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동료 죽음 앞에서..해경은 112도, 119도 안불렀다

박장군 2021. 3. 13.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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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해양경찰서 소속 고(故) 서보민 경장. 그는 주위에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다 지난달 25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족 제공


30대 해양경찰관이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사망 현장을 최초로 목격한 동료들이 사건을 112 상황실에 신고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현장에는 고인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는 직속 상관도 있었다.

12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통영해양경찰서 형사계 직원들은 지난달 25일 오전 10시15분쯤 경남 통영시 무전동의 고(故) 서보민 경장 원룸에서 시신을 발견한 뒤 112에 신고하는 대신 경찰인 지인에게 연락했다. 이후 지인이 통영경찰서 형사계에 사건을 알리면서 경찰이 출동했다. 통상적인 변사 사건 신고 경로인 112 상황실을 경유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직원들은 서 경장이 출근하지 않자 오전 8시18분쯤 직접 원룸에 찾아갔고, 열쇠공까지 불러 2시간여 만에 현장에 진입했다.

해경 측은 통영서에서 진행된 경찰조사에서 “112 상황실을 직접 경유하면 (해경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문이 날 수 있어 보안을 유지해야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영해양경찰서 소속 고(故) 서보민(뒷줄 맨 왼쪽) 경장의 생전 모습. 유족 제공


해양경찰청 훈령 '변사사건 처리 규칙'. 밑줄 친 부분인 9조 2항 규정을 준용해보면 당시 해경 대응이 부적절했다는 점이 확인된다. 국가법령정보센터

경남소방본부에 따르면 해경은 112 상황실뿐만 아니라 119에도 동행 요청을 하지 않았다. 변사 발생 시 119 동행 요청이 의무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해양경찰청 훈령인 ‘변사사건 처리 규칙’을 준용해보면 해경 대응이 부적절했다는 게 드러난다. 규칙 9조 2항에는 ‘초동경찰관 및 변사사건 담당자는 변사신고 접수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망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는 소방서 구급대원 등과 합동으로 출동하라’고 명시돼 있다. 사망이 확실하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구급대를 부르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해경은 방문을 열기 위해 30분가량이나 열쇠공을 기다린 것으로 알려졌다. 서 경장의 죽음을 확인한 해경은 그제야 유가족에게 소식을 전했다. 유족이 처음 받은 연락이 실종 대신 사망이었던 것이다. 출근하지 않는 동료의 행방을 가족에게 묻는 절차 를 생략한 채 무작정 집으로 찾아가 열쇠공까지 불러 문을 딴 뒤 시신을 확인하고 나서야 가족에게 연락한 셈이다. 서 경장의 친형은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해경이 당일 오전 11시2분 전화를 걸어와 동생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며 “5분 거리인 119 소방서를 놔두고 30분을 걸려 열쇠공을 부른 행동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해경은 보안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해명했다. 통영해경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지역사회가 좁고, 경찰관이 사망하다 보니 그런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며 “신고가 접수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신고가 어떤 식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정해진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망사건의 사인은 수사권을 가진 관할 경찰이 가장 빠르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확인해야 한다”며 “같은 경찰로서 (해경이)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해도 공식 통로인 112 상황실에 신고한 뒤 수사 경찰이 와서 현장을 확인하도록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인을 통해 신고한 경우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9일 고(故) 서보민 경장 사망사건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글들. 통영해양경찰서 홈페이지 캡처


통영해양경찰서 소속 고(故) 서보민 경장이 생전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 유족 제공


경찰은 이달 말쯤 서 경장 사망을 둘러싼 수사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해경이 112 상황실과 119에 신고하지 않은 경위도 수사 대상이다. 통영경찰서 관계자는 “(해경이) 어떻게 출동하게 됐고, 왜 갔는지가 모두 정황증거가 될 수 있다”며 “당사자 조사를 마쳤고, 해경 CCTV를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서 경장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통영해경 형사계로 자리를 옮긴 지 18일 만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서 경장의 가족과 친구들은 고인이 생전 토로한 증언을 토대로 부서 내 ‘태움’ 문화와 상사의 괴롭힘이 사망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해경 측은 “괴롭힘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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