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 가족이 사는 법

2021. 3. 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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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폴 오스터의 아내이자 인문학자, 소설가 시리 허스트베트와 그녀의 딸, 뮤지션 소피 오스터는 배움과 창작이라는 갈증을 공유한다.
「 지성으로 연대하는 즐거움 」
소설가 폴 오스터의 아내이자 인문학자, 소설가 시리 허스트베트와 그녀의 딸, 뮤지션 소피 오스터는 배움과 창작이라는 갈증을 공유한다. 함께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미술관을 거니는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눈빛만으로 통하는 사이가 됐다.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두 뉴요커를 만나보자.

두 사람이 함께 읽은 첫 번째 책을 떠올려보면

시리 허스트베트(이하 시리)소피가 태어나면서부터 매일 저녁 한 시간씩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소피가 혼자 읽을 수 있게 된 이후에도 열두 살이 될 때까지 이 습관을 지속했죠. 꽤 어릴 때부터 나이에 맞지 않게 브론테 자매와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의 책을 골라줬어요.

소피 오스터(이하 소피)열 살 때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었던 게 기억나요. 이런독서 습관과 제가 뮤지션이 된 것 사이에는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노래하며 공부했고, 지금도 여전히 책을 읽거나 오디오 북 듣는 것을 좋아해요. 덕분에 멜로디에 감각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녀가 공유했던 또 다른 취미생활이 있다면

소피지금까지도 캐롤 킹, 슈프림스, 니나 시몬의 노래를 엄마와 함께 들어요. 제 음악 교육의 일부는 지금은 사라져 버린 동네 음반 가게에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루 리드와 톰 웨이츠를 들으려 그곳에 가곤 했죠. 또 아버지는 몇 시간씩 쉬지 않고 영화를 보곤 했는데, 부모님이 좋아하는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나 주디 홀리데이, 셜리 매클레인, 진 할로가 나온 옛날 영화들을 보면서 자랐어요. 그 덕에 영화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고요.

시리 남편 폴과 함께 우리 셋은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떠났고 이탈리아, 아일랜드, 프랑스 등지에 있는 미술관에 다녔어요. 한 번은 소피를 친구 한 명과 함께 맨해튼에 있는 미술관 ‘프릭 컬렉션’에 몰래 들여보냈어요. 입장 기준인 열두 살이 안 됐지만, 워낙 키가 커서 아무도 눈치를 못 챘죠(웃음). 소피는 모든 일에 흥미를 갖고, 끝없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어요. 그리고 마침내 “나는 내 인생을 방 안에서만 보내고 싶지 않아. 나는 무대에 서고 싶어”라고 얘기하더군요.

어머니에게 여성 예술가가 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배웠나요

소피엄마는 위대한 행동가예요. 사람들이 제 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내 일을 지켜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걸 알려줬어요. 저는 평생 엄마가 투쟁하고 인내하며 승리를 거두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엄마처럼 강한 여성이 곁에 있다는 건 제게 엄청난 영향을 줘요. 엄마라는 본보기가 없었다면 음악을 하겠다는 꿈을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제가 선택한 길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일찍 깨달았어요.

시리창작은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이지만 온 세상이 당신의 다음 책이나 음반을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예술은 끈질긴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필연적으로 어려움과 고독, 고통 같은 감정과 마주해야 하죠. 한국에도 출간된 에세이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를 바라보는 한 여자〉에서 제가 인용한 심리학자의 논문에 따르면 “모든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위대함’의 일부를 가져야 한다”고 해요. 예를 들어 에밀리 디킨슨은 자신을 인정해 주길 바랐던 남성에 의해 끊임없이 좌절했어요. 하지만 자신에게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걸 확신했죠. 이것은 단순히 소질이 있느냐에 관한 문제가 아니에요. 디킨슨은 천재성과 동시에 ‘위대함’을 갖고 있었다는 의미예요.

두 사람이 꼽는 가장 위대한 여성은

시리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 영웅이에요. 〈제2의 성〉과 〈애매성의 도덕을 위하여〉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어요. 이렇게 대단한 작가들은 그 나라의 문화적 가치에만 기여하지 않아요. 보부아르는 세계적 문화 현상 그 자체였어요. 당시 미국 페미니스트들이 보부아르의 책을 읽고, 그녀를 철학자로 받아들였거든요.

소피에게 전수한 가장 중요한 정신적 가치는

시리타인에 대한 존중요. 그 누구에게도 자신만큼 복잡한 내면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해요. 여성과 소녀들은 ‘투쟁’을 늘 기억하고 행동해야 해요. 특히 예술 분야 일을 하는 여성들은 지속해서 여성 혐오와 성차별을 겪는데,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 말이죠. 또한 침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그게 어려울 때가 있더라고요. 겪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부당함과 싸울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에게 걸맞은 투쟁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 만약 침묵한다면 결국 스스로를 변질시키고 자신의 가치마저 떨어뜨리게 돼요. 그것은 필연적으로 나쁜 결과를 초래하고요.

소피 저도 동의해요. 저는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확고해지고, 아닌 것에 대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됐어요. 이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죠. 오랫동안 저는 어떤 것에도 의문을 품지 않고, 남들 기준에 적응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일단 거절하는 법을 배우면 묘한 힘이 생겨나요. 최근 어느 잡지사에 기고한 적 있는데, 첫 기사를 보내자마자 해당 기사를 뉴욕에 관한 가십 기사로 바꾸라고 하더군요. 즉시 엄마에게 전화해 “남에 대한 험담이 아닌 내가 관심을 두는 것에 관해 쓰고 싶다”고 말했어요. 엄마는 “그 사람들에게 지금 한 말을 그대로 해”라고 하셨죠. 그 말을 따랐고, 저는 제 기사의 주제를 직접 고를 수 있었어요. 외할머니께서도 늘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절대 하지 말 것.”

투쟁에 관해 좀 더 깊게 얘기해 볼까요. 두 사람이 함께 ‘트럼프에 반대하는 작가들(Writers Against Trump)’이라는 문학적·정치적 단체를 설립했던데, 트럼프가 재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단체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나요

시리민주주의 정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로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지난해 8월 몇몇 작가 동료와 이 단체를 만들었어요. 이번 선거는 우리 둘 모두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였어요. 이 단체는 현재도 활동 중이에요. 이 일이 끝나면 다음 목표를 정하기 위해 다시 모일 거예요.

소피이름을 바꿔야 할 수도 있어요. 명확한 정치적 견해가 있는 단체를 통해 우리는 계속되는 사회적 혼란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거예요. 분열된 사회 속에서 우리를 이끌어줄 지성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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