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한 배틀그라운드] 박정희 지켜본 첫 한미연합 훈련..'악마'라 불린 美공수 떴다
공수부대 21시간 뒤 한국 도착
비핵화 회담 따라 연습 바뀌어
미군 공수부대가 경기도 여주 남한강 일대 하늘을 덮었다. 한국에서 1만 3800㎞ 떨어진 미국 본토를 출발한 미 육군의 제82 공수사단 제504 낙하산 연대 병력 2500여명이 31시간 만에 도착했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시실리ㆍ노르망디ㆍ라인란트에 투입됐던 최정예 공수부대다. 용맹성 때문에 ‘통바지(공수복)를 입은 악마(Devils in the Baggy Pants)’라 불린다.
1969년 3월 17일 처음 열린 대규모 한ㆍ미 연합 연습(연습)이다. 15일 동안 이뤄진 ‘포커스 레티나(Focus Retina)’ 연습에 병력 7500여명ㆍ차량 2700여대ㆍ장비 2900여톤·수송기 27대 등을 공수하는데 186만 달러가 투입했다. 한국군 공수특전단 600여명도 이날 처음 공개됐다.
당시 미 공군의 최신예 수송기도 한반도에 처음 등장했다. 최초의 제트엔진 전략 수송기 C-141 ‘스타리프터’는 공수부대 병력 127명을 나를 수 있었다. 스타리프터는 처음부터 냉전 시기 장거리 전략 공수를 목적으로 개발돼 1965년 말부터 베트남 전쟁에 투입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 찰스 H 본스틸 대장이 여주 벌판 연습 현장을 방문해 공수 작전을 지켜봤다. 언제라도 한국에 증원 병력을 신속하게 보내겠다는 미국의 안전 보장 공약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2년 뒤 1971년 3월 3일부터 3일 간 이뤄진 연습은 ‘프리덤 볼트(Freedom Vault)’로 명칭을 바꿨다. 한국명은 ‘자유의 도약’으로 이 또한 태평양을 빠르게 건너 한국으로 오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상징했다.
총 병력 3000여명이 참가해 이전 연습보다 다소 적은 규모로 진행됐다. 하지만 한ㆍ미 공군 F-4DㆍF-5AㆍF-86 전폭기를 동원해 화력을 키웠다.
이때도 82공수사단 504연대 병력 700여명이 스타리프터 13대에 나눠타고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랙을 출발했다. 미 서부 알래스카ㆍ일본 오키나와에 들러 급유를 받으며 날아온 비행거리는 1만 3679㎞에 이른다.
이들은 이전보다 빠른 21시간 만에 한국에 도착했다. 당시 이를 지켜본 기자는 “인간 ‘미사일’을 쏟는 ‘마하’ 작전”이라고 표현했다.〈중앙일보 1971년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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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침공 다음날 미 본토 병력 한국 도착
훈련에서 미군 병사는 시차와 현지 기후 적응도 이겨내야 했다. 3월 초 영하로 떨어진 추위와 싸우면서도 적에게 발각되는 걸 피하려고 모닥불도 피우지 못했다. 하지만 1969년 연습에 참여한 뒤 2년 만에 다시 한국에 오면서 익숙해지기도 했다.
대규모 연습을 시작하던 당시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다. 1968년 1월 김신조를 포함한 ‘124부대’가 청와대를 기습하기도 했다. 북한이 한국 대통령을 암살한 뒤 기습에 나설 수 있다는 위협이 커졌다.
또한, 지금과 달리 한국의 국력과 군사력은 북한을 단독으로 막아내기 버겁던 시기였다. 주한미군은 한국전쟁 중 최대 32만 5000명까지 늘어난 뒤 1953년 휴전 협정 체결 이후 감축 돼 1960년대 6만명 수준으로 줄었다.
1969년 미국의 대외 군사 개입을 자제한다는 ‘닉슨 독트린’도 나오면서 1971년 미 육군의 제7 보병사단이 한국에서 철수했다. 주한미군 병력은 4만 3000명까지 떨어졌다. 북한이 미국의 한국 방어 의지가 줄었다고 오판할 여지가 생기면서 연습이 필요했다.
1975년 4월 북베트남이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했고, 그해 8월 헬싱키 선언으로 유럽에서의 전쟁 위협은 크게 줄었다. 이 때문에 공산권의 대규모 공세가 정치ㆍ군사적 긴장이 여전한 한반도에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연습은 1976년 6월 ‘팀 스피릿(Team Spirit)’으로 바뀌어 1993년까지 연례적으로 실시됐다. 북한군 침공을 신속하게 방어하고 대규모 증원 병력으로 북한군을 격퇴하는 능력을 키웠다. 유엔군사령부가 주관하던 연습은 1978년 한ㆍ미연합군사령부를 창설한 이후 연합사로 넘어왔다.
연습에서 연합상륙작전, 공수낙하훈련 등 미군의 병력 증원 훈련과 한ㆍ미 연합군의 기동훈련, 해상작전으로 군사력을 실전적으로 점검했다. 연습은 북한군 침공에 대응해 단순 방어를 한다는 기존 전략을 바꿔 북한지역으로 전선을 확대하는 계획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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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감축, 베트남전 패배…한국 침공 오판 우려
훈련 기간 중 북한은 사실상 전시 체제로 전환하고 군단급 기동훈련 등 맞대응 성격의 훈련을 했다.
첫해 4만 6000여명이 참가했던 연습은 점차 늘어 1984년에는 20만 7000여명을 투입한 서방 진영 최대 규모 군사 기동훈련으로 발전했다. 북한의 피로도는 꽤 높아졌다.
북한 김일성 주석은 1984년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에게 “(한ㆍ미가) 팀 스피릿 훈련을 벌일 때마다 우리는 매번 노동자들을 군대로 소집해 대응해야 하며 이 때문에 1년에 한 달 반 정도 노동력에 차질이 생긴다”고 말했다.
1993년 김일성 주석을 만났던 개리 아커맨 미 하원 의원은 “(김일성은) 팀 스피릿을 거론할 때,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고 말했다. 그해 미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했던 제임스 클래퍼 국방정보국(DIA) 국장은 “북한은 팀 스피릿 연습에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라고 했다.
북한은 1990년대 초 시작한 비핵화 협상장에서 연습 중단을 거래 조건으로 제시했다. 1994년 3월 한ㆍ미는 연습을 중단했다. 그해 10월 제네바 합의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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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제네바 비핵화 회담 계기 연습 중단
한ㆍ미는 비핵화 협상 진전이 이뤄지던 1997년까지 대규모 기동훈련은 중단하고 증원 연습만 별도로 실시했다. 새로 도입한 한ㆍ미 연합 전시증원연습(RSOI)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훈련을 중심으로 증원군과 군수물자 파병 절차를 숙달하는 목적이었다. 미 본토에서 일부 병력이 한국에 도착해 실전적 점검도 했다.
RSOI 연습은 2008년 ‘키 리졸브(Key Resolve)’ 연습으로 변경했다. ‘중요한 결의’라는 뜻으로 매년 2ㆍ3월 2주간 전쟁에 대비한 지휘소 연습(CPX)으로 컴퓨터 워 게임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어 4월에는 야외 실기동 훈련(FTX)인 독수리 연습을 한 달 정도 했다. 후방지역 연대ㆍ대대급 야외 기동훈련인 ‘독수리(Foal Eagle)’ 연습은 1961년부터 매년 가을 연례적으로 실시하다가 2002년부터 RSOI 연습에 통합됐다.
연습 내용은 매년 여건에 따라 달라졌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북한의 침공을 막아내고, 미 본토와 한반도 이외 지역에서 증원군을 보강하고, 북한군을 격멸하는 순서로 이뤄진 방어적 성격 연습이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은 1954년부터 유엔사 주관으로 시행하던 포커스 렌즈 군사연습을 1968년 청와대 기습사건을 계기로 시작한 정부 차원의 훈련인 을지연습과 통합해 시행했다.
8월 말께 10여일간 진행하며 1부는 정부ㆍ군사 연습, 2부는 군사 연습이다. 전쟁 시 동원령 선포 등 국가 차원의 포괄적인 전쟁 수행 역량을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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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도발적’ 연습 중단 약속
2018년 1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처럼 연례적으로 실시하던 연습을 연기했다. 사실상 그해 연습은 취소됐다.
그해 6월에 열린 1차 북ㆍ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도발적인 전쟁게임(war game)”이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중단을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6월 판문점 회동에서도 연합훈련 중단을 거듭 확인했다.
국방부는 ‘2020년 국방백서’에서 “독수리 훈련은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한 군사적 뒷받침의 하나로 한미 국방부 협의로 종료했다”고 밝혔다. 연합 FTX는 소규모(대대급 이하)로 나눠 진행한다.
2019년 3월 키 리졸브는 동맹 연습(Alliance)으로 불리다가 지난해 후반기부터는 연합지휘소훈련(CCPT)으로 명칭을 바꿨다. 한ㆍ미 양국은 키 리졸브 연습과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을 대체하는 CCPT를 전ㆍ후반기 각 1회씩 시행한다.
CCPT는 연합방위체제의 지휘 및 전쟁 수행절차를 숙달하는 데 목적을 둔다. 또한 전작권 전환에 대비한 미래연합군사령부의 운용능력 검증평가도 병행한다.
2019년부터 하반기에 전구급 지휘소연습 및 전시 전환 절차를 숙달하는 ‘을지태극연습’을 실시한다. 2018년 7월 UFG 연습을 중단한 뒤 정부(을지)연습과 한국군 단독연습인 태극연습을 연계한 연습이다.
팀 스피릿 훈련을 중단했던 1990년대 중반 이후 대규모 기동 훈련은 이미 크게 줄었다. 그나마 이뤄지던 연합 실기동 훈련도 2018년 대화 분위기 영향으로 중단됐다.
군 관계자는 “규모가 줄어든 연습으로 전략적인 수준까지 살펴보는 게 예전만 못하다”며 “연습을 계기로 한국에 오던 미군 고위 장교도 줄어 인적 교류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지상군은 1만 9000명 수준으로 적은 수준이다. 증원 전력의 중심도 해ㆍ공군으로 옮겨 간 지 오래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신뢰에 기초한 정보 교환과 의사 결정 및 지휘 체계를 강화하는 연습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한ㆍ미는 변화하는 조건에서도 북한의 잘못된 판단을 막아낼 억지력을 키워야만 한다.
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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