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산책] 마음으로 듣는다..땅과 바람의 소리

최동현 2021. 4. 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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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주제 '김승영 전시회'
땅의소리
불·물·빛·시간 소재 작품
쇠사슬로 만든 '뇌' 인상적
'쓸다' 공간엔 빗질 소리 가득
바람의 소리
스피커 바벨탑처럼 세운
'시민의 목소리' 대표적 작품
긍정적인 언어에 주목
김승영, 뇌, 쇠사슬·저울, 2016~2021.(사진=성북구립미술관)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5년 만에 가장 짙은 몽골발 황사가 강한 바람을 타고 한반도를 덮친 혹독한 봄날.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자리 잡은 성북구립미술관을 찾았다. 이곳엔 ‘땅의 소리’와 ‘바람의 소리’를 주제로 설치미술가 김승영(59)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고비사막에서 여기까지 날아와 귓가를 따갑게 스치고 가는 황사바람은 땅의 소리일까 바람의 소리일까 문득 궁금했다. 육조 혜능스님(638~713)의 말마따나 땅도 바람도 아닌 마음의 소리인 걸까.

김승영의 작품들에는 자연을 통해 내면과 대화할 수 있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는 1996년 첫 개인전 이후 인간과 자연의 관계, 타인과 소통하기, 자기성찰 등에 관한 주제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그는 특히 시각뿐 아니라 청각·후각·촉각까지 아우르는 공감각적 표현으로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땅의 소리’ 전시는 미술관 2~3층에 마련됐다. 2층은 불과 물, 빛과 시간을 소재로 한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입구에서 좁은 통로로 들어서면 작은 ‘창(2003~2021)’ 하나가 보인다. 작가는 미술관의 실제 이 창문에 노란 투명 시트지를 붙였다. 유리창 너머는 빛바랜 사진처럼 보인다. 잠시 과거의 추억을 소환해보는 시간이다.

통로 끝에는 영상 설치작품 ‘빛(2021)’이 보인다. 김승영은 프랑스 노르망디 정글 속의 폐허가 된 지하참호에 빛이 스며드는 모습에서 이 작품을 착안했다. 영상에서는 반짝이는 햇살과 새의 그림자가 환영처럼 나타났다 사라짐을 반복한다. ‘희망’ ‘회복’ ‘종전’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김승영, Beyond, 싱글 채널 비디오, 문·물·잉크·사운드, 2021.(사진=성북구립미술관)

2층 가장 안쪽의 넓은 공간에는 ‘Beyond(2021)’가 설치돼 있다. 이곳으로 들어서면 가로 11m, 높이 2.7m의 커브드 화면 속에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다. 불꽃 한가운데서 토기(土器)가 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 마른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도 들린다. 화면 앞쪽 바닥엔 문이 눕혀져 있다. 그 위로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작은 파면(波面)을 계속 만들어낸다. 마스크를 은은하게 파고들 정도의 냄새도 전해진다. 작가가 직접 전문업체에 의뢰해 숯으로 만든 향수다.

"장작을 태우는 불은 소멸인 듯 보이지만 질 그릇을 굽고 있다는 점에서 생성인 측면도 있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지만 그 속엔 끝을 알 수 없는 심연도 존재한다. 문은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다. 삶과 죽음이 서로 연결됐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다. 죽음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두려움이지만 삶을 가장 깊게 사유할 수 있게 해주는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이다.

3층 낡은 저울 위에 쇠사슬로 만든 ‘뇌(2016~2020)’가 놓여 있다. 검게 칠해진 쇠사슬 뭉치가 빚어낸 뇌의 모습은 신기하리만치 사실적이다. 저울의 바늘은 ‘0’을 가리킨다. ‘내가 가진 온갖 걱정과 불안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김승영, 쓸다, 책상·의자·스탠드·휴지통·사운드·향기, 2021.(사진=성북구립미술관)

안쪽에 들어서면 5쌍의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된 공간이 나온다. 작가가 일상 공간을 차용한 작품 ‘쓸다(2021)’다. ‘쓱쓱’ ‘싹싹’. 빗자루로 뭘 쓰는 소리가 반복해 들린다. 가끔 새소리도 들린다. 천장 한가운데 사각형의 넓다란 조명이 푸르스름한 빛을 내리쬐고 있어 공간은 온통 파랗다. 작가는 "새벽녘이나 이른 저녁 세상이 온통 파랗게 물들 때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며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텅 빈 사무실처럼 감정적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곳은 관람객이 참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시간당 5명씩 입장하는 관람객들은 의자에 앉아 테이블 위의 종이에 비워내고 싶은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종이를 찢어 옆 쓰레기통에 넣는다. 미술관 관계자는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 하나"라며 "관람객들이 자기 내면과 진지하게 대화하며 작품에 참여하고 있어 후기도 좋다"고 전했다.

미술관 밖으로 나와 내리막길과 마주하면 왼쪽에 거리갤러리 공간이 나온다. 이곳은 2018년 건축가 조성룡이 성북동의 지형을 살려 설계한 곳이다. 김승영은 이곳에 ‘바람의 소리’라는 테마로 지난해 6월부터 작품들을 전시 중이다. 주로 작가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전시물들이 배치돼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 ‘시민의 목소리(2017~2021)’다. 스피커 152개를 바벨탑처럼 쌓아올린 조형물로 서울 시민 6000여명이 참여한 시민투표에서 선정됐다. 작가는 "성북동에 거주하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목소리와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의 소리가 스피커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면서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신화는 언어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나는 긍정적인 부분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김승영, 시민의 목소리, 스피커, 2017~2021.(사진=성북구립미술관)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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