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인사유세(人死留稅)?
“16강에 오르면 감독은 3000만원, 코치 2000만원, 선수에겐 1000만원씩을 주겠다. 8강에 오르면 2배씩을 주겠다.”
멕시코 월드컵대회를 앞둔 1986년 4월.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이 승부욕을 북돋우겠다며 성과금 공약을 했다. 당시 국가대표 선수는 허정무(대전 하나시티즌 이사장)와 차범근(전 국가대표 감독). 허 선수는 아르헨티나와의 조별예선 경기에서 ‘축구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 선수와 맞붙는다. 수비하려다 마라도나의 허벅지를 걷어차게 되는데 이 때문에 한동안 ‘태권 축구’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다. 우리 국가대표팀은 분투에도 불구하고 조별예선에서 탈락하고 만다.
봉투 약속을 했던 축구협회장은 최순영(82) 당시 신동아그룹 회장. 1979년 회장을 맡아 무려 8년 10개월간 축구협회를 이끌었다. 맨땅이던 효창운동장에 잔디를 깐 것도, 우리나라 프로축구단 1호팀을 만든 것도 그였다. 하지만 정작 그가 이름을 날린 것은 안타깝게도 축구가 아니었다.
그는 1억6000만 달러를 해외로 빼돌렸다는 혐의로 1999년 검찰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옷 로비’ 사건이 불거졌다. 남편의 구속을 막으려 그의 아내가 당시 실세 장관 아내들에게 고가의 옷으로 로비했다는 의혹은 정권을 흔들었고, 법무부 장관이 옷을 벗었다. 외환위기(IMF)와 함께 신동아그룹이 소유했던 대한생명은 3조5000억원의 공적자금 투입에도 버티지 못하고 매각됐다.
그의 이름은 이후론 고액체납자로 지면에 올랐다. 1996년부터 쌓인 미납세금은 무려 약 1100억원. 여기엔 서민도 모두 내는 주민세 6170원도 포함돼있다. 지난 3일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직원들이 그의 집을 수색했다. 역대 두 번째 가택수색이었지만 그림 등 20점과 현금 2687만원이 나왔다. 그림 80여점을 지난해 35억원에 팔았다는 서류도 발견됐다. 돈의 향방을 묻는 공무원에게 그의 부인은 “그림 매각대금 35억원은 손주 학자금”이라고 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최 전 회장은 “옛 회사를 돌려주면 다 내겠다. 회사를 경영하며 국가에 그만큼의 세금을 다 냈다”고 말했다고 한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虎死留皮)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데(人死留名), 어쩌면 그는 세금을 남길지도(人死留稅) 모를 일이다.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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