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농구 대표팀 감독의 '품위 없는 이별 방식'

이준목 2021. 4. 2. 14: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장] 해명·소통 없는 농구협회, 감독의 권위와 책임감은 어디로

[이준목 기자]

대한민국 남자농구대표팀이 김상식 감독의 사퇴로 새로운 사령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대한민국 농구협회는 경기력향상위원회를 소집해 공개 모집 형식을 통하여 새로운 코칭스태프를 구성할 예정이다.

감독과 코치가 한 조를 구성해 지원하는 형식이며, 오는 14일까지 신청서 접수를 받은 뒤, 15일에 면접평가를 진행하는 일정이다. 각 후보자의 평가 총점을 합산해 최다 점수를 획득한 조를 선발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새롭게 선임될 코칭스태프의 계약 기간은 약 2년이며 2021 FIBA 아시아컵, 도쿄올림픽 예선, 2022 아시안게임, 2023 FIBA 농구월드컵(본선에 진출할 경우) 등을 지휘할 예정이다.

김상식 감독은 2015년 코치로 대표팀에 합류한 이후 2018년 10월 감독대행을 거쳐 정식 사령탑에 선임됐다. 지휘봉을 잡은 이후 2019년 FIBA 월드컵 2회 연속 본선진출을 이끌었고 순위결정전에서 코트디부아르를 80-71로 제압하며 한국농구가 1994년 캐나다 대회(당시는 세계선수권) 이후 25년 만에 월드컵 본선 1승을 달성하는 업적을 세웠다. 김 감독은 농구월드컵이 끝난 이후 다시 농구협회와 2년 재계약을 맺고 연임했다.

하지만 마무리는 아쉬웠다. 올해 1월 김 감독은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예선전(window3)에 나설 대표팀 엔트리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논란에 휩싸였다. 대표팀은 코로나19로 인한 변수와 연이은 대회 일정 변경으로 정예멤버 구성에 어려움을 겪던 가운데 프로팀과 상무 등에서 선수 1명씩만 차출한다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선수차출 기준의 형평성과 프로구단들과의 소통 문제를 놓고 잡음이 계속됐다. 김상식 감독은 '신뢰가 깨졌다'는 이유로 추일승 경기력향상위원정과 함께 아시아컵 예선을 마친 뒤 전격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하여 대표팀 출국 전 대회가 또다시 무산되며, 공연히 감정싸움만 벌였던 국내 농구 관계자들만 우스운 모양새가 됐다. 그 사이에 김 감독의 계약기간도 자연스럽게 만료됐다 김 감독은 협회와 재계약하지 않고 예고한 대로 대표팀을 떠나게 됐다. 감독으로서 3년, 코치 시절까지 포함하면 무려 6년이나 대표팀에서 활동해왔던 인물이 공식석상에서 별다른 고별인사도 남기지 못하고 조용히 떠나게 된 것이다. 

가장 발등의 불은 아시아컵 일정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된 일정은 6월에 다시 진행될 예정이다. A조의 한국은 필리핀과 2경기, 인도네시아-태국과 각 1경기씩 총 4경기를 남겨놓고 있다. 그리고 22일 필리핀까지 총 4경기를 소화할 계획이었다. A조 상위 두 팀이 아시아컵 본선에 직행하는데 한국은 현재 2승 무패로 3승 무패인 필리핀과 나란히 승률 100%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최대한 빨리 신임 감독을 선임하여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누가 차기 대표팀 감독이 되느냐도 관심이 크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제대로 일할수 있느냐다. 어느 종목이든 국가대표팀 사령탑은 모든 체육인들이 꿈꾸는 명예로운 자리지만, 농구대표팀은 차라리 가시방석에 더 가깝다. 농구대표팀에서 박수받으며 떠난 감독은 2014년 농구월드컵 본선진출과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끈 유재학 감독(현 울산현대모비스)이 사실상 마지막이다.

특히 역대 농구대표팀 전임 감독치고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치고 무사히 물러난 인물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다. 농구대표팀은 야구나 축구 등 다른 구기종목과 비교해도 전임감독제를 훨씬 늦게 도입했다. 프로리그에서 전 시즌 우승팀 감독들이 해마다 돌아가면서 농구대표팀을 맡는 낡은 구조가 2010년대까지도 계속됐다. 자연히 대표팀의 연속성이나 장기적인 비전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농구대표팀 최초의 전임감독은 2008년 3월에 지휘봉을 잡아았던 김남기 당시 연세대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1년 만에 개인 사정으로 프로팀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 감독으로 부임하며 대표팀에서 하차했다. 이후 농구협회는 다시 한동안 프로팀 감독이 임시로 대표팀을 겸임하는 구조를 유지하다가 2016년 6월 허재 감독을 선임하며 다시 전임감독제도를 부활시켰다.

허재 감독은 첫 대회였던 2017 FIBA 아시아컵에서는 3위를 차지하며 선전했으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허웅과 허훈 두 아들의 대표팀 선발을 고집하며 '특혜 논란'을 자초했고 결국 부진한 경기력으로 대회 우승에 실패한 이후 자진사퇴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그 뒤를 이은 김상식 감독은 허재호에서 코치로 지내기는 했지만 대표팀 감독으로서는 커리어가 다소 부족했던 인물이었다. 안양 KT&G(현 KGC), 오리온 등에서 감독을 짧게 역임하기는 했지만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허재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후임자가 마땅치 않았던 대표팀을 맡아 난적 레바논, 요르단을 연파하며 농구월드컵 본선티켓을 안기며 '소방수'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그럭저럭 선방했고, 협회는 김상식 감독을 정식 사령탑으로 승격시켰다.

하지만 김상식 감독도 끝내 평탄하게 내려오지는 못하며 '대표팀 감독의 저주'를 되풀이하고 말았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역대 대표팀 감독들이 교체될 때마다 반복되는 '품위없는 이별 방식'에 있다.

불명예 하차한 전임감독 3명 중 사실 성적 문제 때문에 물러난 인물은 한 명도 없다. 김남기 감독은 2008 베이징올림픽 최종예선에서 2패에 그치고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았지만, 프로팀에서 러브콜이 들어오자 대표팀을 떠났다. 허재 감독은 아시안게임에서 이란에 패하여 동메달에 그친 것보다도 아들 특혜 논란이 더 치명타였다. 김상식 감독은 대표팀 소집과정에서 프로구단들과의 소통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지휘봉을 내던졌다.

또 다른 공통점은 감독이 좋지 않은 모양새로 팀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될 때까지 감독 당사자는 물론이고 협회도 끝까지 대중들에게 어떤 해명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사례가 반복되다보니 대표팀 감독의 권위와 책임감이 서기 어렵고, 팀운영도 주먹구구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표팀은 대표팀답게 운영되어야 한다. 이런 구조에서 후임 감독이 누가 되든지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타 종목과 협회의 대표팀이 최근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농구협회가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