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비극 피하고 싶었다, 해리가 여왕에게 한 '뼈아픈 복수'
1997년 9월 6일. 12살 난 해리 왕자가 분노한 표정으로 어머니의 관을 따라간다. 36세에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장례식 장면이다.
이 모습은 모든 영국인들에게 일종의 부채감을 남겼다고 한다. 이후 해리 왕자가 왕실의 '악동'으로 숱한 염문설을 뿌리고 대마초 흡연에, 누드파티, 나치 코스튬 등 온갖 소동을 일으켜도 "얼마나 상처가 컸으면"이라며 동정론이 나왔던 이유다.
그런 해리 왕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나이인 36세가 되던 해, 왕실을 떠나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1월 선언했고 4월이 되자 부인 메건 마클과 캐나다로 떠났다. 갑작스런 독립 선언에 할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아버지인 찰스 왕세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7일 미국 CBS에서 방영한 부인 마클과의 폭로성 인터뷰로 말 그대로 왕실에 '폭탄'(Bombshell)'을 떨궜다. 25년 전 다이애나의 BBC 인터뷰에 비견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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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는 왜 그랬을까.
해리 왕자의 정식 이름은 헨리 찰스 알버트 데이비드 윈저(Henry Charles Albert David Windsor). 서섹스 공작이다. 왕실과 절연하면서 전하라는 호칭으로 불리지는 않는다.
그의 왕실에 대한 반감, '이방인' 의식의 근원은 어머니 다이애나다. BBC 인터뷰에서 당시 다이애나는 "나는 왕세자의 외떨어진 아내였다. 나는 골칫덩이였다"며 화려함 속에 감춰진 왕실 생활의 속살을 드러냈다.
그런 환경에서도 다이애나는 두 아들인 윌리엄과 해리에게 넘치는 사랑을 줬다고 한다. 다이애나의 사진 한장은 지금으로 치면 수백만 원을 호가했다. 두 왕자도 피해갈 수 없었다. 다이애나가 동영상을 찍고 있는 파파라치를 직접 찾아가 "애들을 보호해 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은 지금도 다큐멘터리 속에 남아있다.
두 왕자와 함께 디즈니랜드를 방문해 다른 사람들과 섞여 줄을 서고, 놀이기구를 탄 일화도 유명하다. 평범한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했던 왕실 사람들과 달리 다이애나는 두 왕자가 사람들과 어울리도록 교육했다.
해리는 그런 어머니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다이애나에게 교통사고가 나기 직전)파리에서 걸려온 어머니의 전화를 받지 못한 게 평생 한"이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지난 2016년에는 해리 왕자가 디즈니랜드를 방문해 어머니와 탔던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영국 매체들은 해리가 '마음의 평화를 얻는 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019년 부인 마클과 생후 4개월 된 아들 아치와 함께 첫 외국 여행을 떠났을 때도 22년 전 다이애나가 걸었던 흔적을 되밟았다. 1997년 다이애나가 대인지뢰 사용을 반대하며 걸었던 아프리카 앙골라의 지뢰밭 길이다.
해리는 '왕실 이단아'의 비극적 운명이 부인 마클에게서 재연될까 늘 두려워했다고 한다. 계속해서 왕실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고 심지어 아버지 찰스 왕세자는 자신의 전화를 피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형인 윌리엄 왕자도 마찬가지다. 인터뷰에서 그는 "그(윌리엄)를 아주 사랑하지만 우리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했다.
해리가 마클에게 다이애나를 투영한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마클의 결혼 반지도 다이애나의 것을 자신이 다시 디자인해 선물했다. 영국 언론도 마클을 자주 다이애나와 비교했다. 배우 출신으로 이미 '셀럽'인데다 자선활동에 관심이 많고 패션 감각이 특출 나다는 게 공통점이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부인이 영국 언론의 공격, 왕실의 냉대를 받을 때도 해리는 전적인 마클 편이었다. 다이애나는 출산 직후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한 채 왕자를 안고 카메라 앞에 섰지만, 마클은 이를 거부해 비난을 받았다. 해리는 마클을 지지했다.
마클 역시 파파라치와 영국 타블로이드 매체에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될 때 해리는 치를 떨었다. "서서히 죽어가는 어머니를 보는 것 같다"면서다. 가장 많은 파파라치를 몰고 다닌 21세기 첫 '셀럽' 다이애나는 파파라치로부터 도망치다 사망했다.
해리는 마클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자 "어머니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왕실 엑소더스'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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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왕실에 흐르는 '이단의 피'
영국 왕실에서 전통과 관례에 반기를 들고, 금지된 사람에 목숨을 걸었던 건 해리만이 아니다.
가장 앞서 거론되는 인물은 해리의 증조할아버지인 조지 6세의 친형, 에드워드 8세다.
에드워드 8세는 독신 상태로 즉위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왕위를 포기했다. 미국 출신의 이혼한 여성 윌리스 심프슨 부인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다. 왕세자 시절 사교적인 성격과 풍부한 교양으로 '왕관의 무게'를 능히 견딜 만한 인물이라 평가받은 그였다. 사랑을 이룬 대신 왕실의 일원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개인적 소망까지 이루지는 못했다. 평생 왕실 주위를 맴돌았다.
두 번째 인물은 해리의 이모할머니 마거릿 공주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동생인 마거릿 공주도 16세 연상의 이혼한 남성인 피터 타운센드를 사랑했다.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평생 방황하는 모습을 본 엘리자베스 2세는 처음 두 사람의 사랑에 열린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영국 성공회의 반대에 부딪히자 태도를 바꿨다. "영국과 영연방 교회의 수장으로서"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거릿 공주는 이후 사진작가 안토니 암스트롱존스와 결혼하기도 했지만 평생 언니인 여왕의 그늘에 갇혀 방황했다. 마거릿 공주도 에드워드 8세처럼 의미 있는 역할을 맡길 원했다. 하지만 "나눠줄 역할이 없다"는 엘리자베스 2세의 결정에 후반기까지 인생을 무료히 여겼다.
다이애나비 역시 윈저 왕가의 '금지된 사랑'의 희생자였다. 해리의 아버지인 찰스 왕세자는 앞선 사례들을 보며 적합한 결혼 상대를 찾아 귀족 출신의 다이애나와 결혼했다. 하지만 찰스와 연인 카밀라 파커 볼스는 각각 결혼한 상태로 관계를 이어갔다. 다이애나가 이혼 후 BBC와의 인터뷰에서 "(셋이 함께 있으니) 북적거리는 결혼 생활이었다"고 말한 이유다.
아들 해리도 미국 출신의 이혼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해리는 가문에 흐르는 상처의 덕을 봤다. 시대가 바뀐 탓도 있지만 그간 모든 스캔들을 지켜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들의 결혼을 축복했다.
그렇다고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인종 차이라는, 왕실 기준의 '핸디캡'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마클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유색인종인 탓에 왕실 내에서 인종차별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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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는 어떻게 될까
왕실에 결정적 '반기'를 든 해리 왕자의 향후 어떤 행로를 겪게 될까. 앞서의 '이단아'들처럼 왕실의 그늘에 짓눌려 평생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될까.
해리에게는 나름대로 계산기를 두드린 뒤 결행한 흔적이 보인다.
BBC에 따르면 2014년 해리가 서른 살이 되던 해 다이애나가 남긴 신탁기금의 가치는 약 1000만 파운드(약 158억)였다. 인터뷰에서 "왕실에 남은 어머니의 재산을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해리 부부는 왕실 교부금으로부터 독립한다고 밝혔지만 아버지로부터 얻은 재산은 포기하지 않을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지난해 9월에는 동영상 스트리밍업체인 넷플릭스와 수년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은 1억 달러를 웃돌 것이란 게 영국 언론의 관측이다.
처음 거주지로 캐나다를 택한 것도 무작정 반기를 든 건 아니라는 징표다. 캐나다는 엘리자베스2세를 군주로 삼는 동군연합 영연방이다. 이곳의 군주제 지지자들은 해리를 엘리자베스2세 사후의 왕으로 옹립하자는 주장을 10년 전부터 했다. 캐나다 내에서 군주제를 반대하고 공화제를 택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자 이런 여론을 불식시키는 방법으로 당시 왕위 계승 서열 3위였던 해리를 모셔오자고 주장한 것이다.
인터뷰 이후 여론도 해리 부부에게 우호적이다. 인종차별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폭로하면서 미국은 물론 왕실에 우호적이던 영국 언론마저 쪼개진 상태다. CNN은 "인터뷰에서 드러난 사건들은 왕실이 21세기를 사는 대다수 보통사람이 겪는 문제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평했다.
후폭풍이 어떻게 번질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해리로선 할머니 엘리자베스 2세에게 가장 '뼈아픈 복수'를 한 듯하다. 장례에조차 일주일 가까이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어머니를 냉대했던 할머니다. 해리는 그런 할머니가 25살 시절부터 94세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지켜온 '왕실'과 '군주제'를 흔들어 놓았다.
■ ※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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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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