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아니라 다행"..펜하2에 편지 쓴 국회의원이 받은 악플
이용호 국회의원 "내 편 댓글 하나 없어"
공개 서한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소속 이용호(61·전북 남원시·임실군·순창군) 국회의원의 이야기다. 이 의원은 지난 19일 SBS드라마 '펜트하우스2' 제작진에게 “국회의원 역할을 맡은 봉태규의 배지만이라도 바꿔 달라”는 공개 서한을 보내 이목을 끌었다. 이 의원은 28일 “드라마를 너무 다큐멘터리로 인식했다”며 뒷이야기를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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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불신과 드라마
이 의원은 "댓글 하나쯤은 제 편이 있을 줄 알았는데 하나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기억에 남는 악플로는 “국회의원을 ‘국개의원’이라 부르는데, 국회의원 역할을 개가 아니라 사람이 한 게 다행이다”는 댓글을 꼽았다. 그는 "국회의원이 찌질하게 보이면 결국은 국민이 손해 본다"고 주장했다. “모든 것을 국회 잘못으로 돌리기 때문에 행정부가 더 큰 소리 치고 국회가 견제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는 말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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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편지 보냈을까
이 의원은 공개 서한에서 "드라마가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면서 풍자의 효과를 더했지만, 그 사실성 때문에 우리 사회의 정치 불신이 더욱 심화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드라마에서 배우 봉태규씨가 연기한 이규진은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던 중 거짓으로 기절해 천막으로 들어가 진수성찬을 먹는 부정적인 캐릭터다. 또 주식 정보를 미리 파악하지 못해 분노하고, 국회의원이 된 뒤 ‘집값이 올랐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이 의원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신랄한 풍자의 수준을 지나 '조롱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싶다”며 “사실성을 조금만 희석시켜서 시청자가 한 발짝이라도 떨어져 볼 수 있게 해주셨으면 한다”고 편지에 적었다. 그의 공개 서한은 화제가 됐지만, 기사에는 악플이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이름을 알리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왔다.
경향신문 기자 출신인 이 의원은 지난해 4월 21대 총선 전북 남원-임실-순창에서 한국도로공사 사장을 지낸 민주당 이강래(68)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호남 28개 지역구 중 민주당이 아닌 후보가 당선된 건 이 의원이 유일하다. 다음은 공개 서한을 계기로 악플 세례를 받은 그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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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찌질하게 보면 국민 손해"
Q : 공개 서한을 보내게 된 이유는.
A : 드라마를 자주 보지는 않는데 아내가 '펜트하우스2'를 보는 것을 우연찮게 봤다. 국회의원 역할로 나온 배우(봉태규)가 속된 말로 너무 찌질했다. 그분이 한 배지가 현실과 너무 똑같아서 일부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국회의원 모습을) 진짜로 알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배지만은 상징적으로 비슷하게 하더라도 똑같이는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서한을 보내게 됐다.
Q : 이름은 확실히 알린 것 같다. 노이즈 마케팅이란 이야기도 있는데.
A : 평소 스스로 의원으로서 자부심이 있다. 드라마지만 사회적으로 국회의원이 욕을 먹어서는 국회의원 역할을 하기 어렵다. 행정과 입법이 팽팽하게 견제와 균형을 이루려면 국회도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서한을 보낸 것이지 노이즈 마케팅을 한 건 아니다.
Q : 악플이 많았는데.
A : 아내가 굉장히 상처를 받았다. 악플도 악플이지만, 괜히 자기가 '펜트하우스'를 보는 바람에 제가 (드라마를) 보게 됐다며 자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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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먹는 게 국회의원 역할……자성 계기"
Q : 드라마 중 어떤 장면이 가장 보기 불편했나.
A : (봉태규가) 단식 농성 후 (진수성찬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다. 차라리 정치인이 권력 투쟁을 하면 이해하겠는데 전체적으로 의원으로 나온 배우를 너무 희화화하는 모습이 자존심을 상하게 한 측면이 있다.
Q :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인데 과민 반응한 것 아닌가.
A : 드라마를 너무 다큐멘터리로 인식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막장 드라마라고 하던데, 결과적으로 드라마를 잘 만든 셈이다.
Q : 국회의원들이 욕 먹는 게 드라마 때문은 아니잖나.
A : 댓글에도 많이 나온 내용이다. 국회의원끼리도 욕을 먹고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마음 정화)를 주는 게 의원 역할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국민 입장에선 국회의원들에 대한 기대가 큰데, 현실 정치에선 정작 민생을 챙기고 사회적 정의를 위해 일하기보다 진영 논리를 대변하고 진영끼리 다투고 당리당략에 매몰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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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봉태규 촬영 다 끝나 못 바꿔"
Q : 제작진한테 연락은 받았나.
A : 간접적으로 반응을 전달받았다. 제가 (서한으로) 지적할 때쯤 의원으로 나온 봉태규씨의 촬영이 다 끝나 (배지 교체 등) 더 이상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들었다.
Q : 공개 서한 보낸 걸 후회하진 않나.
A : 언론인 출신으로 표현의 자유를 중히 여기는데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자책도 든다. 그러나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어떻게 보는지 절실히 느꼈고, 반대로 그만큼 기대가 크구나 하는 책임감과 함께 자성의 시간을 갖는 계기가 됐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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