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사 대웅전 방화범은 예비 승려.. 불교계 망연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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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시 내장사 대웅전에 불이 난 것은 5일 오후 6시 40분경.
내장사는 정유재란 때 전소된 것을 1639년 부용대사가 중수하고 1779년 영운대사가 대웅전을 중수하며 요사채를 개축했다.
이번 내장사 대웅전 방화는 불교계에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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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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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8시 20분 내장사 대웅전 화재 현장. 화마에 대웅전이 기둥만 남기고 타고 있다. |
ⓒ 신용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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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장사 대웅전 화재 현장은 안전을 위해 취재진 출입도 막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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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 종무소에서 만난 내장사 대중도 충격에 휩싸였다. 한 스님은 "늦깎이로 출가한 그가 얼마 전 승가대학 졸업을 앞두고 절에서 기도하며 지내고 싶다고 의사를 밝혀와 내장사도 이를 받아들였다"며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게 절집 풍습인데 이런 일을 저지를 줄 어찌 알았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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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9시 20분경 전소된 대웅전의 잔불 정리는 12시가 넘어서도 계속 진행됐다. |
ⓒ 신용훈 |
이번 방화로 내장사 대웅전도 다시 비운을 맞게 됐다. '호남의 금강'이라는 내장산의 랜드마크 내장사는 636년 백제 무왕 때 창건돼 임진왜란 당시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이 이곳에 모셔져 스님들이 밤낮으로 이를 지켜낸 호국사찰이다.
내장사는 정유재란 때 전소된 것을 1639년 부용대사가 중수하고 1779년 영운대사가 대웅전을 중수하며 요사채를 개축했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소실됐고 1958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돼 전라북도 기념물 63호로 지정됐으나 2012년 10월 12일 오전 2시 10분경 전기 문제로 화재가 발생해 전소했다. 이에 내장사 대중을 중심으로 2014년 6월 본격적인 복원불사에 들어가 2015년 7월 말 제 모습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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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9시 30분경 대웅전이 전소되어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 소방대원들이 잔불을 확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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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장사 대웅전 방화는 불교계에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출가 과정에서의 엄격한 다면적 인성 검사는 물론 스님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상담프로그램 운영도 적극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찰 주요 전각의 방재시스템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도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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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9시 30분경 대웅전이 전소되었으나 중장비 삽질에 숨어있던 잔불이 계속 일어나 12시 넘어서까지 잔불 정리 작업이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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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웅전 방화범이 스님으로 밝혀지자 조계종 총무원은 이날 밤 입장문을 통해 "종단 소속 승려가 고의로 불을 지른 행위는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출가수행자로서 최소한의 도의마저 저버린 행위"라고 지적하고 "방화를 한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종단 내부 규율인 종헌 종법에서 정한 최고수위의 징계가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교구본사인 선운사도 6일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에 대해 교구를 관장하고 있는 선운사는 국민과 사부대중 여러분께 비통한 마음으로 참회를 드린다. 출가수행자로서 탐진치 삼독의 번뇌를 끊지 못하여 고의로 방화를 한 행위는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이다"며 "종단과 긴밀히 협조해 이번 방화사건이 발생되게 된 구체적인 원인에 대해 철저히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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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법보신문 인터넷 판에도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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