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술집서 펼쳐진 풍경.. 한 교사의 용기가 가져온 기적 [림수진의 안에서 보는 멕시코]

림수진 2021. 3. 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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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수진의 안에서 보는 멕시코] 코로나로 무너진 교육, 학생들 위해 온 국민이 나서다

[림수진 기자]

 나이 플로레스 선생님이 트럭 짐칸에 만든 교실에서 학생과 수업을 하고 있다. 서로 마스크를 썼고 또한 테이블 위에 소독액이 보인다.
ⓒ 멕시코 SNS 캡처
 
지난해 6월 SNS 상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사진 속에는 선생님 한 분과 학생 한 명이 있을 뿐이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비정상에 지쳐 있던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이 전해졌다. 이미 그보다 석 달 전 멕시코의 모든 교육기관은 무기한 폐쇄되었고, 두서너 달만 참으면 곧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그 실체가 점점 흐려지던 시점이었다.

3월 중 갑작스레 중단된 수업은 4월과 5월을 아무런 활동 없이 흘려보내고 6월 1일 시작된 뉴노멀과 함께 재개되었다. 원칙상으론 전국의 모든 교육기관에서 학습 활동이 시작됨을 의미했지만, 방식은 비대면 수업이었다. 교육 당국이 아직 온라인 수업 플랫폼을 갖추지 못했기에, 학교 별로 혹은 교사 별로 각자가 알아서 가능한 방법들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인터넷 안 되는데 비대면 수업?

그렇게 멕시코 전역의 2500만 명에 가까운 초중고 학생들이 생전 처음 접하는 비대면 수업의 세계로 들어왔다. 원칙은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었으나,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했다. 가장 큰 문제는 멕시코의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률이었다. 2020년 현재 멕시코 전체 가구 중 인터넷에 접근이 가능한 비율은 63%에 불과하다. 게다가 수업을 위한 컴퓨터를 갖춘 학생들의 비율은 초등학생 37%, 중고등학생 49%에 머무니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비대면 수업이란 말 자체가 아이러니다.

학생을 둔 집집마다 우왕좌왕했고, 곧 불안과 불만이 터져 나왔다. 물론 학생들은 태평했지만, 학부모들은 초조했다. 실시간이든 녹화든 정상적 수업 진행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이메일이나 단체 채팅방을 통해 교사가 숙제를 내주고 학생들이 숙제를 완료하여 교사에게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이런 방식을 접해 본 적 없는 학생들에겐 이마저도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은 부모의 도움 없이 학기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학부모들에게도 역시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어느 나라나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이후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교육활동 또한 급변하는 중이기에 멕시코의 비대면 수업을 둘러싼 반응이 호들갑 수준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간 멕시코 교육 전반에 존재했던 지극히 비정상적인 면면들을 고려한다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출현 이후 멕시코 전반 곳곳에서 판도라 상자가 열렸듯, 교육도 예외 일 수는 없었다.

2020년 기준 멕시코 20세에서 24세에 이르는 연령 인구의 평균 교육 연수는 10.1년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 평균 학력인 셈이다. 이제 막 20대에 접어든 젊은이들 중 고등학교 졸업자 비율은 60%를 겨우 넘어선다. 이들이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은 20%다. 실제로 학교에 있어야 할 17세 이하 멕시코 인구 중 476만 명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그 중 26만 명과 44만 명은 각각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을 이수하지 못한 경우다.

멕시코에서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임에도 이들이 초등학교부터 학교를 그만두는 이유 중 하나는 유급 제도 때문이다. 초등학생의 경우라도 학기당 출석률이 80%에 이르지 못하고 4과목 이상 성적이 10점 만점에 6점을 넘기지 못하면 유급된다. 2019년 교육부가 별도의 법을 제정하여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의 경우 유급 없이 상위 학년으로 진급한다는 내용을 발표하였지만 상위 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유급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설령 중학교를 마치고 의무교육의 최상 교육기관인 고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해도, 중도 탈락 없이 졸업에 이르는 비율은 67%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러하니, 막상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교실 수업이 중단되고 비대면 수업이 등장했을 때 학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은 유급이었다. 집 안에 인터넷이 없는 경우라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묘연했다. 멕시코의 경우 학령인구에 해당하는 6세에서 18세 연령대 자녀를 둔 가구 중 7백만 가구는 집안에서 인터넷 이용이 불가능하다. 컴퓨터가 없는 가구도 3백만에 이르고 1백만 가구는 집에 전화 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다.

무더기 유급 위기

비대면 수업이 재개되면서 거리 곳곳에 무선 인터넷 신호를 찾아 떠도는 사람들이 '뉴노멀'의 한 단면으로 등장했다. 설령 인터넷이 있는 곳에 어찌어찌 접근을 하더라도 바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멕시코의 경우 여전히 78%의 공립 교육 기관은 교내 인터넷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니 그간 학교에서 제대로 된 인터넷 이용에 관한 교육이 이루어졌을 리 없다. 결국 많은 학생들이 부모의 조력을 받으면서도 과제 전송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농촌 지역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였다. 도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통신 인프라를 감안한다면 비대면 수업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터넷은커녕 전기 수급이 안 되는 학교도 35%에 이른다. 2020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교육 당국이 각 방송사와 협의하여 일정 시간을 TV교육 방송으로 할애했지만, 상당 지역이 난시청 지역이었다. 게다가 과제물을 공지 받고 제출해야 하는 일들은 여전히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에 농촌 지역 학생들의 무더기 유급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도시지역이라도 인터넷 수급은 불안정하여 한번 고장이 나면 한 달 혹은 두 달이 걸려도 수리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깥출입이 자유로운 것도 아니었으니, 암담한 상황이었다. 한때 세계 최고 갑부에 랭킹 되었던 이가 멕시코 내 유무선 통신을 독점하고 제1 인터넷 회사부터 하청에 하청까지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니, 공급자 입장에선 아쉬울 것도 서두를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각자 처한 곳에서의 인터넷 사정으로 심신이 지쳐갈 때, SNS를 타고 퍼진 사진 한 장이 묘한 감동과 여운으로 지친 이들의 마음을 적셨다. 성(姓)도 없이 '나이'(Nay)라는 이름만 밝혀진 어느 선생님이 트럭 짐칸에 책상과 의자를 두고 학생과 마주 앉아 수업을 하는 장면이었다.

분위기를 반전시킨 어느 교사의 도전

며칠 후가 되어서야 나이 플로레스(Nay Flores)라는 본명과 멕시코 중부 내륙 어느 농촌 지역에서 특수학급 수업을 담당하는 선생님임이 밝혀졌다. 사진이 돌자 당황한 선생님이 일절 언론 인터뷰를 거부했지만 미담은 결국 퍼지는 법. 여러 사람들이 나이 선생님의 활동에 대해 증언하고 나섰다.

일반 학급 학생들일지라도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된 비대면 수업이 어려울 수밖에 없을 텐데 특수 학급이라니, 그 어려움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농촌 지역 특성 상 인터넷 수급이 원활할 리 없었을 것이고, 또한 농촌 지역이다 보니 학부모의 조력을 기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나중에 나이 선생님 본인이 언론을 통해 밝힌 바에 의하면 학기 말이 되자 당신이 맡은 학생들이 유급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몰려왔다고 했다.

결국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트럭 한 대를 빌렸고, 그 트럭 짐칸에 책상과 의자가 전부인 간이 교실을 만들었다. 그렇게 트럭을 몰아 학생들 한 명 한 명 집을 방문하면서 수업이 시작되었다. 비록 비대면 지침을 어긴 수업이지만, 일부러 지붕도 설치하지 않고 자연 바람과 햇빛 아래서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유급 없이 학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수업을 진행했다. 
 
 수도 멕시코시티의 한 술집에서는 오전 중 학생들에게 인터넷 서비스와 함께 간단한 아침 식사를 제공했다. 심리상담사도 상주시켜 아이들의 상담을 도왔다.
ⓒ Imagen 뉴스 화면
한 사람의 선한 마음은 또 다른 사람의 선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나이 선생님의 뉴스가 전해지자 멕시코 곳곳에서 또 다른 나이 선생님들이 등장했다. 마치 슈퍼맨처럼. 주로 밤에 영업을 하는 술집들이 낮 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인터넷 사용 장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물론 술집이다 보니 반드시 학부모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조건이 제시되긴 했지만, 대낮 도심 술집에서 학생들이 숙제를 하고 있는 모습은 어쩌면 아름답기까지 했다.

술집들이 나서자, 이번엔 여염집들이 발을 벗고 나섰다. 수업을 받거나 숙제를 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인터넷 신호가 닿는 자신들의 집 마당을 제공하거나, 대문 앞에 인터넷 아이디와 암호를 적어 두고 누구라도 그 곳에서 학업 관련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나선 것이다.

실제로 내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도 접속 장소가 여느 가정집 앞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간혹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수업에  그들의 안위가 걱정되긴 하였지만, 멕시코가 처한 상황과 그 와중일지라도 수그러들지 않는 열정이 고맙고 아름다웠다.
 
 오아하카 주의 한 여관은 학생들에게 인터넷 서비스와 해당 여관의 로비를 제공하였다.
ⓒ La Jornada 뉴스 화면
 
그렇게 선한 마음들이 돌고 돌았어도 2020년 한 해 250만 명 이상의 초, 중, 고등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했다. 이는 전체 학생 수의 10%다. 열 명 중 한 명이 의무교육 과정에서 학업을 중단한 것이다. 물론, 이 모든 학생들의 학업 포기 직접 원인이 코로나바이러스일 수만은 없다. 학생들의 학업 중단은 멕시코 교육의 오랜 고질적 문제 중 하나였다. 다만,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과 그로 인한 온라인 수업의 등장은 더 많은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게다가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앞으로 학업 중단 학생 수는 더 늘면 늘었지 줄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고, 부랴부랴 정부에서 긴급 예산을 투입해가며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불거진 비정상적 교육 공백을 메우려 노력하지만 워낙 비정상적인 체제가 오랜 시간 지속된 터라 수습하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교육부 발표에 의하면 2020년 80만 명의 중졸자가 고등학교 입학을 포기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간 수십 년 간 이어지던 가족 간 혹은 친지 간 교직 세습이 전면 금지되고 겨우 교사 임용 선발 시스템이 갖춰지는가 싶었는데 2020년 이 또한 잠정 중단되었다. 16만 명의 응시 예정자가 기회를 잃었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불만은 없다.
 
 수도 멕시코시티 한 공원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학생들에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기계와 수업 보조 활동을 제공하고 있다.
ⓒ adn 40
 
다만, 진즉 거대공룡이 되어버린 교원노조가 여전히 교직 세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 혹여 코로나바이러스 시국을 틈타 은밀히 예전의 시절로 돌아가지 않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물론, 그간 숱한 교육 예산이 집행되었음에도 어찌 이토록 열악한 교육 인프라를 면치 못하였는지도 묻고 따지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 책임은 국민들에게 있다. 요즘 같은 시절에 OECD 회원국인 나라의 공공교육 기관에 겨우 22%의 인터넷 보급률이라니, 또한 학령인구 중 5백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의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니,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이 선생님의 마음과 같다면, 그리고 학생들에게 기꺼이 술집과 여염집을 열어준 슈퍼맨들의 마음과 같다면, 난리의 와중이라도 한줄기 희망을 가져볼 만하다. 지난달 멕시코에 진출해 있는 모 자동차 회사가 짐칸에 교실을 장착한 특수 차량을 제작하여 나이 선생님한테 선물했다. 세상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처음에 주저하던 나이 선생님이 결국 선물을 수락하면서 남긴 말이 인상적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은 어쩌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최선의 것들을 끄집어내는 것 같아요."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이후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면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멕시코 치아파스 주 시골 마을 학교에 이동식 와이파이 생성기를 장착한 차량이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여 도움을 주고 있다. 해당 차량은 치아파스 주 농촌학교를 순회한다. 차량 기종의 이름을 따 일명 '봉고도서관'으로 불린다. 차량 측면에 '봉고 도서관', '무료 와이파이 존', '학생들을 위한 서비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 Imagen 뉴스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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