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박혜진의 읽는 사이] 가난하다는 건 도시 중심에서 멀어지는 것
나는 중력이란 말을 비유적으로만 이해하는 것 같다. 어쩌면 영원히 이렇게 절반만 이해한 채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모든 물체에는 지구 중심으로부터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 사전은 이토록 쉽게,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중력을 정의내리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과학적 개념이 그렇듯 내게는 빈틈이라곤 없는 이 타당한 설명이 어떤 의미나 기분도 전해 주지 못한다. 실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해가 뜨고 진다, 지나간 계절이 돌아온다, 밀물과 썰물이 반복된다, 사과가 땅으로 떨어진다… 의심 없는 사실들은 대체로 사실 그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다. 해가 뜨고 지는 건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 시간의 변화이기보다 어둠이 가고 희망이 오는 심리적 변화일 때 비로소 실체가 분명한 사건이 된다.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오는 것도 계절의 순환이라고 생각하면 놀라울 일이 전혀 없지만 다시 모든 게 새로워지는 부활과 재생의 운동이라 생각하면 끝도 없이 생을 예찬할 수 있을 것 같은 신비가 느껴진다. 비유가, 어쩌면 비유만이, 인간을 절망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실들은 불가해한 인생을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알리바이다. 확실하기 때문에, 오직 확실하다는 이유로, 인생이 가져다주는 암흑 같은 불행 앞에서도 우리는 낙관할 수 있다. 결국 봄은 오고 만다는 것을 모른다면 어떻게 우리가 고통 이후를 상상할 수 있을까. ‘사랑의 중력’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떨어지는 건 우주를 이해하는 거야.” 나는 이 말에 완벽하게 공감했다. 물론 비유적으로. 그리고 안도한다. 떨어지고 있는 내 마음에.
이렇다 보니 쓸모없음으로 쓸모를 증명하는 것이 문학이라는 말에는 한 번도 동의한 적이 없다. 비유가 문학의 쓸모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낙담한 마음을 구하는 것만큼 위대한 쓸모는 있을 수 없다. 사라 스트리츠베리의 ‘사랑의 중력’은 자꾸만 삶에서 멀어지려 하는 고독한 마음을 고요하게 들여다보는 소설이다. 사람에게는 발을 땅에 붙이고 살게 하는 중력만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 사이에 머무르게 하는 중력, 이른바 사랑의 중력이 필요하다. 사람은 사랑을 통해 연결될 수 있다. 중력은 사랑에 대한 비유이고 사랑은 또한 중력에 대한 비유다. 내가 중력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유럽 최대의 정신병원이었던 베콤베리아를 거쳐 간 사람들의 마음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이라는 중력이 작용하지 않거나 아주 희박하게만 작용하는 성긴 삶의 한가운데에서 종종 길을 잃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격렬하게 삶에 저항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삶으로부터 멀어지는 역설. 주인공이 아버지를 면회하기 위해 찾아갔던 베콤베리아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주인처럼 둥둥 떠올라서 그들을 붙잡으려면 발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떠나려는 타인의 발을 붙잡을 수 없다. 중력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중력에서 벗어나려는 것도 막을 수 없다. 반대 방향에서 바라보면 그 역시 중력의 작용일 테니까. 죽음의 중력이라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겠지만.
소설을 읽은 후에 다시 ‘가난의 문법’을 읽었다. 이 책은 도시 연구자인 소준철이 수년 동안 폐지 줍는 노인 여성을 인터뷰하며 쓴 사회학 저서다. 저자가 서울 북아현동 인근에서 만난 여성들을 베콤베리아에 격리된 이들과 단순 비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들의 삶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난과 함께 도시의 중심으로부터 가혹하게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두 권의 책을 겹쳐 읽게 한다. 베콤베리아 사람들에게 사랑의 중력이 점멸해 가는 것처럼 북아현동 여성 노인들에게 공동체라는 중력이 점멸해 간다.
도시는 점점 더 살기 어려운 곳이 되어 가고 있다. 중심으로 향하는 힘은 여전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 큰 힘이 작용한다. 그리고 그들이 소유하는 힘의 크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발에 땅을 붙이고 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일까. 중심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가난의 문법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중심으로 향하는 사회의 중력은 가난을 정의하는 새로운 기준을 알아채려 하지 않는다. 중력이 닿지 않는 곳. 곳곳이 베콤베리아처럼 보이는 건 비유로 세상을 바라보는 내 단순한 착각인 걸까.
박혜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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