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에 긍정효과 몰고 온 김연경..아쉬운 퇴장에도 '찬사' 릴레이

이동환 2021. 3. 3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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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에 '빨리 시즌 끝나면 좋겠다' 생각까지
적장·상대팀 후배 모두 "귀감됐다" 입 모아
거취는 미정..올림픽에서 이어질 '배구여제'의 투혼
김연경(10번)이 GS칼텍스와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이 끝난 뒤 팀원들과 포옹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괜히 왔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시즌이 끝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어느 정도 시점이 되고 나선 (끝나는) 날짜를 세기보다는 좀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죠.”

‘배구여제’ 김연경(33)은 3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GS칼텍스와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엄지손가락 부상 탓에 오른손엔 붕대를 감았지만, 붕대 위에 새긴 ‘끝까지 간다’란 글귀에 부끄럽지 않게 자신의 100% 이상을 발휘했다.

그가 이날 남긴 기록은 블로킹 2득점, 서브 1득점을 포함한 27득점. 공격성공률은 52.17%, 공격점유율은 31.29%에 달했다. 리시브효율마저 42.86%. 공·수에서 끝까지 버티며 팀을 이끈 김연경의 활약으로 흥국생명은 전력상 열세에도 마지막 3차전을 5세트까지 끌고 갈 수 있었다.

김연경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3차전에선 질 때 지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려 했는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경기는 져서 아쉽지만 선수들이 최선을 다 해 노력해준 데 감사하다”며 “힘든 순간들이 많았던 시즌인데 이겨내고 플레이오프를 마치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나타냈다.

김연경이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공격에 실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의 말처럼 11년 만에 복귀한 국내 프로배구 무대에서 김연경은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야 했다.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1위를 독주하던 것도 잠시, 김연경은 아쉬워 네트를 잡아당긴 행위로 도를 넘은 과한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흥국생명은 내분설로 계속해서 흔들렸다.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의 학교폭력 논란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아팠다. 두 주전 선수가 무기한 자격정지 중징계를 받으면서 흥국생명은 시즌 내내 준비한 것을 뒤집고 시즌 말미 갑자기 새 전략을 구상해야 했다.

김연경으로서도 주장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배구에만 집중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배구를 해야 했다. ‘빨리 시즌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내적 갈등은 컸다. 하지만 그런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도 김연경은 팀 동료들을 다잡고 결국 팀을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려놓고 퇴장했다.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은 “김연경이 본인이 운동선수 생활을 하는 기간 동안 어려움도 많았겠지만 이건 또 다른 어려움이라 심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제가 덜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격려만 할 뿐 직접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까웠다”며 “하지만 큰 선수답게 제 자리를 지켜주며 리더 역할을 충분히 해줬다. 앞으로 행보가 어떻게 될지 아직 정확히 정해지지 않았지만 (한 시즌 동안) 후배들에게 귀감이 돼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연경(왼쪽)이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리시브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한 시즌 동안, 단순히 흥국생명만이 아닌 여자프로배구 전반에 김연경은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선사했다. 정규리그 공격성공률 1위(45.92%), 서브 1위(세트당 0.227개), 디그 5위, 수비 7위에 오를 정도의 ‘공수겸장’ 활약은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 자극제가 됐다.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 이소영은 “프로 입단하면서 연경 언니와 같은 코트에서 시합하는 걸 항상 생각해봤는데 KOVO컵부터 챔피언결정전까지 한 시즌을 치를 수 있게 돼 영광스럽다”며 “롤모델이기도 했기에 공격 스타일 등에서 배울 점이 많았고, 연경 언니가 때리는 폼을 읽고 수비를 잡으면 기분이 좋기도 했다. 이번 시즌 내내 많은 걸 배우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김연경 효과’에 대해 입을 열었다.

차상현 GS칼텍스 감독도 “김연경이 손가락 인대가 안 좋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투지를 보여줬다. 상대 선수긴 하지만 역시 김연경이 있기 때문에 한국 여자배구가 이 정도로 끌고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역시 멘털이 좋은 선수라고 느꼈다”고 칭찬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자프로배구는 김연경 복귀와 함께 올 시즌 겨울철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AGB닐슨코리아에 따르면 SBS스포츠가 중계한 챔피언결정전 3차전 평균 시청률은 2.407%(전국, 유료가구 기준)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정규리그 여자부 경기당 평균 시청률도 1.23%를 기록하며 역시 역대 최고 기록을 남겼다.

김연경(오른쪽)이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붕대 감은 손으로 공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연경은 그렇게 여자프로배구 전반에 영향을 끼치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시즌을 마쳤다. 김연경은 “마음이 무거웠고, 좀 더 책임감을 많이 갖게 했던 시즌”이라며 “그래도 제 나름대로 마무리가 잘 됐다고 생각한다”고 이번 한 시즌을 평가했다.

김연경이 다음 시즌 어떤 무대에서 뛸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는 “시즌 중반에 컨택이 많이 왔는데 시즌 끝나고 천천히 여유있게 준비하며 폭 넓게 생각해서 결정하고 싶어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팬들은 ‘배구여제’가 활약하는 모습을 다시 응원할 수 있다. 오는 7월 열리는 도쿄올림픽 무대를 통해서다. 김연경은 “대표팀이 4월 말 소집한다”며 “1~2주 정도 편안히 쉬고 다시 몸을 만들어 올림픽을 준비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김연경이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득점에 성공한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힘든 한 시즌을 거치며 김연경이 의지했던 유일한 대상은 팬이었다. 김연경은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팬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많은 분들이 항상 제 편에서 응원해주셔서 큰 힘이 됐어요. 10% 밖에 관중 입장이 안 됐지만 많은 분들이 티켓팅 해주신 걸 보면서 그런 분들 덕분에 힘든 상황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천=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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