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귀국하지 않은 미얀마 선교사

2021. 4. 3.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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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희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성령님께서 눈을 밝혀 주셔서 다시 미얀마로 들어왔습니다.”

세상의 언어로 이해 못할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얀마 18년 차 조은길 선교사는 이같이 말했습니다. 직업 군인으로 살아왔던 조 선교사는 50대 초반 전역하고 2006년 자비량 선교사로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으로 단독 부임했습니다. 기도 응답이었죠. 그는 양곤외국어대학에 들어가 현지어를 공부했습니다. 현지인 못잖게 언어를 익힌 그는 곧바로 양곤 바고 강 저지대 빈민가로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마치 1960~70년대 서울 청계천 하류 판자촌과 같은 곳입니다. 그는 이 일대를 중심으로 임마누엘교회 등 5곳의 교회를 개척하고 지금까지 1943개의 우물을 파주었습니다.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 쓰던 작두식 펌프 우물입니다. 한국에선 ‘빈티지 펌프’로 불리며 집 꾸미기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미얀마에는 한국인 선교사 200가정을 포함해 3000여명의 한국인이 있습니다. 코로나19에 올 2월 쿠데타까지 발생하면서 대부분 동포가 고국으로 돌아온 상태입니다. 선교사들도 절반 가까이 철수했습니다. 조 선교사는 지난해 11월 안식년을 맞아 귀국했습니다. 그런데 새벽 기도 때마다 아이들의 인사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그의 우물 파주기 사역 중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초·중·고교 우물 파주기였습니다.

2014년과 2020년 두 차례 그의 빈민 사역 현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많은 교회와 선교단체가 물질로 조 선교사의 사역을 돕고 있었습니다. 전남 담양의 어느 중고생 오누이는 저금통을 깨서 부모와 함께 헌금해 우물 파주기에 동참했는데 양곤 한 학교 운동장 주변에 있는 펌프에 그들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일시 귀국했던 조 선교사는 성령님 이끄심대로 3개월도 못돼 미얀마로 되돌아갔습니다. K팝 등에 관심이 많던 청소년들이 누구보다 반겼죠. 한데 그가 가자마자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모든 것이 통제됐습니다. 공장 지대이자 빈민가인 흘라윙따야, 즉 그의 사역지는 계엄령이 선포됐습니다. 문밖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공장이 불타고, 가게가 문을 닫았습니다.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됐고, 2인 이상 오토바이를 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생필품이 부족하게 됐죠. 한인과 선교사들은 비상연락망을 갖춘 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양곤 시민과 시위대는 1980년 5월의 ‘광주항쟁’을 잘 알고 있었고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불상사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장이 멈추고 정국 혼란이 길어지면서 빈민가에 굶는 가정이 늘고 있습니다. 조 선교사는 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SNS 등을 통해 함께 기도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지난달 29일 그의 SNS(카톡 ID: jo6248)에는 삼손골프사관학교 최영주, 목포 한일교회, 여의도순복음 광명교회, 장항중앙교회, 제주 대포교회, 출생 기념 김다은, 의사 김천교 등 수많은 후원자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쌀을 사서 배포하는 사진도 함께 담겼습니다. 댓글에 ‘결코 총탄으로 그들의 생명을 앗아가지 못한다’ ‘하나님의 공의가 흐르기를 기도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조 선교사는 “우리는 지금 가정예배와 릴레이식 나눔으로 연대하고 있으며, 한국 그리스도인의 후원과 기도 동역을 통해 힘을 얻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서방의 선교사들이 바로 조 선교사처럼 우리를 도왔습니다. 일제 말 그들은 강제 추방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독재 정권 때도 가난한 이들을 거두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 인권 탄압 실상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발발하자 찰스 헌트리 등 광주 지역 선교사들은 철수하지 않고 남아 부상자들을 치료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죠.

‘와서 우리를 도우라’(행 16:9). 분쟁 지역과 가난한 지역의 한국 선교사들의 사역은 ‘사랑에 빚진 자’가 그 빚을 갚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샬롬.

전정희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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