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화의 생활건축] '생산도시' 서울 죽이기
서울에서 요즘 유독 ‘계륵’이 된 땅이 있다. 비유대로 큰 쓸모는 없는 것 같은데 버리긴 아까운 땅, 준공업지다. 영등포·구로·금천·강서·양천·성동·도봉구 등 7개 구에 걸쳐 있는데 서울 땅 면적의 3.3%(19.98㎢)다. 서울 준공업지는 1939년 처음 지정돼 66년에 정점을 찍었다가 줄어들어 지금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오랜 역사만큼 낡은 동네다. 땅값 비싼 서울에서 제조업을 위한 땅이 꼭 필요할까. 살 집도 부족한데 누덕누덕한 저층 건물을 밀면 최소 6000가구를 공급할 수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17일 더불어민주당 친문재인 의원들의 싱크탱크인 ‘민주주의4.0 연구원’ 간담회에서 “이제 와서 서울의 비싼 땅에 제조업 작동은 어렵다”며 준공업 지역을 택지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2017년에 열린 서울 도시건축비엔날레의 주제 중 하나는 ‘생산도시’였다. 세운상가, 을지로 일대 등 서울 도심제조업 현장이 비엔날레를 위한 전시장이 됐다.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오랫동안 구축된 이 지역의 제조·유통 생태계는 젊은 창작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메이커스’ 운동이 퍼지고 지역 장인과 젊은 창작자가 합심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을지로 일대의 경우 서울의 준공업지에 속하지 않지만 도심 제조업 땅이 갖춘 유기적인 생태계의 좋은 예시로 꼽힌다.
도심 제조업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소품종 대량 생산의 시대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로 트렌드가 바뀌면서다. 생산기지가 시장 가까이에 있으면 변화에 더 빨리 대처할 수 있다.
팬데믹 시대가 도심 제조업의 필요성을 재확인시키기도 했다. 미국 뉴욕의 경우 팬데믹 시대에 도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제조기지가 방역에 큰 공을 세웠다. 봉제공장 밀집 지역인 가먼트 지구(Garment District)에서 마스크를 발 빠르게 생산해 지역 내에 공급했다. 부동산 개발론에 밀려 늘 애물단지처럼 취급되던 지역의 재발견이었다.
서울시의 고민도 깊다. 서울의 준공업지는 일자리 기지이기도 하다. 2017년 기준으로 서울 준공업지 종사자는 57만8000명, 전체 산업(500만5000명)의 11.5%에 달한다. 미래 신사업 기지 관리 차원에서 서울시는 수도권정비계획법 7조에 따라 면적 총량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낙후한 준공업 지역을 일터와 삶터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어떻게 재구조화할지, 종합발전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런 와중에 중앙 정부가 나서서 당장의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는, 서울의 노는 땅으로 준공업지를 지목했다. 제조 기능을 잃은 세계의 다른 도시가 부러워하는 생산도시 서울의 가능성을 잘라버리는 일이다. 정부의 땜질정책에 도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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