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 유산 내꺼야" 박수홍 사건에 4050싱글 공분한 이유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는 싱글 여성인 A씨(49)는 최근 친한 친구 3명에게 유서를 보냈다. 현재 시점 재산목록과 사후에 기부할 자선단체까지 적시해놓았다. A씨는 “공증을 받아야 한다기에 정식 절차를 알아보는 중”이라며 “일단 급한 대로 친구들에게 사본 3장을 보냈고 원본은 컴퓨터 파일과 출력물로도 집에 보관했다”고 밝혔다.
유서를 쓴 이유는 기혼인 남동생들 때문이었다. A씨는 첫 조카가 태어났을 때부터 조카바보였다. 시간을 쪼개 아이들을 봐주고 생일마다 거액을 들여 선물했다. 남동생들은 그런 김씨를 당연하게 여겼다. 명절에는 조카들 앞에서 도를 넘는 농담도 했다. A씨는 “멀쩡히 살아있는 고모를 앞에 두고 ‘알지? 고모 죽으면 이 집도 다 너희 거야’라고 말하는 남동생들을 볼 때마다 점점 화가 났다. 그게 유서를 쓴 계기가 됐다”며 “최근 박수홍 관련한 보도를 보니 처지가 나랑 비슷한 거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개그맨 박수홍(52)은 30년의 활동 기간 동안 분쟁이나 스캔들 한번 휘말린 적 없는 드문 연예인이다. 공백기조차 없었다. 최근 박수홍이 매니저로 일해온 친형에게 100억원대 출연료를 떼였다는 폭로가 나왔다. 많은 이들이 연민을 표했는데 그중 유독 격하게 감정이입을 하는 이들이 있다. 40~50대 싱글들이다. 이들은 특히 이 한마디에 폭발했다. “삼촌 유산 내 거예요.” 박수홍이 9년 전 인터뷰에서 “잘 키운 조카 하나 누구 부럽지 않다고, 조카가 와서 ‘삼촌 유산 내 거예요’ 하더라”고 말했던 게 친형네의 사기 논란과 합쳐져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한편에서는 박수홍에 공감한 싱글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몇 년 사이 비혼 비율은 급격히 높아지고 아이를 낳지 않는 커플 역시 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후에 벌어질 재산 분쟁은 핵가족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양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물려줄 2세가 없는 싱글들의 속내도 복잡해졌다.
“어쩐지 남의 일 같지 않다.”
박수홍과 엇비슷한 나이대의 4050 싱글들은 반응도 비슷했다. 이들은 결혼을 안했다는 이유로 박수홍처럼 ‘조카들의 돈줄’ 취급을 당하는 게 분하다고 했다. 조카들이 어릴 때는 상대적으로 그런 서운함이 덜하다. 하지만 조카들이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관계는 소원해지는 반면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는 은근한 압박은 커진다.
게다가 이들은 기혼인 형제들과 달리 노부모를 돌보는 의무를 질 확률도 높다. A씨는 “남동생들이 혼자 사는 누나가 엄마아빠 아프면 책임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당연한 듯 말한다”며 “올케들 생각하면 내 의무라고 생각하다가도, 남동생들 태도에 빈정이 상한다”고 토로했다.
최근 가정법률을 상담하는 한 단체에 찾아온 노년의 싱글 B씨의 고민도 연장선이었다. 그는 조카들이 자신의 재산 규모를 안 뒤부터 태도가 바뀌었다고 불편해 했다. 성인이 돼 연락이 뜸해진 조카가 명절이나 생일 때마다 “불편한 데는 없느냐” “전자기기 바꿔드리겠다”고 말을 건네는 등 갑자기 잘해준다는 것이다.
역시 싱글이라는 C씨는 한 온라인 카페에 글을 올려 “혼자 사는 입장에서 박수홍에 감정이입하게 된다”며 “조카바보란 말이 유행인데 노후에 조카가 어떤 도움이 될까. 부모 없이 공부 잘하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도와주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지난달 31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피상속인이 사망한 뒤 형제자매가 유류분을 주장할 수 있다. 그래서 형제자매를 유류분 청구 권리자에서 빼야 한다는 논의가 굉장히 활발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만 배 변호사는 ‘유언대용신탁제도’(금융사와 자산신탁계약을 맺고 사후 지정된 수익자에게 원금·이익을 지급해 주는 상품)를 활용하면 예외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혼자가 사망 1년 전 유언대용신탁을 하게 되면 유류분 적용이 제외된다는 2심 법원 판단이 지난해 나온 상황”이라며 “이 제도를 활용하면 주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사한 고민은 상담단체들에도 종종 접수된다. 조은경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은 “싱글들의 유산 고민 상담도 꾸준히 들어온다”며 “이혼이나 양육권 관련 상담이 워낙 많은 터라 부각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유산 상속 차원의 갈등으로만 접근할 게 아니라 ‘노년에 누가 나를 돌봐줄 것인가’라는 돌봄 차원으로 확대해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혼 고령층이 겪게 될 문제에 대해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조 위원은 “박수홍의 아픈 가족사를 사회적 시각으로 넓히면 고령사회 측면에서 진단이 되고, 성년후견제(질병·노령 등으로 정신적 제약이 있는 이가 도움을 받기 위해 후견인을 두는 제도)와 연결된다”며 “우리가 노인이 됐을 때 ‘누가 나를 관리해줄까’라는 일신의 문제다. 가족을 넘어 사회적 책임으로까지 가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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