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서울의 셀럽, '깍두기'를 아십니까
[이준희 기자]
깍두기는 물론 음식이다. 하지만 깍두기라는 말은 먹는 것 외에 사람을 가리킬 때에도 이따금 쓰인다. 아이들이 편 갈라 노는데 양쪽 머릿수를 정확히 맞출 수 없는 경우, 추가로 허용되는 멤버가 깍두기다. 이른바 '주먹'이나 '어깨', 또는 단역 배우를 달리 이르는 속어 가운데 하나도 깍두기다. 그리고, 80여 년 전 서울에는 시민과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깍두기라 불린 남자도 있었다.
1937년 여름에 발표된 '재즈송' <명물 남녀> 가사에는 그 실존 인물 깍두기가 이렇게 등장한다. '이 몸은 서울 명물 깍두기/ 모던보이 대표하는 장난꾼/ 새빨간 넥타이 날 좀 보세요/ 서울서 나 모르면 실수지'. 모르면 실수라고까지 묘사된 깍두기는 실제 1935년부터 신문과 잡지에 자주 등장한 당대 서울의 명물이었다.
▲ 깍두기가 등장하는 대중가요 <명물 남녀> 가사지 |
ⓒ 이준희 |
▲ 1935년 일간지에 실린 고흥택의 사진 |
ⓒ 조선중앙일보 |
배우나 가수 같은 직업 연예인은 아니었고, 사실 뚜렷한 경제 활동을 하지도 않는 깍두기였지만 그는 어느덧 서울 시민이라면 정말 모를 수가 없는, 요즘 말로 '셀럽'이 되어 있었다. 때문에 앞서 본 바와 같이 대중가요 가사에도 등장을 했고, 심지어 연극이나 영화 쪽에서도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잡지 기사 주인공으로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 영화사에서 깍두기 소재 영화를 기획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조선중앙일보> 1935년 11월 2일자). 기획은 아마 불발에 그쳤던 것으로 보이나, 실제 고흥택에게 제안이 갔던 것은 사실이었다.
또, 깍두기의 인기가 절정이었던 무렵 새로 개관한 동양극장에서는 극단 신무대가 <깍두기>라는 단막 희극을 상연하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실제 깍두기가 깜짝 출연을 했다. 연기자가 아니다 보니 대사도 없이 그냥 무대를 한 번 휘돌다 나갈 뿐이었지만, 길거리에서나 보던 깍두기를 극장 무대에서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되기에는 충분했다(동아일보 1935년 12월 3일자).
▲ 깍두기 고흥택이 실제 출연했던 연극 광고 |
ⓒ 매일신보 |
작가 홍성유가 김두한을 소재로 쓴 1980년대 인기 연재소설 <인생극장>에도 깍두기가 등장하기는 한다. 경성 부민관 개관 기념으로 열린 일본 테너 후지와라 요시에 독창회에서 깍두기가 일부러 공연에 훼방을 놓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이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작가가 만들어 낸 허구일 뿐이다. 고흥택이 1940년대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등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있지만, 깍두기의 인기는 길게 잡아도 '관(심)불오년'이었다. 일견 단순하게 넘어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사실 가차 없고 잔인하기까지 한 대중의 호기심. 그 속에서 한때 각광을 받았던 깍두기는, '명물'로서 삶에 과연 얼마나 만족했던 것일까? 그 어느 때보다도 대중의 관심 받기를 원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요즘, 깍두기가 후세에 남긴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일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육지로 끌려가 총 맞아 죽은 완도 사람들
- 김영춘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확정.. "반드시 승리"
- 내장사 대웅전 방화범은 예비 승려... 불교계 망연자실
- 6개월째 수입 0원...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여행'
- '치미'를 찾아가는 미스터리한 부여 여행, 이 코스 추천
- 독립운동가와 친일파가 나란히... 참 불편한 현장
- "네가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 시동 거는 '트래블버블'... 올해 해외여행 갈 수 있을까
- 미얀마 매체, '군경이 총격에 숨진 19세 소녀 시신 도굴' 보도
- '대선 도전' 박용진 "용기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