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제재, '민주주의 중시' 文정부 지향 보여줬다" [인터뷰]

김이현 2021. 3. 2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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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기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 책임교수
16일(현지시간) 미얀마 최대도시 양곤에서 시위대가 사제 방패를 들고 군부 쿠데타 규탄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시위대 중 한 명이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AFP연합


지난달 1일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에서 군경의 유혈진압으로 시민 희생이 커지고 있다. 미얀마 정치범지원연합(AAPP)에 따르면 사망자는 지난 16일까지 최소 202명으로 집계됐다. 시위대는 물론이고 집에 있던 여고생까지 저격수의 조준사격에 목숨을 잃었고 군경에 끌려가 고문 살해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미얀마 사태 초기부터 한국의 시민사회는 비상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5·18민주화운동을 거친 한국 정치사의 특별한 기억은 미얀마 시민들에 대한 연대와 지지로 이어졌다. 한편에서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 12일 한국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시아 정상 중 가장 먼저 미얀마 당국의 대응을 규탄한 데 이어 정부 차원의 제재를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정부는 미얀마와 추진하던 국방정례협의체, 미얀마군 장교에 대한 교육 훈련 과정을 중단했고 최루탄 등 군용물자의 수출도 불허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타국에 대해 제재에 나선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의 도약이 경제를 넘어 민주주의와 가치외교로 확장된 것이다. 아시아의 두 강대국 일본과 중국이 침묵하는 상황도 한국의 행보를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미얀마 사태를 계기로 ‘아시아 민주주의 모범국’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재정립할 기회를 얻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국민일보는 18일 최원기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 책임교수를 만나 미얀마에 대한 정부 제재의 의미와 외교적 득실, 악화돼가는 미얀마 사태의 향후 전망에 대해 들었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 책임교수


-한국 정부가 미얀마와 국방·치안 분야 교류 중단이라는 사실상 제재를 내렸다

“지난 2월 1일 쿠데타 발생 이후 유혈사태가 한 달 이상 지속하고 있는데 초기 우리 정부는 중립적으로 평화적 해결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태가 과거 쿠데타와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양곤, 만달레이 등 주요 도시에서 조직적으로 반 쿠데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문 대통령도 트위터로 (미얀마 시민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보낸 상황에서 사상자만 200명 넘게 나온 것을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한 것이 국방·치안 교류 중단이나 신남방정책 차원으로 이어오던 개발협력사업(ODA) 재검토다.”

-정부가 인권 등을 앞세워 타국에 내린 첫 제재인 듯 싶은데

“과거에는 없었던, 이례적인 일이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국은 민주화 과정을 겪었고 민주주의나 인권을 중요시하는 나라다.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어떤 정체성을 가졌는지, 어디를 지향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다.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중견국으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권 등 가치외교를 추진하는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 노력에도 보조를 맞추는 차원도 있다. 더불어 정부에서 신남방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해왔는데 이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을 거다.”

-도의적 책임이라면 어떤 의미인가

“신남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번 정부가 가장 강조한 건 3P(People, Prosperity, Peace), 이 중에서도 사람(People)이다. 과거처럼 값싼 노동력과 시장 등을 이용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유대를 맺고 이해를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 협력뿐만 아니라 인적 교류, 교육, 미래세대 투자 등도 강조해왔는데 군부가 문민 정권을 뒤집은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만간 G7 회의에 참석한다. 한국의 역할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가 커지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국에서 국제사회에 기여를 해야 한다는 개념이 생긴 게 고작 10년 정도다. 중요한 계기는 반기문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된 것이다. 2010년 G20 정상회의, 2011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 등이 이어지면서 기여라는 개념이 대외정책에서 중요해졌다. 또 국제사회의 한국에 대한 기대 수준도 높아졌다. 노력이 필요해진 거다. 현 정부는 이전보다 더 적극적 역할을 하고 있다. 신남방 정책도 이러한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2020년 G20 화상 정상회의(2일차)에 참석해 제2세션의 주제인 '포용적·지속가능·복원력 있는 미래'와 관련 의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이 이러한 외교 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어떤 게 있을까

“가치외교, 그리고 기여외교는 눈앞의 이익을 생각하기보다는 국제사회의 공통 관심사에 주목해야 한다. 미얀마 사태도 지역적 문제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 증진이라는 가치에 역행하는 국제적인 문제다. 영국에서 이번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 한국과 호주, 인도를 초청했다. 여기서 한국 관련 이슈만 논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초대한 이유는 한국이 공헌할 역할이 있어서 부른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국제적 위상, 국격이 높아진거다. 이런 공헌을 통해서 우리가 중요시하는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서 국제사회의 우군을 넓힐 수 있다고 본다.”

-동남아에서 영향력을 오랫동안 행사해온 일본이나 중국은 왜 침묵하나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미얀마와 교류해왔다. 미얀마에 진출한 기업도 많고 경제적으로 미얀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우리보다 크다. 일본은 이런 이유 때문인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과 군부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일본은 미얀마 사태에 대한 입장을 낼 때 쿠데타 등의 용어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중국은 신장위구르 자치구나 홍콩 등의 문제로 인해 내정 불간섭 원칙을 내세운다. 게다가 시진핑 집권 이후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중요한 루트 중 하나가 미얀마를 지나간다. 이 때문에 현재 실권을 잡은 군부와 불편한 관계를 형성하기가 어렵다.”

-한국의 위치와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도 미얀마에 기업들이 진출해있다. 물론 일본이나 중국만큼 아직 미얀마와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얽히지는 않고 그런 점에서 여지가 있는 건 맞다. 그래도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또 고려할 점은 미얀마의 한류다. 엄청난 열풍이다. 방문했을 때 보니 미얀마에서 매일 밤 한국드라마가 방송되고 있더라. 대사관 관계자 말로는 미얀마 시골에 갔는데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한국을 친숙하게 생각한다. 미얀마의 노년층에 일본이 인기였다면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한국에 대한 친근감, 동경, 호감 등이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 정부의 적극적 제재가 미얀마 시위를 이끌고 있는 젊은 세대에 힘을 실어주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게 한국의 소프트파워로 연결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거다.”

-중국이 군부 배후에 있다는 분석이 계속 나오는데 가능성은

“중국으로서는 미얀마는 친중이 되어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중국은 과거 군부와도 잘 지냈고, NLD 문민정부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물론 NLD가 민주주의, 자유, 인권 등을 지향하니까 중국과 안 맞기는 하다. 하지만 굳이 엎을 필요는 없다. 군부가 부추기지는 않았을 거라고 본다. 다만 중국이 인권 문제에 민감하지 않은 만큼 군부가 중국에 기댈 수밖에 없을 거다.”

-군부가 강경 진압을 이어가는 배경은 뭘까

“미얀마의 민주화는 완벽한 민주화가 아니고 군부 이권을 인정하고 선거를 통해서 NLD가 정계에 일부 진출하는 구조다. 2015년도 그랬지만 지난해 총선에서도 NLD가 압도적으로 승리하면서 군부가 불안감을 느낀 것 같다. 기득권을 잃은 염려 때문에 선제적으로 나선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예전부터 국제사회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서방 제재는 실효가 크지 않을 거다.”

지난 2020년 당시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과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뉴시스


-NLD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사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정권을 잡은 후 깔끔하게 잘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민주화의 상징, 민중의 압도적 지지를 기반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군부와의 타협도 그렇고 행정적인 개혁 등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러한 NLD의 떨어지는 수권 능력이 군부에 명분을 준 측면이 있다.”

-미얀마 사태가 동남아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

“아세안(ASEAN)의 역할에도 상당한 시련이 찾아올 것이다. 아세안은 분명 성공적인 조직이다. 창립 이후 회원국 사이의 무력 분쟁도 없었다. 하지만 아세안은 개별 회원국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능력이 역부족인 지역기구이고, 그동안 동남아 지역정세가 불안정해지는 걸 막는데 기여해왔다. 현재 아세안 10개국 중 미얀마 군부에 대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나라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3개국뿐이다. 또 미국이 미얀마에 계속 제재를 가할 경우에는 군부가 중국과 더욱 밀착하게 되어 실질적으로 동남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향후 전망은

“군부의 현재 태도를 봐서는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후 태국을 모델로 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태국도 군부가 쿠데타를 한 후 민정 이양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쿠데타 주역이 총리를 하고 있다. 내전 가능성도 높지 않다. 무장한 소수민족 등과 결합한 무장봉기 움직임이 있지만 정규군과 수준 차이가 크다. 다만 미얀마 시민들의 비폭력 저항 운동 자체가 과거보다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그게 변수가 될 가능성은 있다.”

-우리 정부가 추가 대응을 할 여지는

“쉽게 예단할 수 없다. 상황이 더 악화가 되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 국제사회의 대응과 보조를 맞추면서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현재 조치도 우리 입장에서는 충분히 강한 것이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에 입각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만 그 방식이 반드시 제재일 필요는 없다고 판단된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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