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츄리닝' 벗어던진 여심..코로나에 '공주 원피스' 뜬다
회색 트레이닝복과 운동화만 팔린다는 풍문이 돌 정도로 지난 1년의 팬더믹이 패션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고, 백신이 도입되면서 패션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11일 의류브랜드 ‘H&M’과 영국 디자이너 시몬 로샤(Simone Rocha)가 협업한 한정판 컬렉션이 온라인으로 판매됐다.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은 시몬 로샤는 장식적이고 화려한 스타일의 의상을 주로 선보이는 디자이너다. 이번 협업 컬렉션도 주름 장식이 길게 달린 원피스부터, 소매를 잔뜩 부풀린 트렌치코트, 커다란 리본 장식을 단 진주 머리띠까지 마치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과장된 드레스를 연상시키는 의상들로 구성됐다. 리본, 튤(얇은 그물 편직 옷감), 자수, 주름 장식, 진주, 꽃무늬 장식 등 시몬 로샤가 즐겨 사용하는 상징적 디자인을 고루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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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늬 하늘하늘 원피스 ‘완판’...중국선 서버 다운
이 컬렉션은 오전이 지나기 전에 전 품목이 매진됐다. 구매 대기자들은 인기 품목의 경우 거의 ‘순삭(순식간에 삭제)’이었다며 SNS에 아쉬운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중국에선 구매 접속자가 몰려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등 전 세계적 인기를 자랑했다. 저렴한 가격의 디자이너 의상이라는 점도 인기 요인이지만, 여심을 자극할만한 ‘가장 어두운 시대에 탄생한 로맨틱 룩’이라는 평가가 컸다. 코로나19로 집 반경 1마일 이내서 입을 수 있는 간편한 옷을 일컫는 ‘원마일웨어’가 대세가 됐지만, 여전히 봄에는 꽃무늬와 리본으로 장식된 옷에 눈길이 간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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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풍 신발부터 파스텔 의상까지, 완연한 봄 왔다
공주풍 스타일을 가리키는 ‘메리 제인 슈즈’의 인기도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 발등을 가로지르는 밴드가 있는 둥근 굽의 메리 제인슈즈는 사랑스러운 패션을 상징하는 아이템이다.
봄을 맞아 ‘페미닌(feminine·여성적인)’ 패션을 선보이는 브랜드도 많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지컷’은 ‘로스트 가든 컬렉션’을 새롭게 선보이면서 주름 장식 블라우스, 부풀린 소매의 상의, 꽃무늬 패턴의 셔츠형 원피스 등을 출시했는데 3월 출시 한 주 만에 재생산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해외 디자이너 브랜드도 예외는 아니다. 톰포드·발렌티노·마르니 등은 꽃무늬 드레스로, 버버리·디올·프라다 등은 밝은 색조의 코트로, 토즈·클로에·질샌더 등은 연보라·레몬 등의 파스텔 톤 의상으로 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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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로부터의 탈출...‘해독 패션’ 뜬다
글로벌 온라인 패션 편집숍 ‘네타포르테’는 2021년 봄·여름 트렌드 보고서에서 “많은 디자이너가 ‘긍정적이고 밝은 스타일의 패션’ 트렌드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며 “다양한 질감의 옷감에서 대담하고 밝은 컬러의 향연이 펼쳐졌다”고 설명했다. 일명 ‘해독 패션’에 대한 분석도 덧붙였다. 올봄에 섬세하고 아름다운 꽃무늬, 가벼운 쉬폰 소재, 하늘하늘한 드레스 등 여성스러운 옷들이 유난히 눈에 띄는 이유로 “지난 ‘격리’에 대한 해독제”라고 해석했다.
지난 겨울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브리저튼’의 인기 요인으로 화려한 패션이 꼽히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1800년대 영국 귀족 가문의 로맨틱한 패션이 우울한 팬데믹 시대에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패션 전문매체 WWD는 “브리저튼에 등장하는 화려한 코스튬 패션은 격리로 인한 불쾌감에 대한 해독제”라며 “현재 소비자는 패션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소비 트렌드 분석가 이정민 트렌드랩 506 대표는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 이후에도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로 불리는 시기가 왔다”며 “옷 입기에 대한 즐거움을 새롭게 발견하고자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표현적이고 장식적 패션을 소비하는 움직임으로 발현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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