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 전 '도레미'는 지금과 다르다" 주관 뚜렷한 음반 나왔다
옛 음 높이에 맞춰 느슨한 조율
"현의 역사는 팽팽함의 역사"
‘우리가 지금 듣는 음은 예전의 그 음이 아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6)가 신선한 시도를 담은 음반을 냈다. 양인모는 9일 자신의 두 번째 앨범 ‘현(絃)의 유전학’(도이치 그라모폰)을 발매하면서 기자 간담회를 열어 “이번 음반은 현의 역사를 찾아본 결과”라고 소개했다.
수록된 음악은 총 11곡. 800년 전인 12세기의 작곡가 힐데가르트 폰 빙엔에서 시작해 올해 탄생 100주년이 된 피아졸라까지 800여년에 걸친 음악을 망라했다. 독특한 것은 양인모가 음악을 재연한 방식이다. 그는 바이올린의 네 줄 중 두 줄에 양의 창자로 된 옛날 방식의 줄로 바꿔 옛 소리를 구현했다. 19~20세기의 음악을 연주할 땐 현재와 같은 금속 현으로 바꿔 걸었다.
현재의 바이올린은 철로 된 네 줄을 쓴다. 하지만 양인모는 18세기 이전의 음악을 연주할 때는 그 당시 바이올린의 방식을 따라 거트 현(양의 창자를 이용한 줄)을 선택했다. 대신 거트 현을 현대화해 절반만큼 금속을 입힌 반(半) 거트 현으로 두 줄만 바꿨다. 음높이도 조절했다. 지금 우리가 듣는 ‘도레미파솔라시도’는 18세기 이후 연주 방식이 현대화되며 높아진 음계다. 양인모가 음반에서 연주한 아르칸젤로 코렐리(1653~1713) 시대의 ‘도’음은 지금 듣기엔 '도'보다 세 건반 아래의 ‘라’에 가까울 정도로 낮다. 양인모는 폰 빙엔, 니콜라 마티에스 주니어(1670~1737), 코렐리의 세 곡을 연주하면서 바이올린의 현을 느슨하게 조절해 전체 음계의 음정을 낮췄다. 지금 우리가 듣는 음계의 ‘라’음이 주파수 440~443Hz(헤르츠)이고, 양인모의 조율은 같은 음의 주파수가 336Hz, 415Hz까지 낮아졌다. 이렇게 하면 피아노 건반에서 최대 세 건반 아래까지 음이 낮게 들린다.
이처럼 ‘상대적인’ 음높이 해석에 대해 양인모는 “현의 역사가 텐션(팽팽함)의 역사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현이라는 물질이 궁금해져 역사를 찾아봤는데, 양의 창자로 만들어졌던 느슨하던 시기의 배음과 주파수에서 시작해 팽팽한 시기로 바뀌었고, 그 변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라벨이 1924년 작곡한 치간느를 연주할 땐 음높이를 444~445Hz로 높게 조율해 이전 시대의 느슨함과 대비되는 팽팽함을 강조했다.
양인모는 2015년 3월 이탈리아 제노아에서 열린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5년마다 열리지만 10년 동안 우승자를 내지 않았던 이 대회의 최연소 우승이었다. 어렵고 화려한 기교를 특징으로 했던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의 명성에 걸맞게 양인모의 첫 음반은 파가니니였다. 어렵기로 유명한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곡 전곡을 2018년 데뷔 음반으로 녹음하고 연주했다. 양인모는 “파가니니 이후 나만의 방향성을 찾고 싶었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다가 내 손에 나 있는 철사 자국을 보고 현이라는 물질이 궁금해졌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생긴 왼쪽 손가락들의 철사 자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번 음반에는 소프라노 임선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기타리스트 박종호, 하프시코드 연주자 크레멘스 플릭, 바로크 시대의 첼로를 연주하는 레아 라헬 바더 등이 함께 연주하며 양인모의 현에 대한 탐구를 함께 했다. 13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앨범 수록곡 중 파가니니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1번, 피아졸라 ‘탱고의 역사’, R.슈트라우스 바이올린 소나타 등을 들려준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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