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탓? 미국서 한국인들이 범죄 표적된 진짜 이유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임상훈 기자]
▲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연쇄 총격사건 현장 중 한 곳인 스파업체 '골드스파' 앞에서 19일(현지시간) 현지 한인들이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16일 애틀랜타 일대에서는 21세의 백인 로버트 에런 롱이 마사지숍과 스파 등 3곳을 돌며 총격을 가해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아시아계 6명 등 8명이 숨졌다. |
ⓒ 연합뉴스 |
지난 16일 미국 주지아 주 애틀랜타와 인근에서 8명의 사망자를 낸 총기사건이 발생했다.
애틀랜타 북서쪽 체로키 카운티(한국의 군에 해당하는 행정단위)에 위치한 한 곳의 안마소(Young's Asian Massage)와 애틀랜타 시내에 위치한 두 곳의 스파(Gold Massage Spa, Aromatherapy Spa)에서 1시간여 간격을 두고 미국인 로버트 애론 롱(21)이 총기를 난사해 4명의 한인 여성(미국 국적 3명, 한국 국적 1명)과 2명의 중국계 미국인 여성, 1명의 히스패닉계 미국인 여성 그리고 1명의 백인 남성이 사망했다.
용의자 롱은 첫 사건 발생 3시간 반여 후 플로리다로 향하는 도로에서 경찰에 체포됐으며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그는 다음 범죄를 위해 플로리다도 향하던 중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다수의 문제들이 동시에 중첩돼 발생한 비극이다. 사건의 발생은 물론이고 그 이후 당국의 대응 과정 그리고 현지 언론을 비롯한 다양한 반응들은 왜 그런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다시 한 번 반추하게 한다. 특히 소수민족 커뮤니티 가운데 하나인 한인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재고 또한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기도 하다.
미국 속 한국인들
많은 언론들이 '한인 스파 총격 사건'이라 부르듯 이번 사건의 희생자 8명의 절반이 한인 여성이다. 한국인을 지목한 범행이라는 결정적 단서는 아직 없지만 현지 한인사회는 이번 희생이 우연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미국 사회에서 이들이 감내한 역경과 부당한 피해를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다.
미주를 포함해 바다 건너 새 터전을 찾아 떠난 한인들의 다수는 이유가 무엇이든 현지의 체제에 순응하고 협조적인 경우가 많다. 혹자는 이를 두고 주류 사회에 편입하기 위한 안간힘이라고 냉소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반면 다른 이들은 이민 한인들의 진지하고 근면한 근성이 이들의 적극적인 체제 동화의 원천이라고 본다.
좀 더 심층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들이 동화하려는 곳은 체제이지 사회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짧은 시간 구체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체제의 요구에 적극 협조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체제의 부당함에 저항하지 않는 동화는 유리 천정과 같은 보이지 않는 한계를 스스로 방치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체제 동화 과정에서 공동체에 대한 이해와 공감 노력에 소극적이면 사회적 갈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이 두 문제와 관련해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지금까지와 같은 체제 적응 방식은 이제 곤란하다'는 목소리가 과거와 달리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다. 결국 이번 사건이 두 방향의 자각을 유도한 셈이다. 첫 번째, 체제의 부당함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자각은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한인 사회의 분노와 관계가 있다.
조사 초기 과정에서 해당 카운티의 경찰은 인종차별과 관계되는 '증오범죄' 가능성에 지나치게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성중독'에 의한 범행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인종차별과 관계없는 범죄라는 뉘앙스를 전달하려는 듯 보였다. 이 브리핑은 한인사회 입장에선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됐고, 더 이상 공권력에 대해 순응적 태도로 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는 데 일조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해당 경찰당국은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바꿨지만 한인사회의 분노를 잠재우기에는 이미 늦었다.
한인사회는 미국 사회에서 비교적 잘 동화되는 커뮤니티로 평가된다. 사회 동화가 아닌 체제 동화 차원에서는 특히. 하지만 그에 비해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사회운동의 역사는 미미하다. 인종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어도 제도나 체제 차원의 문제제기보다 범죄행위 자체에 대한 대응과 수동적 예방 차원에 머무는 경향이 강했다. 이러한 태도와 관련해 이제는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 미주 한인사회에서 도출되고 있는 것이다. '체제에 대한 협조는 충분했다, 이제는 적극 요구도 할 때가 됐다'는 주장이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다.
▲ 17일(현지시간) 미국 애틀랜타 총격 참사 현장인 골드스파 앞에 시민들이 빗속에 두고 간 추모 꽃다발과 글귀들이 놓여있다. 2021.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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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가 한국인
아태지역 출신 미국인 연합인 <아시안 아메리칸 태평양계 연합(AAPI)>이 조사 발표한 자료를 보면 뉴욕에서 증오범죄로 체포된 범인들이 혐오의 대상으로 삼은 인종이 최근 몇 년 사이 많이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2017년에는 흑인을 상대로 하는 증오범죄가 17건, 백인을 상대로 하는 증오범죄가 7건인 데 반해 아시아계를 상대로 하는 증오범죄는 3건에 불과했다. 이듬해 2018년 각각 12건, 5건, 2건 그리고 2019년 14건, 14건, 3건이다. 그런데 이 결과가 2020년 들어 급변한다. 흑인을 상대로 하는 증오범죄가 8건, 백인을 상대로 하는 증오범죄가 6건으로 하락한 데 반해 아시아인을 상대로 하는 증오범죄는 오히려 20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러한 결과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코로나19를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식하는 많은 미국인들이 중국인에 대한 증오를 품기 시작했으며 실제 중국인을 상대로 하는 언어, 신체 폭력이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AAPI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19일부터 8월 5일까지 5개월여 동안 접수된 아시아계 증오범죄 피해 건수는 2583건. 그 가운데 중국인을 상대로 하는 범죄가 40.4%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이어 한국인(15.7%), 베트남인(7.9%), 필리핀인(7.6%), 일본인(6.7%), 대만인(5.3%) 순이었다.
중국인의 피해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앞서 언급한 이유 때문으로 추론되지만, 한국인의 피해가 그 뒤를 잇고 다른 아시아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신체 외형이 중국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가 꼽힌다. 그런데 여기에 두 번째 방향의 자각이 관련된다. 첫 번째 자각이 적극적 대응과 관련한 자각이었다면 두 번째는 공동체 의식 또는 연대의식과 관련된 자각이다.
1992년 4월과 5월 사이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폭동' 또는 '4.29폭동'이라 불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출발점은 흑인 로드니 킹의 체포 과정에서 보여준 경찰의 과잉대응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한 흑인사회의 분노는 급기야 대규모 폭동으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체제에 대한 반항이 한인사회로까지 번졌다.
▲ 1992년 LA폭동 당시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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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사회의 아시아계를 향한 인종차별과 증오범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한인사회 일각의 반응도 이와 관련된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인으로 착각해 당하는 피해가 많아 한국인으로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 그것이다.
억울하다는 심리에는 당할 만한 대상은 따로 있는데 내가 부당하게 그 대상과 혼동되고 있다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누가 당할 만한 대상일까? 중국인들은 인종차별과 증오범죄에 노출돼도 무관하다는 걸까?
희생자들이 남긴 2가지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의 책임 문제는 분명하다. 2019년 말, 전문가들 중심으로 중국 우한에서 심상치 않은 전염병이 돌고 있고, 대유행의 전조가 보인다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적극적인 격리와 봉쇄조치를 하지 않았고, 결국 그 피해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중국은 온 인류가 신음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신뢰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내놓으면서 세계보건기구(WHO)의 역학조사에도 비협조적이다. 그러면서 믿기 어려운 통계들을 근거로 대유행에 대한 대응에서도 사회주의의 승리라고 낯 뜨거운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다. 그들만의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는 모르나 그 외 지역과 소통할 수 없는 방식의 언어로 무역을 원하고 외교를 원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언젠가 종식될 것이지만 중국 정부의 무한책임은 지워질 수 없고 국제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
▲ 애틀랜타 총격으로 숨진 아시아 여성들. |
ⓒ 최현정 |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사건 당시 주목할 만한 것 중 하나는 실제 한인사회와 흑인사회 사이에 있었던 갈등 이상으로 미국 언론이 사태를 확대 재생산했다는 점이다. 한때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의 폭동 규모로 백인 거주 지역까지 위험에 처했지만 한인-흑인 갈등 구조를 계속 부각시키는 언론 덕분(?)에 백인 거주지역은 큰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코리아타운에서는 민병대를 방불케 하는 젊은 남자들로 '사수대'가 구성돼 건물지붕 위에서 총으로 무장하고 흑인들을 막아서는,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힘든 현실이 벌어진 것이다. 한인들의 세금으로 운영될 미국 치안당국의 방치 속에서.
흑인폭동사태는 그렇게 코리아타운의 집중 피해 속에서 마무리 됐다. 이렇게 미국의 모범적 소수민족(model minority)인 한인사회는 흑인과 히스패닉 사회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결과적으로 폭동으로부터 주류 미국 백인 사회를 구해낸 꼴이 됐다.
'모범적 소수민족' 신화, 그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다른 말이기도 했다. 그렇게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주류사회를 향한 희망(고문)으로 달려왔고, 그들이 합류하고 싶어 하는 미국의 주류는 언론 등 대중매체를 이용해 소수민족의 성공사례를 부각시켰다. 이렇게 누구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다고, 백인 특권은 없다고.
하지만 소수의 성공사례를 제외하면 다수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여전히 부당한 처우와 열악한 기본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전히 주류사회와 체제 진입을 위해 다른 소수민족들과 불필요한 갈등을 감수하고 있다.
이번 사건 이후 한인사회에 변화의 조짐이 있다면 이 두 가지일 것이다. 체제를 향한 정당한 요구, 공동체 안의 연대의식. 이번에 희생된 분들은 아마 이 두 가지를 가르쳐주고 떠난 듯하다. 그분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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