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강압 행동 우려" 中 "미국이나 잘해라" 카메라 앞 난타전

박현영 2021. 3. 1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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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고위급 회담 알래스카에서 시작
언쟁 오가면서 모두발언만 1시간 넘겨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국원. [AFP=연합뉴스]


"우리는 신장, 홍콩, 대만, 미국에 대한 사이버 공격, 우리 동맹에 대한 경제적 강압 같은 중국의 행동에 대한 깊은 우려를 논의할 것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우리는 미국이 더 잘하길 바란다. 인권 문제에 있어 미국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단지 지난 4년에 걸쳐 나타난 것이 아니다."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후 18일(현지시간) 처음 열린 미국과 중국 간 고위급 회담은 시작부터 '난타전'이었다. "강경하게 나가겠다"고 미리 예고한 미국뿐 아니라 중국도 작심한 듯 상대방의 '아픈 부분'에 직격탄을 쏟아냈다. 회의 초반 언론 공개를 위해 통상 몇 마디 주고받는 모두 발언 과정에서만 반박과 재반박이 이어지며 1시간 넘는 설전이 벌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미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캡틴 쿡 호텔에서 열린 회의에는 미국 측에서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중국 측에선 양제츠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참석했다.

포문은 초청국인 블링컨 장관이 열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서부 신장 자치구의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탄압을 비롯해 홍콩과 대만의 문제를 거론했다. 미국은 여러 차례 신장 사태는 "대량 학살"이라고 규정했지만, 카메라 앞에서 중국 면전에 대놓고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양 정치국원은 "신장, 홍콩, 대만은 분리할 수 없는 중국 영토"라며 "미국의 내정 간섭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이어 미국은 정치·군사적 힘을 다른 나라를 억압하는 데 사용하지 말고 자기 문제에나 신경 쓰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미국 내 흑인 인권 문제를 거론했다. 또 사이버 공격에서는 "미국이 챔피언"이라면서 "이 문제로 다른 사람 탓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반격했다.

지난 18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오른쪽에서 두번재)이 중국 측 발언을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링컨 장관이 일본과 한국 방문을 마치고 막 귀국했다고 언급한 데 대해서도 양 정치국원은 "그 두 나라는 중국의 2위, 3위 교역국"이라며 "우리는 서로 아는 친구가 많아야 한다"고 받아쳤다. 미국이 자랑하는 동맹이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양 정치국원 일장연설은 15분간 이어졌다. 긴 시간 중국어로 말하는 동안 미국 측은 통역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양 정치국원은 "블링컨 장관, 설리번 보좌관이 오프닝 멘트를 조금 다르게 해서, 내 발언도 약간 다를 것"이라며 미국 측이 공방전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미·중 고위급 회담 시작부터 난타전.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블링컨 장관도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양측 발언이 끝났다고 생각해 회의장을 떠나려던 기자들을 붙잡더니 중국 측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미국도 인권 문제 관련해 실수하고 완벽하지 않지만, 열린 자세로 투명하게 도전에 맞서기 때문에 더욱 강해지고 나아진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은 문제를 외면하거나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척하거나 카펫 밑으로 밀어 넣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 당국의 불투명성을 공격한 것이다.

블링컨 장관의 발언이 끝나고 나가려던 기자들을 이번에는 양 정치국원이 붙들었다. TV 카메라에 대고 영어로 "잠깐만(Wait)"이라고 다급하게 외쳤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재반박에 나선 양 정치국원은 미국 태도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는 "강압적인 방법으로, 힘의 우위에서 모두 발언을 하는 게 미국 측 의도였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치밀하게 계획되고, 준비되고, 조정된 것인가. 이것이 당신들이 이 대화를 수행하기를 바랐던 방식이냐"고 따졌다. 이어 "우리가 미국을 너무 좋게 생각했다"면서 "미국이 외교 프로토콜에 따를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회의 진행 상황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미국이 강대국 입장에서 중국과 대화하길 원한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면서 "미국이 중국과 제대로 일하고 싶으면 필요한 프로토콜에 따라 올바른 방법으로 일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겠다"며 발언을 마쳤다.

옆에 있던 왕 외교부장도 거들었다. 그는 "우리가 출발하기 직전 미국이 새로운 제재를 부과했다"면서 "이런 식으로 손님을 맞아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회담 전날인 17일 미국이 홍콩 탄압과 관련한 중국 인사 24명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발표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왕 부장은 "미국이 중국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내린 결정인지 의심스럽다"면서 "만약 그렇다면 잘못 계산됐고 미국 내부의 취약점과 약점을 반영할 뿐이라고 말했다.

공방은 장외로도 이어졌다. 미국은 회담장 밖에서 기자들에게 별도 브리핑을 통해 중국 측이 룰을 어겼다고 설명했다. 미 행정부 관계자는 "중국 대표단이 각각 2분씩 주어진 프로토콜을 어겼다"면서 중국이 의도적으로 행동했다고 비판했다.

미국 행정부 고위 관리는 NYT에 "중국이 국내 청중을 의식해 한 행동이며, 외교적 논의에서 별로 성과가 없으리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회담장에서 나간 뒤 양측이 온도를 낮춰 당초 계획보다 훨씬 더 오래 실질적인 대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회담이 시작부터 '화약 냄새'로 가득했으며 "이는 중국이 애초 바랐던 것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이번 회담이 험난할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있었다. 미국과 중국은 회의의 성격부터 의제까지 제대로 합의되지 않은 채 회담에 들어갔다. 미국은 일찍이 인권과 첨단기술 침해, 무역 등 중국과의 모든 문제를 가감 없이 다루고, 중국에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변화를 보여주도록 요구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날 1차 회담 후 싸늘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2차 회담도 한 시간 만에 종료됐다. 양측은 19일(현지시간) 오전 3차 회담을 열 예정이다.

애틀랜타=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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