동주>에서 시도했던 흑백과 <사도>, <박열>에서 선보인 깊이 있는 인물 탐구가 시너지를 이루며 정점에 다다랐다.

다 보여주지 않고 절제하는 흑백톤에서 오롯이 인물만을 집중하게 만드는 마법이 펼쳐진다. 역사적 고증과 허구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역사 지식, 인물 탐구, 천혜의 자연, 현대적 메시지까지 두루 섭렵할 수 있다. 약방의 감초처럼 류승룡, 정진영, 김의성, 방은진, 조우진, 최원영 등 작은 역할도 가리지 않고 참여한 배우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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