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부동산 정책의 악순환

2021. 3. 18.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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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과거 정부 부동산 정책들을 들여다보면 실패의 연속이었다. 큰 흐름을 보면 ‘완화(박정희, 전두환)→규제(노태우)→완화(김영삼, 김대중)→규제(노무현)→완화(이명박, 박근혜)→규제(문재인)’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유는 자명하다. 역대 정권마다 근시안적인 부동산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과거와 미래를 등한시한 채 현재의 시장에만 집착했다는 얘기다. 다음 정권이야 어찌 되든 자신들의 집권 시기에만 모면하면 된다는 식이다. 이런저런 정책이 시장에 먹혀들지 않으면 막판에는 전(前) 정권 탓으로 돌리는 것이 레퍼토리였다.

굳이 성공적인 정책을 편 정부를 꼽는다면 노태우정부(1988~93년)다. 공급 확대와 수요 억제의 이상적인 부동산 정책을 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꾸준히 상승했던 부동산 가격이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폭등 양상을 보이자 토지공개념을 도입해 토지초과이득세를 부과하는 한편 주택 200만 가구 공급 대책을 내놓았다. 수도권의 1기 신도시(평촌 산본 일산 분당)가 이 시기에 만들어지는 등 공급한 주택만도 총 214만 가구에 달했다. 문재인정부를 제외하고 최악의 경우는 노무현정부(2003~2008년)다. 부동산 시장은 폭발했고 대책이 30여 차례나 쏟아졌지만 서울 아파트값은 57%나 치솟았다. 오죽했으면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신년 연설에서 “부동산 문제에 대해 죄송합니다. 올라서 미안하고, 또 국민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하고 한번에 잡지 못해서 미안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였을까.

그런 점에서 2006년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일본 부동산 버블 경험의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 냉온탕식 정책에 의해 정책의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 있으므로 정책의 근간을 유지하고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부동산 버블’ 붕괴 시 경제적 충격이 매우 크며 대응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정책 운용을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버블이 형성돼 있을 경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급격히 터뜨리지 말고 서서히 둔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25차례의 대책을 쏟아내고 있는 문재인정부는 초기만 해도 수요 억제에 주력했지만 지금은 주택 공급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월 4일 대책을 발표하면서 “2025년까지의 공급물량은 83만 가구로 연간 전국 주택공급량의 약 2배에 이르며, 서울에 공급될 32만 가구는 서울시 주택 재고의 10%에 달하는 ‘공급쇼크’ 수준”이라고 했다. 2·4 대책에서 제시된 서울 32만3000가구 등 수도권 61만6000가구를 합하면 현 정부의 수도권 주택 공급 물량은 총 188만8000가구로 불어나게 된다. 서울 전세대책 물량 7만5000가구를 더하면 주택 수는 더 늘어나게 된다. 이는 노태우정부의 수도권 200만 가구 공급 계획과 맞먹는 수준이다. 하지만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의 책임을 지고 2·4 대책의 후속 입법 기초 작업까지만 수행하고 물러나는 ‘시한부 장관’이 되면서 메가톤급 공급 대책은 불투명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신도시 투기 사태에 대해 ‘부동산 적폐’라면서 그 책임을 마치 과거 정부에 돌리는 듯한 발언을 했다.

만일 주택 공급 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된다면 당장의 집값은 잡을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향후 수년 뒤에는 공급이 너무 많아 주택 시장에 쇼크가 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사업이 실제로 2025년까지 잘 진행된다면 주택 과잉 쓰나미에 부동산 버블은 급격하게 붕괴될지도 모른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서 보듯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그러면 다음 정부는 이런저런 반대 정책을 쓰다 실패하면 또 이럴 것이다. 문재인정부 탓이라고. 이런 악순환, 끊을 때도 됐다.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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