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야, 장례식장이야?"..접객 중심 장례 문화 바꾸는 사람들

권혜림 2021. 3.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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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채비'에서 추모식을 진행 중인 모습. 사진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우리 어머니 정말 가신 거야?'

김상현(61)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이 10여년 전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든 생각이다.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충무로에 있는 한 건물 2층에 '작은 장례식'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 그는 "한국 장례 문화는 고인보다 조문객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부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조문객이 많이 와야 하는데' 하고 체면에 매달리게 된다. 가족끼리 고인과의 추억을 되새길 새도 없이 삼일장을 치른 후에야 우리는 이를 되묻게 된다"고 했다.

추모에 초점을 맞춘 복합장례 공간 '채비'의 탄생 배경이다. 채비는 지하에 밀폐된 일반 장례식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오후 내내 빛이 들고, 곳곳에 예술품이 걸린 모습이 갤러리 카페를 연상시킨다. 주례 단상처럼 보이는 새하얀 집기에는 국화 대신 다양한 종류의 흰 꽃이 꽂혀 있어 스몰 웨딩에 적합한 공간처럼 느껴질 정도다.

김 회장은 "남들처럼 빈소를 차리고 삼일장을 하는 등 자식으로서 '도리'를 해야 한다는 심리적 허들을 제거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만들었다"며 "국화가 무슨 의미가 있나. 고인이 좋아했던 꽃이 있으면 그걸로 단상을 꾸미면 된다. 괜히 불필요한 전통과 관례에 얽매이지 말고 장례를 하나의 문화 행사로 여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접객 아닌 '추모' 중심 장례

공간 '채비'의 내부 모습. 사진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채비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삼일장을 간소화한 '1일 가족장'과 빈소 임대료·식대를 없앤 '무빈소 가족장'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인의 시신은 안치실에 모시고, 추모는 채비에서 진행하는 식이다. 1일 가족장은 채비에 빈소를 차려 하루 동안 직계존비속을 비롯한 친인척을 초대해 고인을 기리고 추억을 나눈다. 무빈소 가족장은 일회성 추모식을 진행한 후 장례를 마무리한다.

한 조합원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1일 가족장을 채비에서 진행했다. 가족 구성원이 돌아가며 어머니에 대한 추모사를 읽고, 해외에 거주하는 손녀도 줌으로 함께 참여해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추모식의 한 순서로 그동안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엮은 영상을 상영하고, 고인의 유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김 회장은 "고인과 가까웠던 사람들이 모여 생전 찍은 사진, 유품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고인을 기리는 것"이라며 "'형식은 간소하되 추모는 깊이 있는' 장례식을 만들자는 취지로 이런 프로그램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공간 '채비'에서 추모식을 진행한 유족들이 마련한 '유품 테이블'. 사진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조회사, 상주들 정보 취약성 이용"
김 회장은 국내 상조 회사가 상주들의 빈약한 정보력을 이용해 이익을 독식하는 구조가 불합리하다고 비판한다. 이 문제점 개선을 위해 김 회장은 관, 수의 등 장례용품의 원가를 공개하고 공동구매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업계에 관습적으로 굳어진 납골당이나 묘지의 리베이트 비용은 조합원에게 되돌려준다. 또 원치 않는 서비스까지 포함해 계약해야 하는 대형 상조 회사의 패키지와는 달리 불필요한 품목을 제외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했다.

'작은 장례식'은 1인 가구 증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사회라는 구조 변화와 시장 분석을 바탕으로 고안됐다. 김 회장은 "1인 가구, 프리랜서, 고령자 유족, 소수자의 증가로 지금처럼 많은 사람을 초대하는 장례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가 확산할 것이라고 본다"며 "아울러 의미 있는 장례를 원하는 소비자도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채비는 장례식장 외에도 세미나, 공연 등 '복합 문화공간'으로의 변신도 꾀한다. 죽음에 대해 공부하고 장례를 이해하는 '채비 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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