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몰래 버린 박스 안..탈진한 강아지들 [개st하우스]

이성훈 2021. 4. 3. 09:3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경기도서 발견된 박스 속 유기견들
CCTV 피해 버린 교묘한 원정 유기
탈진한 채 발견..3개월 셰퍼드 달이 사연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움직임이 없어. 그래도 열어봐야겠지?”
“아, 여러마리야. 어떻게 해.”
“얘는 움직임도 없어…내가 미안해. 너희를 어떻게 하니?”

지난 2월 21일 일요일, 서울 은평구의 외딴 버스정류장에서 웬 종이 상자가 발견됐어요. 나일론 끈으로 단단히 봉인된 상자의 뚜껑에는 ‘강아지 키우실 분 가져가라’고 적혀 있었죠. 상자 안서는 아무런 소리나 움직임이 없었다. 이런 불길한 물건을 건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외면하는 그때, 한 커플이 다가왔어요. 근처를 산책하던 회사원 백민우(33)씨와 그 여자친구였죠. 민우씨는 여자친구에게 촬영을 맡기고 수상한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는 “키우고 말고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 안에 든 게 살아있을까, 이런 걱정만 했다”며 그 당시 다급했던 심정을 전했지요.

박스 속에는…탈진한 작은 셰퍼드들

"내가 다 미안하다, 얘들아" 상자 속에는 탈진한 새끼 셰퍼드 2마리가 들어 있었다. 제보자 제공

안에 담긴 것은 희망일까, 아니면 절망일까. 민우씨는 상자에 얽힌 매듭을 풀고 조심스레 박스 뚜껑을 들췄습니다. 열린 박스 틈새로 새벽 공기가 새어들어갔지요.

잠시 뒤, 작은 갈색 주둥이가 나오더니 코를 킁킁댔어요. 생후 2개월된 셰퍼드였죠. 박스 안에 든 것은 2마리였어요. 그 중 한 마리는 굶주림에 쓰러져 있었는데요. 탈진해버린 이 친구가 오늘의 주인공, 보름달처럼 눈이 휘둥그런 수컷 달이입니다.

제보자는 강아지들에게 급히 물을 먹이고 곧장 동물병원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달리는 택시 안에서 강아지들은 마신 물을 모두 게워냈습니다. 물을 급히 마셔서 탈이 난 것인데, 구조한 동물이 탈진했을 경우에는 물을 축인 헝겊을 제공하는 것이 더 낫답니다.

구조돼 돌봄을 받는 셰퍼드들. 제보자 제공


다행히 셰퍼드들은 잔병없이 모두 건강했어요. 수의사는 생후 2개월된 강아지들이며 사료 급여와 예방접종 등을 안내했지요. 마땅한 보호공간이 없던 제보자는 급한대로 본인 원룸으로 강아지들을 데려갑니다.

민우씨는 7평짜리 작은 원룸에 살고 있어요. 한 마리면 몰라도 두 마리를 돌보기에는 좁은 공간이었죠. 급히 입주자 단톡방과 지인들에게 ‘어린 유기견을 구조했는데, 임시보호나 입양처 마련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는데요. 고맙게도 한 친구가 그날 바로 방문했고 박스 틈새로 코를 내밀었던 발랄한 녀석에게 ‘보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입양을 결정했답니다.

"상자 속 탈진했던 멍뭉이, 이렇게 회복했어요" 구조자의 7평 원룸에서 보호 중인 3개월령 셰퍼드 달이 모습.
북한산 사이에 두고…버려진 박스는 또 있었다

사실 버려진 셰퍼드는 달이네 말고 또 있었어요. 달이가 구조된 그날 20㎞ 떨어진 경기도 의정부에서도 같은 수법의 유기견 박스가 발견됩니다.
달이네가 버려진 그날, 20km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셰퍼드들이 구조됐다. 견종, 상자에 적힌 글씨체, 끈을 묶은 방식까지 같아 동일범 소행으로 추정된다. 제보자 제공


박스에 적힌 글씨체, 끈을 묶은 방식도 유사한데다 그 안에도 2개월령 셰퍼드 두 마리가 들어 있었지요. 정황상 원정유기가 틀림 없어 보입니다. 버려진 장소의 CCTV 영상을 확보해보려 했으나, 범인은 치밀하게도 카메라가 없는 곳만 골라서 박스를 버렸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요. 이 박스를 구조한 지역 주민은 “안정적으로 입양을 기다릴 수 있는 임시보호처를 인천에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영리한 3개월령 셰퍼드, 달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구조 1개월이 지난 지금, 셰퍼드 달이는 구조자 집에서 사회화 교육을 받고 있어요. 손바닥만 했던 달이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민우씨는 매일 감동을 느낀다고 해요.
"밥, 여기에 주세요" 사료를 담을 때면 얌전히 앉아 기다리는 달이 모습. 원하는 배식 자리를 주둥이로 툭툭 건드릴 만큼 영리하다.


“얘가 크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해요. 처음 데려왔을 때는 손바닥 크기였는데 지금은 더 커져서 침대도 올라오려고 콩콩 뛰어다니거든요. 하하, 제가 생명을 살렸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기분이 좋고요.”

달이는 영리한 셰퍼드 믹스랍니다. 동물 행동전문가들은 셰퍼드의 지능을 보더콜리, 푸들, 리트리버 등과 더불어 톱5에 꼭 넣지요. 국민일보는 지난달 25일 서울 은평구의 임시보호처에서 직접 달이의 행동을 관찰했는데요. 배변 패드 명중률 100%에, 1시간 만에 앉아·기다려를 척척 배웠습니다.

처키로 변신한 달이. 달이는 산책할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10초만 기다리면 먹을 걸 준다니까, 인간들은 단순해~" 달이는 20분 만에 '기다려' 교육을 숙지했다.


수의사 설명에 따르면 달이는 12~14㎏의 중형견이 됩니다. 민우씨는 계속 달이를 기르고 싶지만, 7평 원룸보다 더 나은 입양처를 기다리고 있어요. 달이는 얌전하지만 애교가 많은 성격이랍니다. 영리한 중형견을 기르고 싶은 분들의 연락을 기대합니다.

*박스 속에서 구조된 꼬마 셰퍼드, 달이의 가족을 기다립니다.

-생후 3개월, 체중 4.5㎏ 셰퍼드 믹스
-수컷, 예방접종 3/5차 완료
-영리하고 애교 많은 성격
-실내 배변 가능하며 실수 없음.
-서울 은평구 인근에서 임시보호 중

*달이의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아래의 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 http://naver.me/5HSroCxY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