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바디' 시장 급성장..중세시대 '사치의 실내화(室內化)' 닮았다

2021. 3. 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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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재택근무와 원격수업,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며 여느 때보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자의 반 타의 반, 집에서 시간을 주로 보내는 ‘홈보디(Homebody·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가 급증함에 따라 집 안에서 다양한 경제 활동이 이뤄지는 ‘홈코노미’ 시대가 시작됐다고도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도입이 가속화된 재택근무는 생산성과 효율성 차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기본 업무 형태로 정착할 가능성이 크다.

온라인 판매, 배달음식 시장은 기존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던 이들이 대거 진입하며 성장 속도가 더욱 가팔라졌다. 최근 실시된 조사에서 시니어 소비자 30%가 지난해 처음 온라인 구매와 음식 주문을 시도해봤다고 답했다. 미국 온라인 식품 유통업체 인스타카트(Instacart)는 시니어 신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회원 가입, 주문 방식을 쉽게 알려주는 동영상을 제작해 성과를 거뒀다. 집 안 꾸미기에 관한 관심이 커지자 2020년 가구 소매 판매액은 전년 대비 10% 이상 성장했다. 홈보디 증가는 건강과 일과 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는 사회적 흐름과 결합해 홈피트니스 시장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여러 분야에 걸쳐 집이 소비의 중심이 된 것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변화 속도가 빨라졌지만, 지난 20여년간 한국 소비 시장 초점은 의식주로 이동하는 흐름을 이어왔다. 그런데 그 과정은 수백 년에 걸쳐 진행된 서구 시장의 변천사와도 맥을 같이한다. 2000년대 초 한국에서는 신부유층을 중심으로 명품 붐이 형성됐다. 당시 잘나가는 엘리트 직장인 패션은 아르마니 정장과 에르메스 넥타이, 페라가모 구두와 까르띠에 시계로 완성됐고, 수입차 판매가 급증했다. 잘 만들어진 짝퉁이 히트 상품으로 선정되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마치 중세시대 신흥 자본가들이 선조나 선망하는 가문의 문장(紋章)을 본떠 옷과 마차를 장식한 것과 유사하다. 음식 소비도 양에서 질로 바뀌었다. 2000년대 중반 웰빙 바람이 불면서 유기농 식재료, 와인 등 건강에 좋고 독특한 음식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다. 새로운 음식과 맛집 정보는 SNS와 블로그를 통해 순식간에 퍼졌다. 이후 한국 소비자의 관심은 집, 공간으로 확장돼, 가구부터 침구, 식기류까지 자신의 취향에 맞춰 집 안을 장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자주(JAJU), 무인양품 등 국내외 업체가 가구&생활용품 시장에 진출했고, 이케아는 오픈 35일 만에 방문객 100만명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다양한 향신료와 풍미를 즐기는 미식 문화가 형성된 후 고급화의 영역이 집 안으로 확장돼 양탄자와 가구, 도자기, 은그릇 소비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는 집 밖에서 누리던 사치가 개인 공간으로 이동한 현상을 ‘사치의 실내화(室內化)’로 설명했다. 몸치장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다채로운 미식을 즐기다 개성이 묻어나는 공간에서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자 하는 소비 심리의 진화는 시대와 국가를 넘어 적용된다. 과거에서 발견된 원리는 미래를 예견하는 밑거름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지금은,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계획하는 통찰력을 발휘할 때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9호 (2021.03.10~2021.03.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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