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댓·실검·리딩방·국민청원..'좌표'에 들썩이는 대한민국

노승욱, 박지영 2021. 3. 16.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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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유튜브에서 ‘댓글 전쟁’이 벌어졌다. 방송인 장영란 씨가 동아제약을 방문해 생리대 제품 할인 협상에 나서는 ‘네고왕2’ 5회 영상에서다. “지난해 동아제약 채용 과정에서 성차별을 당했다”는 댓글이 발단이 됐다. 인사팀장이 유일한 여성 면접자였던 자신에게 ‘여자는 군대 안 가니까 남자보다 월급 적게 받는 것에 동의하냐?’고 물었다는 것. 동아제약은 사실 확인 후 공식 사과하고 인사팀장에게 보직 해임과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후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번졌다. 논란이 남녀 간 성 대결 양상으로 비화되며 각종 커뮤니티에서 유튜브 영상 링크를 공유, 소위 ‘좌표’를 찍어 댓글 전쟁을 벌인 것. ‘좌표를 찍는다’는 것은 ‘특정 기사, 콘텐츠, 인터넷 게시글 등의 주소 링크를 복사해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널리 퍼뜨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3월 11일 현재 해당 영상에 달린 댓글은 2만8000여개로, 앞의 1~4회 영상 댓글을 모두 합친 것(총 3만1000개)과 맞먹는다. 댓글에는 ‘남초(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서 좌표를 찍은 것 같다’ ‘페미(페미니스트)들이 좌표 찍고 공격 중’ 등의 상호 비방이 난무한다.

대한민국이 ‘좌표’에 들썩이고 있다. 온라인 뉴스(기사 댓글)부터 주식(리딩방), 포탈(잠깐용어 참조), 유튜브, SNS, 국민청원에 이르기까지 ‘링크 공유’ 방식의 좌표 찍기(잠깐용어 참조)가 난무한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스타나 콘텐츠를 공유하는 ‘취향 추천’으로 시작했다. 요즘은 진영 간 여론전을 넘어 주가나 실검(실시간 검색어), 베댓(베스트 댓글), 각종 차트 순위를 조작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오프라인에서 드러내기 힘든 민의(民意)의 적극적 반영’이라는 긍정론과 ‘특정 세력의 선동 혹은 공작에 악용될 수 있다’는 부정론이 엇갈린다.

정치권은 좌표에 더해 실시간 검색어도 의견 표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네이버 홈페이지 갈무리>
▶정치

▷소수 의견 공론화 vs 실력 행사

정치는 최근 좌표 찍기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분야 중 하나다.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정치 성향이 강한 커뮤니티, 유튜브 채널의 게시물을 SNS상에 퍼나르며 여론 형성 작업이 한창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오프라인 집회가 제한된 상황에서 이는 표현의 자유를 충족시켜주는 면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억울한 마음을 풀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는데 청와대 국민청원은 그 전형적인 공간이 돼주고 있다”고 말했다. 3월 11일 기준 현재까지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명 이상 동의에 도달한 청원글은 총 228건으로, 누적 동의 횟수는 1억8784만건에 달한다.

좌표는 잘만 찍으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

최근 대중의 공분을 산 ‘정인이 사건’이 대표 사례다. 입양된 16개월 아이가 지난해 10월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하자 한 달 뒤 ‘입양아 사망 사건-3번의 학대 신고에도 아이를 사지로 몰고간 무능한 경찰을 처벌해주시고, 아동학대법을 강화해주세요’라는 청원글이 올라와 12만명이 동의한 것이 발단이 됐다. 지난 1월 한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에서 해당 사건을 자세히 보도했고, 이후 다시 올라온 ‘정인이를 두 번 죽인 양부모 처벌을 중형으로 바꿔주세요’라는 청원글에는 28만명이 동의했다. 방송을 통해 사건을 접한 네티즌들이 청원글을 SNS로 퍼 나르며 첫 청원의 두 배 넘는 동의를 받아낸 것이다. 경찰의 초동 대처가 부실했다는 국민적 공분 속에 양부모는 재판에 넘겨졌고, 이후 아동학대 신고가 37% 급증하는 등의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반면, 무분별한 좌표 찍기를 실력 행사에 이용하는 경우도 적잖다. 지지층 관리가 중요한 정치권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조국 사태’ 당시 ‘조국 힘내세요’와 ‘조국 사퇴하세요’ 문구가 잇따라 네이버 실검 1, 2위에 오른 것이 대표 사례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지지 댓글을 베댓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댓글 주소를 퍼 나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드루킹처럼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추천 수를 조작하면 업무 방해로 불법 행위가 되지만, 의도적으로 특정 댓글 추천을 종용하는 행위는 처벌이 어렵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치 분야에서 좌표를 확산시키는 행위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정치는 진영 싸움이다. 자기 진영 사람을 모으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좌표도 퍼 나른다. 둘째, 우리나라 국민 성향이 정치 지향적이다. 그래서 개인 소신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인터넷과 온라인 문화 발달 영향이다. 다양한 SNS에 형성돼 있는 작은 소통 그룹들이 많다. 이런 곳에서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모으는 수단으로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경제

▷주식도 좌표 찍듯…게임스탑 ‘대란’

지난 1월, 미국 월가에서는 개미(개인투자자)들과 기관 사이에 한바탕 전쟁이 일어났다. ‘게임스탑’ 주식을 공매도하는 기관들에게 저항하기 위해 해당 주식 매수 운동을 벌이면서다. 미국의 대표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주식토론방 ‘월스트리트베츠’에서 게임스탑 주식을 매수하라는 좌표가 찍혔고, 해당 주가는 연초 대비 1700% 넘게 급상승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일부 헤지펀드가 공매도 포기를 선언할 때까지만 해도 개미의 반란은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갑자기 급등한 주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며 1월 27일 347달러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일주일 만에 7분의 1토막으로 급락했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게임스탑 주가는 최근 다시 265달러까지 치솟으며 비정상적인 급등락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월가를 뒤흔든 게임스탑 사건은 좌표 찍기가 경제 분야까지 옮아간 대표 사례로 꼽힌다. 다른 분야에서 좌표 찍기가 여론 선동이나 왜곡의 문제를 낳는다면, 경제 분야에서는 금전적 손실이라는 실질적 피해로 귀결될 수 있다. 뒤늦게 ‘게임스탑 총공’에 가담한 개미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주가에 상당한 손실을 입었을 수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 모기지(주택담보대출) 회사 ‘로켓컴퍼니’가 제2의 게임스탑 사례로 거론되며 또다시 주가가 출렁였다.

진원지는 역시 레딧. 이 종목에 공매도가 몰리자 주식 매수 좌표가 찍혔고, 이로 인해 단기간에 주가가 급등하자 “4시간 만에 2억원 넘게 벌었다”는 글까지 올라오며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두 배 이상 급등한 이 회사 주가는 하루 만에 급락, 현재는 고점 대비 거의 반 토막 난 상태다.

게임스탑이나 로켓컴퍼니가 대중들의 자생적 좌표 찍기라면, 한쪽에서는 전문가를 사칭하는 이들의 종목 찍어주기도 성행한다. ‘주식 리딩방’이다. 유사 투자자문업자가 ‘큰 수익’ ‘100% 환불’ 등의 감언이설로 개미들을 유혹한 뒤 특정 종목 사재기를 종용한다. 그러나 막상 손실이 발생하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위약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시가총액이 작은 중소형주의 경우 리딩방의 종목 찍어주기로 얼마든지 시세 조작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인위적 투자는 기업가치와 무관할 수 있고 시장 변동성을 높여 다른 투자자의 손실을 불러오게 된다. 주가가 급락해도 피해 복구도 어려운 만큼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당부했다.

방송인 장영란 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네고왕2’의 댓글란은 동아제약 성차별 채용이 문제가 되며 싸움터로 변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문화

▷연예인 응원하려 실검 조작도

좌표를 찍고 해당 링크나 자료 퍼 나르기는 아이돌 팬덤에서 주로 이뤄지던 문화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온 기사나 영상의 순위를 높이기 위해 링크를 퍼 나르는 것 또한 일상적이다. 강남에 거주 중인 대학원생 박민영 씨(26)는 “팬카페 같은 곳에 유튜브와 네이버tv, 기사 링크를 정리해 올린 글이 자주 올라온다. ‘팬심’으로 해당 링크를 타고 들어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팬심에 의한 자연스러운 ‘덕질’로 볼 수 있다.

요즘은 한발 더 나아가 ‘실검 총공(잠깐용어 참조)’에까지 이른다. 집단으로 동시에 검색어를 입력해 전 국민이 보는 포털 사이트 첫 화면 실검 순위에 밀어 올리는 것이다.

지난해 불법 도박 논란을 빚은 가수 김호중 씨 사례는 실검 총공의 힘을 잘 보여준다. 그의 팬들이 ‘김호중 응원해’라는 키워드를 포털 사이트 실검의 높은 순위에 띄운 것. 6만명 이상 회원을 보유한 김호중 공식 팬카페에서 ‘김호중 응원해’를 계속 검색하라는 ‘지령’을 공지사항으로 하달한 결과였다.

실검 끌어 올리기는 MZ세대 사이에서 온라인 시위의 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대학교 강의의 질이 떨어졌다며 ‘○○대 소통하라’는 키워드를 반복 검색해 네이버 실검 순위에 올렸다. 연세대, 이화여대, 경희대 등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무한 ‘RT(리트윗)’와 ‘총공’으로 참여한 결과다.

상황이 이렇자 네이버는 지난 2월 실검 서비스는 물론, 뉴스토픽 순위도 모두 종료했다. “인터넷 산업이 기존과 비교할 수 없는 규모로 성장하면서 사용자들의 검색 니즈가 다양화됨에 따라 실검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것이 네이버가 밝힌 공식 이유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특정 세력에 의한 실검 조작이 반복되며 각종 논란에 휘말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좌표 찍기, 어떻게 봐야 하나

▷잘 쓰면 약…‘어긋난 인정 욕구’ 우려도

전문가들은 좌표 찍기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어서 양날의 칼이라는 얘기다. 박상병 평론가는 “정치글에 대한 공유나 좌표 찍기는 정치에 대한 구성원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발적 의견 표출이 아닌, 특정 세력의 조직적인 ‘총공’은 ‘정치적 테러’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적잖다. 이언주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4년 전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 시절 ‘문자 테러’에 시달린 적 있다. 당시 이 의원은 “주말 내내 문자 테러에 시달렸다. 한 만 통쯤 받은 것 같은데 이런 문자 테러가 표현의 자유 한계를 넘어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좌표 찍기가 자칫 ‘어긋난 인정 욕구 해소’와 여론 왜곡으로 귀결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좌표 퍼 나르기, 실시간 검색어 띄우기 등의 행위가 널리 퍼지는 데는 동조 심리가 큰 역할을 한다.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면서 얻는 만족감이 큰 것이다. 좋아하는 연예인은 물론, 지지하는 권력자에게 동조하기도 한다. 이런 행위를 통해 부차적인 이익으로 ‘내가 믿는 것이 맞다’는 감각이 생긴다. 타인의 동조를 이끌고 조회 수 등이 늘어나는 것을 확인하면서 불안감이 감소하고 인정 욕구를 채우는 것이다. 무엇보다 좌표 찍기가 더 활성화되면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처럼 확대 해석될 수 있다. 특정 몇몇 의견이 과장되게 표현되는 경우에 유의해야 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의 생각이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박지영 기자 autum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0호 (2021.03.17~2021.03.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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