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 투기 온상으로..LH사태가 드러낸 상호금융 민낯(종합)

김효진 2021. 3. 2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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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사태가 드러낸 상호금융 민낯
허술한 규제, 느슨한 심사 속 투기 온상으로
건전성 악화 등 잠재부실 우려도 고조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대출 사태는 조합원들 간의 상부상조라는 설립ㆍ존재의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궤도를 이탈하며 '모럴 해저드'에 빠져버린 상호금융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상대적으로 허술한 대출 규제 탓에 외지인들의 '투기 놀이터'로 전락한 상호금융은 연체율 같은 건전성 지표 또한 악화일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대규모 부실의 우려마저 키우고 있다.

◆조합원 호혜 금융? 현실은 딴판 = LH사태로 특히 조명받는 문제는 조합원 중심의 호혜 금융이라는 상호금융 운영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호금융에서 규모가 가장 큰 농협의 사례가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6월을 기준으로 단위농협의 전체 대출액 중 조합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28.6%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농사를 짓지 않아도 주소지만 지역에 두고 있으면 소액을 내고 가입하는 준조합원(31.5%)과 외지인인 비조합원(39.9%) 차지였다.

상호금융의 조합원ㆍ비조합원 대출 비율은 업권별로 다르다. 신협은 대출의 3분의 2를 조합원에게 실행해야 한다. 농협의 경우 조합원 대출 비율이 절반인데, 여기에 준조합원과 간주조합원을 상대로 하는 대출도 포함되기 때문에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에게 대출의 절반 이상이 실행되는 구조다.

LH 직원들의 대출창구였던 북시흥농협의 경우 2019년 상반기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대출 증가율이 7.3%였다. 그런데 준조합원과 비조합원의 대출 증가율은 각각 11.8%, 12.0%로 전체 대출 증가율을 훌쩍 뛰어넘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호금융의 대출 증가액 35조7000억원 가운데 30조7000억원은 아파트나 주택을 제외한 토지ㆍ상가 등 비주택 담보대출이었다. 대출 증가분 중 상당액이 LH 투기대출 사례와 유사한 준조합원ㆍ비조합원들의 땅 투기에 악용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조합원 대출비중 확대, 실효 있을까? = 금융당국은 일단 상호금융 대출에서 조합원이 차지하는 비중을 늘리도록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80∼100% 이하인 상호금융의 예대율(예수금 대비 대출금 비율)을 산정할 때 조합원 가중치를 낮추고 비조합원 가중치를 높이는 등의 방안이 구체적으로 거론된다.

지금은 조합원과 비조합원 가중치가 1로 같은데 가중치에 차별을 둬 조합원 대출 여력을 더욱 높이겠다는 것이다. 조합원 가중치는 그대로 두고 비조합원 가중치만 높이는 방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같은 조치가 현장에서 효과를 발휘해야 하는데 현재의 구조상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상호금융의 비주택 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은 최대 70%다.

게다가 상부상조 식의 호혜적 가치가 중시되다보니 특유의 느슨한 심사 문화가 이미 뿌리 깊게 깔려있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은 60% 안팎의 LTV를 적용하는데, 상호금융에 비해 대출 심사가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기관에 따라 금융위원회, 행정안전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산림청 등으로 관리ㆍ감독의 주체가 분산돼있는 것도 상호금융의 모럴 해저드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최근에는 일부 상호금융의 ‘깜깜이’ 자금 운용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상호금융 임직원이 규정을 위반해 본인이나 타인 명의로 비주택 담보대출을 받거나 건전성·수익성이 악화함에도 '배당 잔치'를 벌이는 사례가 잇따라 적발되면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호금융도 일반적인 금융기관의 역할을 하므로 법적으로 통일된 규정을 가질 수 있도록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출 몸집은 커지는데 질은 악화

◆건전성 이미 빨간불…잠재부실 누적 심각 = 상호금융의 건전성 문제 또한 심각한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다. 비조합원 등의 비주택담보대출 의존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상호금융권의 대출 연체율은 2.02%로 2019년 말(1.71%)보다 0.31%포인트 높아졌다. 상호금융 대출 연체율이 2%대에 들어선 건 2014년 이후 6년 만이다.

농협의 경우 2018년 상반기 1조4751억원이던 당기순이익이 2019년 상반기 1조3650억원, 지난해 상반기 1조2989억원으로 계속해서 쪼그라들었다. 이런 가운데 농ㆍ수협, 산림조합, 신협의 대출 잔액은 2015년 240조6050억원에서 2016년 277조9210억원, 2017년 309조3830억원, 2018년 335조2000억원, 2019년 352조3760억원, 지난해 387조5570억원으로 꾸준히 불어났다.

결과적으로 대출의 총량은 늘지만 연체율이 덩달아 늘면서 전반적인 질이 나빠지고 수익성 또한 악화하는 흐름이 고착화하는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상호금융이 이 같은 구조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비조합원 등의 비주택 담보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규정이 상호금융의 비조합원 대출을 어느정도씩 허용하는 것도 조합원 대상 금융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려운 상호금융의 특성을 감안한 측면이 있다. 상호금융이 '규제의 사각지대'로 변질돼왔다는 지적의 배경이기도 하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특수목적은행이라는 이유로 감독과 규제의 사각지대가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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