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다니던 그녀가 유목민의 삶을 택한 이유

김준모 2021. 4. 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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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노매드랜드>

[김준모 기자]

 
 <노매드랜드>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로드 무비는 장소의 이동을 따라가며 서사가 진행되는 영화를 말한다. 여러 공간을 경유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사건들을 통해 개인이 느끼는 자각이나 감정이 주된 정서를 형성한다. 미국에서는 <이지 라이더>로 대표되는 뉴웨이브 시대의 영화들이 이 전통을 형성했다. <노매드랜드>는 이 뉴웨이브 시대의 정서를 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보여준다.
제시카 브루더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유목민(nomad)'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21세기는 새로운 유목민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현대인이 사용하는 휴대전화, 노트북, PDA 등의 첨단장비는 시공간의 제약 없이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현대인은 온라인이란 공간 속에서 자유와 만남을 누린다. 반면 이 작품에서의 유목민은 정착할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노매드랜드>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펀을 비롯해 차를 집으로 삼고 여기저기 떠돌며 정착하지 못하는 현대판 유목민들의 특징은 이별로 인해 생긴 마음의 공허를 채우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한 장소에 머무르면 자신이 소외되고 공허해질 거 같아 새로운 만남을 찾고자 길 위로 나선다. 길 위의 사람들은 모두 혼자다. 그들은 헤어짐을 이별이라 말하지 않는다. 길을 걸어 다니는 한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서는 현대의 유목민이 디지털 세계를 매개로 유랑을 유희로 즐기는 반면, 영화 속 유목민은 정신적인 생존을 위해 나그네의 길을 택했음을 보여준다. 펀은 경제적인 빈곤과 계속되는 노동의 고통 속에서도 정착을 택하지 않는다. 커피나 냄비받침 같은 사소한 것을 함께 나누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을 반복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허나 펀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펀은 소위 말하는 3D 업종에 종사한다. 퇴직 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아 힘겨운 업무를 택한다. 도입부 펀이 불편하게 용변을 보는 장면부터 작품은 펀을 통해 관객이 불편함을 느끼게 유도한다. 아마존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하고 차에서 잠을 청하는 펀의 모습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펀의 개인적인 생각과 상관없이 정착을 원하는 심리의 발동은 그 삶을 보편적인 일상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노매드랜드>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펀의 일상은 그녀가 살던 도시의 몰락과 함께 이뤄진다. 석고보드 사업의 추락과 함께 남편이 일궈놓은 사업 역시 사라졌다. 남편마저 곁을 떠나며 펀의 주변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가족을 떠나온 펀은 자신의 고향이라 여겼던 장소가 없어지자 유랑민의 삶을 택한다. 길 위에서 깨달음과 교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길 자체가 삶이 되어버리는 것을 택한 것이다. 일궈놓은 모든 게 사라진 펀에게 돌아갈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언니나 길에서 만난 데이브가 함께 살 것을 제안해도 펀은 따르지 않는다. 그녀에겐 자신이 만들어 온 삶의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이 사라진 현재 다른 사람의 공간에 들어가 이질적인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길 위에서는 모든 게 자연스럽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과거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연은 모든 감정을 품어줄 수 있고 화합을 이뤄낼 수 있는 공간으로 표현된다. 때문에 펀은 길 위에서 안식을 얻는다.
 
 <노매드랜드>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클로이 자오 감독은 중국 출신 감독이다. 미국으로 유학온 뒤 이방인의 시선으로 미국을 바라보는 그녀의 앵글은 주로 소외된 사람들을 비춘다.

배경은 중서부. 그곳은 과거 미국 개척 시대를 상징하는 곳이자 지금은 사라진 서부의 총잡이들과 카우보이, 보안관들의 고향이다. 사라져 가는 존재들과 그들이 머물렀던 공간을 통해 상실과 공허의 감정을 담아낸다. 사고로 자리를 잃은 카우보이의 이야기를 다룬 <로데오 카우보이>가 그러하다.

이번 작품에서도 서부 시대 개척에 나섰던 유목민들의 모습이 현대에는 이질적으로 변해버린 현상에 주목한다. <역마차>나 <이지 라이더>가 보여준 유목민들의 모습은 낭만과 로망을 지니고 있으나, 현대의 유목민들은 도시란 공간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의 이질적인 존재들로 여겨진다. 이방인의 위치에서 이 시선을 담아낸 클로이 자오는 유목민의 삶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해내는 미덕을 선보인다.

<노매드랜드>는 <로스트 인 더스트>, <윈드 리버>처럼 미국이 잃어버린 자국의 모습을 되짚어 가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서부에서의 개척 역사와 길 위에서의 유랑민의 삶을 연결하며 상실과 고통을 짊어진 이들의 선택이 도피가 아닌 또 다른 삶의 양식이자 개척임을 보여준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강력한 작품상 후보로 평가받고 있는 이 영화는 미국이 지니고 있었지만 잊고 살았던 가치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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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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