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소리 들을래, 태아 맥박 들을래..'사운드 아트' 떴다

손영옥 2021. 3.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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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아트'를 표방한 전시가 미술관에 들어왔다.

설치작품이나 영상 등에서 부수적인 요소로 취급받던 소리가 주인공이 된 전시가 두 군데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너무 낯설어 괴성처럼 들리는 전시장의 고래 소리는 미국 몬테레이 베이해양연구소에서 어렵게 채집한 것이다.

'그 여자의 방'(1996), '폐경의례'(2012) 등의 전시 제목에서 보듯 페미니즘 목소리를 내왔던 작가는 수년 전부터 동물권에도 관심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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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현숙, <사자자세>,2017,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4분 11초. 아르코미술관 제공

#1. 어둠이 가득한 공간에 소리가 휘몰아친다. 까아악, 우우, 으음. 무슨 소리일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괴성에 끌려 정체를 찾아 어둠 속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저만치에는 조명을 받은 평상이 놓여 있어 아예 거기 앉아 소리의 세계에 빠져든다.

고래 8종의 소리를 들려주는 사운드 아트 . 홍이현숙 작 <여덟 마리 등대>, 2020, 스피커 8대(사운드 13분 1초), 가변크기. 아르코미술관 제공

#2. 극장 같은 스크린과 좌석 10여 개. 스크린에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소리와 함께 흐르지만, 때론 어떤 영상도 없이 깜깜한 화면에서 소리만 나온다. 그런데도 빨려들 듯 소리 예술에 매료돼 계속 듣게 된다.

대안공간 루프가 코로나 시대에 맞춰 제안한 사운드 아트 전시 '레퓨지아' 전시 전경.

‘사운드 아트’를 표방한 전시가 미술관에 들어왔다. 설치작품이나 영상 등에서 부수적인 요소로 취급받던 소리가 주인공이 된 전시가 두 군데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듣는 예술’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듯한 두 전시는 모두 페미니즘 코드로 읽히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예술이 갈 바를 묻는 실험성이 돋보인다.

먼저 서울 종로구 동숭동 길 아르코미술관이 중견 작가를 지원하며 여는 ‘홍이현숙 개인전: 휭, 추-푸’. 페미니즘 작가로 분류돼온 홍이현숙(61) 작가의 회고전으로 1·2층에 걸쳐 30여점의 설치 작품과 영상·사진을 내놓았다. 핵심은 1층 전시장에서 메아리치는 소리다. 고래 소리다. ‘휭’은 고래가 위로 솟구치는 모습을 작가한 묘사한 것이고, ‘추-푸’는 남아메리카 토착민인 케추아족의 언어로 짐승이 물위에 부딪히는 모습을 표현한 의태어다.

고래는 봤지만 고래 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너무 낯설어 괴성처럼 들리는 전시장의 고래 소리는 미국 몬테레이 베이해양연구소에서 어렵게 채집한 것이다. 어떤 건 그르릉 엔진 소리, 어떤 건 이빨 가는 소리 같다. 작가는 밍크고래, 향유고래, 범고래, 혹등고래 등 8종의 서로 다른 소리를 어떤 가공도 없이 8채널에 담아 그대로 내보낸다. 전시장의 평상은 고정되지 않아 중심이 맞지 않으면 기울기도 한다. 파도에 기우뚱거리는 선실에 앉아 고래들의 대화를 듣는 기분을 준다.

이번 개인전을 관통하는 소재는 동물의 소리다. 요가를 배우는 작가는 자신이 요가 자세를 취해 사자 소리를 내거나 고래 소리를 내는 영상도 선보였다. 중년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남대문 표 싸구려 꽃무늬옷을 입고 나오는 작가가 네발 자세로 엎드린 채 ‘헥-헥-헥’ 기이한 발성을 하거나 길고양이와 친해지려 엉금엉금 걷는 모습을 보노라면 뭉클한 감동이 일어난다.

‘그 여자의 방’(1996), ‘폐경의례’(2012) 등의 전시 제목에서 보듯 페미니즘 목소리를 내왔던 작가는 수년 전부터 동물권에도 관심을 가져왔다. 작가는 “내게 작업은 수련이다. 제가 바뀌어 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라며 “나이를 드니 비인간으로 관심이 확장하고 있다. 이제 페미니즘이 아니라 애니미즘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3월 28일까지.

또 다른 전시는 마포구 와우산로 대안공간 루프에서 하는 ‘레퓨지아: 11인 여성 아티스트의 사운드 프로젝트’. 제목부터 사운드 아트를 내건 전시다. 연령대가 다양한 국내외 11명 작가가 참여했다. 지하 메인 전시장을 영화관처럼 꾸몄는데, 스크린에 앉아 듣는다. 물론 영상이 나와 보며 듣는 작품도 있지만 어떤 것은 흑막처럼 검은 스크린을 보며 그야말로 듣기만 한다. 프랑스의 전자음악 작곡가로 통하는 89세의 엘리안느 라디그는 첫아이와 손주의 태아적 초음파로 작곡한 심장소리를 들려준다. 조은지(48) 작가는 필리핀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며 문어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자신의 퍼포먼스 영상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가부장제를 넘어 생태주의 메시지를 던지며 인류와 비인류의 공생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한다.

비대면이 일상화된 코로나 시대에 할 수 있는 전시로 사운드 아트를 택했다는 점에서도 평가할 만하다. 시각 예술은 직접 보지 않으면 촉각과 후각의 감동이 훼손되지만 청각 예술은 그런 제약이 덜하다. 그래서 굳이 전시장을 찾지 않더라도 라디오와 TV등 전파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도록 전시공간을 확장했다. 이번 전시는 TBS교통방송 라디오 뿐 아니라 지하철TV에서도 서울 역사 160곳에서 선보이고 있다. 14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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