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의 엔드게임] 류현진이 한화를 바꿨나? 그렇다면 토론토는?

김식 2021. 3. 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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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류현진이 13일 대전 롯데 전 5회초 대량실점 위기를 1실점으로 틀어막고 포수 정범모와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2013.05.13.

류현진(34·토론토)이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었던 2006~2012년 KBO리그는 '포수의 시대'였다. 포수의 공 배합과 투수 리드가 어느때보다 조명받았던 시대였다. 박경완 같은 특급 포수의 영향력이 늘 화제였다. 그의 스승 조범현 전 감독, 그리고 조 전 감독의 스승 김성근 전 감독 등은 포수 시각으로 야구를 분석했다.

투수와 타자가 승부의 주역이라면 포수는 연출자다. '포수는 투수의 능력을 끌어내 타자와 상대하는 승부사'라고 여기는 이들이 꽤 많았다. "좋은 포수 없이는 절대 우승할 수 없다"라던가 "특급 포수는 팀 전력의 절반"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당시 한화는 리그 최약체 팀이었다. 포수 전력도 가장 약했다. 수도권 팀의 타자 A가 "한화 투수는 1구부터 5구까지 무슨 공을 어디에 던질지 다 안다"고 했다는 말이 전설처럼 떠돌았다. 그만큼 한화 포수는 뻔한 공 배합을 했고, 이게 완전히 간파됐기 때문에 한화 투수가 난타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믿거나 말거나였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A의 말이 거짓이거나 과장됐다는 걸 알 수 있다. 류현진이 등판한 날, 상대 타자는 한화를 쉽게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포수가 약하고, 수비가 엉망이어도 류현진이 등판하는 날의 한화는 분명 강한 팀이었다.

당시 류현진은 포수를 탓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포수가 요구하는 대로 던졌다. 실투는 내 잘못"이라고 말했다. 류현진이 던지면 한화는 포수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바깥쪽 낮은 코스를 정확하게 찌르는 강속구, 눈 앞에서 뚝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타자들은 거의 치지 못했다. 20대 초·중반의 류현진은 포수를 바꿨고, 팀도 바꿨다.

메이저리그(MLB) 진출 9년째를 맞이한 류현진을 향한 찬사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눈여겨 볼 만한 건 '포수 시점'에서 나오고 있는 평가다.

류현진(오른쪽)이 6일 캠프 시범경기 등판을 앞두고 포수 대니 잰슨과 함께 더그아웃으로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류현진은 6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더니든 TD볼파크에서 열린 볼티모어와의 시범경기에 등판했다. 그는 타자와의 싸움에 신경 쓰지 않았다. 최고 시속 144㎞의 포심 패스트볼을 비롯해 컷 패스트볼, 체인지업, 커브 등을 점검했다. 2이닝 1피안타(1피홈런) 1볼넷 2탈삼진 1실점의 평범한 성적. 그러나 그의 피칭을 본 이들의 소감은 비범했다.

MLB 공식 홈페이지는 류현진의 공을 받은 토론토 포수 대니 잰슨(26)의 인터뷰를 전했다. 잰슨은 "투수들은 스프링캠프에서 투구 폼을 점검하고, 릴리스 포인트를 찾는다. 류현진은 첫 시범경기에서 똑같은 릴리스 포인트에서 반복해서 공을 던진다"며 "그는 비행의 장인(master at his craft)이다. 늘 같은 곳에 착륙(릴리스)한다. 그걸 반복한다. 그게 류현진이 하는 일(Ryu doing Ryu things)”이라고 말했다.

이는 류현진 투구의 일관성을 잘 설명한 표현이다. 똑같은 자세와 속도로 여러 구종의 공을 일정한 포인트에서 던질 수 있다면, 투수의 승률은 매우 높아진다. 게다가 포수가 원하는 코스로 정확하게 공을 꽂아 넣는다면 타자는 속수무책이다. 이런 투수는 포수의 강한 무기가 된다. 그러면 승부에서 이길 수 있다. 포수도 이 과정을 통해 공부하고, 자신감을 얻는다.

토론토 소식을 다루는 제이스저널에 '젊은 포수들에게 류현진이 꼭 필요하다'는 제목의 기사가 지난달 말 실렸다. 이 매체는 '토론토는 운 좋게 최고의 투수 중 하나를 갖고 있다. (류현진은) 토론토의 보물 창고(포수 유망주들)에서 최고의 보물을 찾을 수 있다'고 썼다.

잰슨은 지난달 24일 MLB 네트워크 라디오에 출연해 "불펜에서 류현진의 공을 받으면 안락의자에 앉는 것처럼 편안하다. 그는 포수를 이끌 수 있는 투수"라며 "류현진은 매우 영리하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자신의 계획을 포수에게 잘 전달한다. 서로 신뢰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그와의 관계를 발전시켰다. 류현진은 많은 구종을 가진 투수여서 그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현진. Toronto Blue Jays 페이스북

잰슨의 인터뷰를 전한 제이스저널은 '잰슨은 최고의 포수가 될 기회를 얻고 있다. 류현진은 잰슨에게 어떻게 준비하고, 대결하는지를 가르쳐준다'며 '에이스가 멘토 역할을 하는 건 (대형 선수 영입의) 또 다른 이점이다. 토론토는 다행스럽게도 그런 선수를 하나 갖고 있다'고 썼다.

2019년 12월 토론토는 류현진과 4년 총액 8000만 달러(900억원)에 계약했다. 당시 토론토는 류현진을 단지 '1선발'이 아닌 젊은 투수들의 멘토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게 성공한다면 토론토가 2~3년 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거라 기대했다.

지난해 MLB는 코로나19로 인해 단축시즌(팀당 162경기→60경기)을 치렀다.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류현진은 5승2패 평균자책점 2.69로 호투, 토론토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을 이끌었다. 예상보다 빨리 가을 야구를 경험했지만, 토론토의 목표가 달성된 건 아니다. 진짜 승부는 2021시즌 벌어진다. 지난 1년 동안 류현진을 보며 투수들이 배우고, 포수들이 깨우쳤다. 그리고 이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과거 '류현진이 등판한 한화'는 분명 달랐다. 그러나 그가 한화를 바꿨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지난해 '류현진이 등판한 토론토'는 매우 강했다. 이제 그는 토론토를 바꿀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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