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 냄새" 탄성 부른 임진왜란 두 마님..시신은 방치, 왜
2010년 발굴된 16세기 두 여성 미라
복식 수거 후 부검실에 '사실상 방치'
관련 법 공백.. "개정작업 서둘러야"
“함부로 남의 무덤을 파헤친 거 아니냐” “복식을 벗겨낸 뒤 시신들은 어떻게 한 거냐”
지난달 27일 중앙일보의 〈"미라 냄새다" 고고학자들 탄성···나란히 발견된 임진왜란 두 마님〉기사가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자 쏟아진 댓글들이다. 기사는 최근 문화재청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한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총 96건 124점)’과 관련해 2010년 두 무덤의 발굴 상황을 묘사했다. 당시 16세기 임진왜란 전에 살았던 한 사대부의 전처와 후처로 추정되는 여성 시신이 미라 상태로 각각 발견됐다. 이들 시신은 이후 어떻게 처리됐는지, 이 같은 옛 무덤의 발굴 원칙은 무엇인지, 전문가 설명을 통해 알아본다.
(※본 기사의 하단엔 완전한 형태의 미라 사진이 있으니, 보기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참고 바랍니다.)
Q : 진귀한 복식을 벗겨낸 미라들은 어찌됐나.
A : 결론부터 말하면 미라 해포(解布) 작업을 벌였던 고려대 구로병원 장례식장 옆 부검실에 여전히 보관돼 있다. 발굴 11년째다. 국내 미라 연구 권위자로서 당시 해포 작업을 주도했던 김한겸 전 고려대 교수가 갈 곳이 마땅치 않은 미라들을 넘겨받아 관리했다. 미라 부패를 막기 위해선 냉동고에 보관해야 하는데 국내에 이를 전문적으로 소장할 국가기관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올 초 퇴임한 김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총 8구의 미라를 관리했는데 현재 구로병원에 4구, 고려대 의과대에 4구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들에 대한 연구‧보존‧관리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나까지 현직을 떠났으니 사실상 부검실에 방치된 상태”라면서 “조선시대 가장 값비싼 묘에 모셔졌던 고인들을 생각하면 측은한 일”이라고 말했다.
Q : 고인의 뜻과 무관하게 무덤을 파헤쳤다.
A : 이들 미라 무덤이 나온 곳은 경기도 오산 가장2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이었다. 토지를 다지는 과정에서 3기의 무덤이 나란히 발견됐는데, 각각 남편과 전처‧후처 묘로 추정됐다. 다만 관리하는 후손이 없는 사실상 ‘무연묘’였다. 개발 사업을 할 때 이 같은 무연분묘가 발견되면 사업자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에 따라 신문 등에 공고한다. 조상 무덤이라면 연락하라는 내용인데, 연고가 확인될 경우 장사법에 따라 소정의 이장 비용을 지급한다. 오산 무덤은 그 같은 절차에도 연고자가 확인되지 않았고, 회격묘 특성상 미라가 나올 수 있어서 관련 전문가들을 한데 모아 신중하게 발굴했다. 현장에서 “미라 냄새다!”를 외쳤던 김우림 당시 울산박물관장은 “미라엔 특유의 냄새가 있어서 관을 열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하묘지 카타콤 같은 데서 나는 습한 냄새의 강렬한 버전”이라고 설명했다.
Q : 처리가 끝났으면 화장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나.
A : 실제로 발굴 사업장에서 무연묘란 게 확정되면 시‧도 차원에서 업체에 의뢰해 화장 처리를 한다. 문제는 일반 인골이 아닌 미라의 경우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화장해버릴 경우 궁극적으론 엄청난 학문적 손실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되는 인골‧미라 등은 옛사람들의 유전적‧형질적 특성과 식생활문화, 사망 원인 등을 분석할 수 있는 귀한 자료”라고 말했다. 김한겸 교수도 “과학기술과 문헌으로 교차 검증할 경우 한국의 질병 지도나 수백 년 전 생활 습관을 밝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
Q : 예컨대 어떤 게 밝혀질 수 있나.
A : 2004년 대전에서 발굴된 ‘학봉장군’ 미라의 사례를 보자. 여산 송씨 문중의 묘역에서 발굴된 15세기 부부 미라인데 이름에서 ‘학봉’은 미라가 보관된 계룡산자연사박물관 인근의 마을 이름을 딴 것이고, ‘장군’은 부부 미라와 함께 발견된 증손자뻘 후손의 미라가 조선 초기 종3품 벼슬을 지낸 무관으로 알려져 덧붙었다고 한다. 이 학봉장군 미라(남편)의 기관지·위장에선 수생식물 애기부들 꽃가루가 나왔다. 『동의보감』엔 피를 토할 때 애기부들을 먹는다고 돼 있다. 김한겸 교수에 따르면 다른 미라의 폐는 주먹보다 작게 오그라들었는데 학봉 미라는 그대로였다고 한다. 즉 기관지 확장증을 앓다가 사망한 것인데, 이 같은 병리학적 고찰이 가능해진다. 2002년 화제가 된 ‘파평윤씨 모자(母子) 미라’의 경우 20대 중반 여인이 출산 중에 사망했는데 그 폐에선 검댕이가 발견됐다. 이게 당시 숯불을 많이 때서인지 공기질 문제인지 등을 최신 과학기술로 연구하면 옛사람들의 삶을 더 많이 알 수 있게 된다.
Q : 그런데 왜 옷만 벗겨가고 미라는 방치했나.
A :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것은 관련 법의 공백이다. 현재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매장법)에는 유물‧유구 등에 관한 내용은 있어도 인골‧미라에 대한 건 없다. 즉 무덤에서 그릇, 복식, 가위, 빗 같은 게 나오면 중요도에 따라 국가에 귀속돼 문화재 보호를 받게 된다. 그런데 인골‧미라는 그 자체로 보존해야 할 문화재라기보다 파쇄‧분석을 통해 연구 자료로 쓰이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문화재보호법에 열거된 문화재 범위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미라를 다룰 수 있는 전문가는 기존 문화재 관련학자가 아니라 의료진이다. 문화재청 박윤정 발굴제도과장은 “미라뿐 아니라 발굴현장에서 나오는 목재나 유기질 역시 문화재는 아닐지라도 연구자료로서 중요한데 이 같은 시료를 포괄해 연구·관리할 수 있게끔 관련 법이 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Q : 법안 논의는 어디까지 왔나.
A : 2014년 권은희 의원(당시 새정치민주연합, 현 국민의당 소속)과 2016년 조승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매장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에 대한 발굴허가를 받은 자로 하여금 인골 등 학술적 중요자료(중요출토자료)가 출토되면 지체 없이 문화재청장에게 신고하도록 하여 이를 체계적으로 보관ㆍ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이를 통해 관련 분야의 연구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한다”고 입법 취지를 명시했다. 하지만 두 번 다 회기 만료와 함께 자동폐기돼 버렸다. 박윤정 발굴제도과장은 “최근 들어 미라 연구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출토되는 모든 미라‧인골을 국가가 관리하는 건 예산‧인력상 한계가 있으니 중요도를 따져서 관리‧지원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애석하게도 그때까지 구성 이씨와 여흥 이씨 등 조선에서 온 미라들은 부검실 거치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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