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화두 던진 10년전 승민이 죽음..母 "아직 사과 못받았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학교폭력 상처에는 통하지 않는 것 같아요. 10년이 지났지만 승민이 방에 가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요."
10여년 전. 같은 학년 또래 2명의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14살 대구 소년 고(故) 권승민군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 권군 어머니 임지영(57)씨는 지난 1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세월이 지났지만, 슬픔이라는 건 그냥 익숙해지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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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까지 줍다…'사랑해요. 죄송해요. 엄마'
중학교 2학년이던 승민이는 2011년 12월 금품갈취·협박·폭행·물고문 등에 1년여간 시달렸다. 폭행 가해 학생들에게 돈을 상납하기 위해 폐지까지 주우러 다닐 만큼 학교폭력의 고통을 겪었다.
개그맨·검사를 꿈꾸던 소년은 결국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집 아파트 7층 베란다에서 몸을 던졌다.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기다리고 있을게요. 사랑해요. 죄송해요. 엄마…'라고 쓴 손글씨 유서를 남기고서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면서 10년 전 대한민국은 승민이를 함께 애도했고, 함께 울었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우리 사회에 처음 부각한 안타까운 대구 소년의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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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열린 승민이 방…멈춰선 10년
인터뷰 내내 승민이 이야기를 할때마다 임씨의 목소리는 눈물을 삼키는 듯 떨렸다. "우리 집에 방이 4개가 있는데, 아직 현관 앞 승민이 방은 그대로 있어요." 승민이 방에는 생전 즐겨 읽던 세계사 책, 한국사 책, 철학 관련 책이 책상에 꽂혀 있다. 예전 승민이가 쓰던 시계와 세계지도도 그대로다.
승민이 방문은 항상 열려있다. 10년간 가족 누구도 방문을 닫지 않아서다. "출근길·퇴근길 승민이 방 쪽을 쳐다보며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해요. 방문이 열려 있으니, 책상위에 놓인 승민이 사진이 바로 보이거든요."
임씨는 10년 전 학교폭력을 저지른 학생 2명에게 아직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승민이에게 학교폭력을 가한 또래 2명은 각각 징역 2년과 3년형을 선고받고 소년 교도소에 수감됐었다.
"이제 20대 성인이 됐을 건데, 출소 후 소식은 알지 못해요. 동네에서 두 가족 모두 이사를 갔다는 정도만 압니다. 솔직히 떠올리기가 싫어요. 막상 얼굴을 마주하면 분노가 또 치밀 것 같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론 이제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승민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교사다. 하지만 승민이가 세상을 등진 직후, 아버지는 "가장으로 금쪽같은 내 아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며 학교를 그만뒀다. 현재는 어머니 임씨만 교사로 재직 중이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승민이 형은 10년간 동생 자리까지 채우려 노력했다고 한다.
가족들의 상처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것 같았다. 승민이 가족은 동네 단골 고깃집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승민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단골 고깃집에서 "작은 아들은 왜 같이 안 왔냐"고 물어오기 때문이란다.
지난달 25일은 승민이의 생일이었다. "2월 25일 승민이 생일 때 우리 가족은 승민이가 좋아하던 치킨·햄버거·피자를 사서 추모공원을 찾습니다. 승민이가 떠난 뒤 우리 가족은 이렇게 10년째 서로를 보듬고 달래며 지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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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후 "피해자 치유센터 조성" 말뿐
아들을 먼저 보낸 뒤 임씨는 당시 30㎏대로 몸무게가 줄었다. 현재는 식도염·위궤양 등 건강 문제까지 겹쳐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건강보다 더 답답한 게 '약속' 문제라고 했다.
"승민이가 떠나고 학교폭력이라는 문제가 처음 불거진 당시엔 정부에서 '지역마다 피해자 치유센터를 만들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실제 대전에 있는 해맑음센터 하나로 끝났습니다. 우르르 달려들어 문제만 제기하고, 그대로 식어버린 셈입니다. 학교폭력이 계속 반복되는 이유인 것 같아요."
임씨는 "지금도 학교폭력 활동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모든 학교폭력 제도의 중심에는 피해자의 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는 학교에 상담실(워클래스) 하나 만들어놓고, 가해자·피해자가 다 이용합니다. 전담경찰도 있지만, 홍보활동 정도가 전부인 것 같아 아쉬워요."
최근 연예계·스포츠계에서 쏟아지는 과거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 학교폭력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에 대해 나쁘게만 보면 안 됩니다. 그 당시에 해결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고통이 쌓여서 폭발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라고 했다.
임씨는 승민이가 떠나자 '학교폭력과의 전쟁'의 제1선에 서서 싸웠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딛고 학교폭력 근절을 촉구하면서 책도 펴냈다. 2012년 7월 쓴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를 통해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과 학교폭력의 무서움을 알렸다. 가해 학생에 대한 형사처벌과 별도로 민사소송도 제기해 학교법인과 교장·담임교사·가해자 부모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끌어내기도 했다.
지금도 수시로 전국 학교폭력 피해 학생 부모를 만나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있다는 임씨는 작은 꿈이 있다고 했다.
"교사 은퇴 후엔 학교폭력 피해자의 심리 상담을 하는 봉사를 하고 싶어요. 승민이가 하늘에서라도 보고 엄마를 뿌듯해하지 않을까요."
대구=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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