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 모두 사망한 다문화가정 자녀, 어찌 됐을까

송하성 2021. 3. 19.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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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외국으로 가지 않도록 힘을 모은 지역사회 이야기

[송하성 기자]

 
 생전 기자와 인터뷰를 하던 김그레이실씨(가운데), 왼쪽은 친정엄마, 오른쪽은 김인순 경기도의원
ⓒ 송하성
2019년 3월 엄마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자에게 이야기했다. 

"제가 잘못 되더라도 우리 딸은 필리핀으로 보내지 마세요. 이 아이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에서 자라야 해요."

난소암이 재발해 사경을 해매던 필리핀 출신 김그레이씨는 지난 1월 끝내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그는 2008년에 한국에 온 뒤 국적 취득 시험에 여러 번 응시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그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으니 우리는 그저 한국에 살던 외국인 한 명이 사망했다고 말해야 할까.

떠난 엄마, 남겨진 아이
 
 지난 1월 진행된 김그레이실씨의 장례식. 그는 떠났지만 아이가 남았다.
ⓒ 송하성
그는 2008년에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 왔다. 전라남도의 한 섬에서 한국생활을 시작한 그는 남편의 폭력적인 성향 탓에 2013년 어린 딸을 데리고 도망치듯 섬을 나왔다. 그의 남편은 이듬해 술을 마신 뒤 바다에 빠져 사망했다. 한부모가정의 엄마로서 딸과 함께 화성시의 임대주택에서 생활하던 그는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김씨는 한국에서의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삶을 뒤로하고 먼 곳으로 갔지만 우리에게는 한 가지 과제가 남았다. 바로 그의 딸, 한국인인 우리의 딸 영희(가명, 12세)다. 

영희는 이제 어디에서 생활해야 할까? 전남의 섬에 생존하고 있는 영희의 친할머니는 현재 질병과 노령으로 손녀를 양육할 여건이 못된다.

필리핀에 외할머니가 있으나 외가도 여러 가지 여건이 영희를 돌볼 상황이 아니다. 실은 필리핀에 영희를 보내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필리핀이 나쁜 곳이라는 뜻이 아니다.  

12살 영희가 필리핀에 가서 생활한다면 이 아이는 필리핀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모두 잊고 생활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약 10년 뒤 성인이 되면 자신의 모국인 한국에 돌아올 것이다. 한국 사회가 엄마와 아빠가 모두 사망한 아이 하나를 책임지지 못해 필리핀으로 보내고 '한국을 잊어버린 한국인'을 만든다는 것은 온당치 않다.  

실제로 재외동포재단은 지난해(2020년) 10월 발표한 '2019 베트남 거주(체류) 한-베 다문화 가정 자녀 실태조사'에서 한국 남성과 이혼한 뒤 베트남으로 돌아간 귀환 결혼이주여성이 동반한 한국 아동이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지역사회가 나서다

실은 김씨가 투병생활을 하던 2018년부터 지역사회의 여러 기관들이 그의 곁을 지켰다. 

화성시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긴급 사례관리에 나서 엄마의 병원 입원과 수술 등에 동행했다. 영희가 집에서 방치되지 않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엄마의 의료비 지원을 위해서도 애썼다. 화성시드림스타트는 영희의 건강검진을 지원하고 역시 지속적인 사례관리를 진행했다. 화성남부종합사회복지관은 영희네 집에 후원품을 전달하고 자원봉사단이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했다.

화성시립남부아동청소년센터는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는 영희가 센터를 이용하고 심리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김씨가 사망한 뒤에는 향남읍행정복지센터가 장례비용 등을 지원하고 수급상황을 점검했으며, 화성시청 아동보육과는 영희의 양육권이 어디에 있는 확인하고 입소시설을 연계하는 등 행정지원을 했다.

그 결과 영희는 수원의 아동보육시설 나자렛집에 입소했다. 보통 양육자가 없는 아동이 일시보호소를 거쳐 보육시설에 입소하는데 3개월 이상이 걸리지만 영희는 여러 기관의 노력으로 1달만에 처리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아동보호서비스 체계가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김인순 경기도의원이 확인하고 점검했다. 김 의원은 김씨가 투병생활을 하던 2017년부터 그의 곁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챙겼다. 김씨가 생전에 건강보험을 회복하고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얻은 것, 그리고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었던 것 모두 김 의원의 노력의 결과였다.

우리 모두가 영희의 엄마다

지난 3월 8일 경기도의회 경제노동위원회에서 '아동 돌봄 통합 사례 관리 간담회'가 열렸다. 영희의 사례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힘을 모은 기관들이 지난 일정을 확인하며 김씨를 추억하고 영희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점검하기 위한 자리였다.

김인순 의원은 "2017년 겨울에 그레이실씨의 암이 발병했는데 반지하였던 그의 집에 가보면 그는 늘 울고 있었다"며 "행복을 찾아 한국에 왔지만 힘들고 어렵게 살다가 떠난 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부채감도 생겨 가까이에서 도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이제 아름다웠던 그는 우리 곁에 없지만 영희가 남았다. 이 아이를 우리가 책임지기 위해 지역사회의 여러 기관들이 나서서 혼신의 노력을 해주신 것에 감사한다"며 "'우리 모두가 영희의 엄마다'라는 심정으로 앞으로도 영희의 생활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영희를 돌보게 된 나자렛집 원장수녀는 "영희는 보육원에 와서 잘 생활하고 있다. 영희는 어린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먹을 것이 있으면 보육교사에서 먼저 권하는 예의 바른 아이다"라며 "보통 보육원에 오는 아이들은 과거에 어떻게 생활했는지 알 수 없어 양육에 어려움이 큰데 영희는 여러분들을 통해 그간의 사정을 모두 확인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영희를 잘 돌보겠다"고 말했다.
 
 3월 8일 경기도의회 경제노동위원회에서 진행된 ‘아동 돌봄 통합 사례 관리 간담회’. 영희가 보육시설에 입소하기까지 힘을 모은 사람들이 모였다.
ⓒ 송하성
영희가 아동보육시설에 입소한 것이 최선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역사회의 모든 이들이 한마음으로 나서 한국인 영희가 외국에서 생활하며 한국을 잊어버리는 것을 막았다는 점에서 차선을 선택했다고 믿는다. 

이런 과정을 하늘나라에서 지켜본 영희 엄마 김그레이실씨는, 자신의 딸이 필리핀으로 보내지기를 원치 않았던 엄마는 아마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을까. 그가 생전에 기자에게 했던 말이 마음 속을 맴돈다. 

"암에 걸렸는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혼자서 많이 울었어요. 지금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니 위로가 많이 돼요. 그분들 모두에게 너무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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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기다문화뉴스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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