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피해-가해자 후손들은 왜 마주앉았나

김현길 2021. 3. 4.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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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생존자 카페
엘리자베스 로즈너 지음, 서정아 옮김
글항아리, 400쪽, 2만원
‘JEDEM DAS SEINE’는 저자 엘리자베스 로즈너의 아버지가 있었던 독일 부헨발트 집단수용소 정문에 새겨져 있는 문구다.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이라는 뜻으로 원래는 각자에게 합당한 몫이 주어져야 하다는 의미이지만 나치는 유대인이 집단수용소에 있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의미로 이 문장을 사용했다. 한마디로 너희는 이런 대접을 받아도 무방하다는 의미다. 사진은 지난해 4월 11일 부헨발트 집단수용소 해방일에 촬영했다. AP뉴시스


홀로코스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쇼아(Shoah)’는 히브리어로 절멸을 뜻한다. 9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나치의 끔찍했던 범죄에 대한 증언이 이어진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수용소 인근 주민, 절멸 작업을 수행한 전직 나치와 공무원, 역사학자 등이 증언의 주체다. 감독인 클로드 란즈만은 트레블링카, 바르샤바 게토 같은 비극의 장소와 흔적들을 되짚으며 이들의 증언을 하나씩 더해 나간다.

영화엔 수용소의 끔찍함을 떠올리는 기록영상이나 배우의 연기는 담겨 있지 않다. 또 다른 홀로코스트 다큐멘터리 ‘밤과 안개’(알랭 레네 감독)나 ‘쉰들러 리스트’(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같은 극영화와 다른 지점이다. 과거를 떠올릴 기록물이나 의도적 재현은 없지만 경험한 이들의 말과 표정은 오히려 어둠의 역사를 더욱 짙게 기억하고 있다. 그 의미는 책 ‘생존자 카페’에 인용된 시몬 드 보부아르의 문장에서 명확해진다. “(클로드 란즈만의) 작품이 위대한 이유는 장소들을 말하게 하고, 목소리로 그것들을 되살리고, 말의 한계를 넘어,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람들의 표정으로 전달한다는 데 있다.”

경험하지 않은 고통과 마주한 자녀


‘생존자 카페’는 홀로코스트의 시간을 살지 않은 자녀 세대가 마주한 과거의 참혹한 고통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담긴 책이다. ‘쇼아’의 증언자들처럼 잔학한 시대를 몸소 겪은 이들이 죽어가고, 그들의 목소리마저 사라질 때 과거를 기억할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책의 출발점이다. 열다섯 혹은 열여섯 살에 독일 부헨발트 집단수용소에 수감된 아버지, 열세 살 때 유대인 거주 지역 학살을 피해 폴란드 시골로 숨은 어머니를 부모로 둔 소설가 엘리자베스 로즈너가 책의 저자다.

생존자 2세인 저자의 가족사는 유럽 현대사와 포개진다. 포개진 몇 년은 부모들의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먼저 저자의 아버지에게 고향 독일은 종전 후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발 딛기 힘든 곳이다. 부녀가 처음 독일을 찾았던 1983년에는 떠나기 전날 회사 일을 이유로 일정을 취소하자고 한다. 독일 통일 전이던 당시 총을 든 동독 경비병을 마주하고선 신경이 날카로워지기도 했다. 마음의 거부는 몸의 이상으로 나타났다. 저자와 함께 한 세 번의 독일 방문에서 아버지는 극심한 복통을 호소하거나 갑자기 안색이 변해 실신 상태에 처한다. 부헨발트 집단수용소 해방 50주년에 맞춰 참석한 두 번째 방문에선 이가 빠졌다.

이에 비해 저자 어머니의 상처는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다. 식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배고파 죽겠다”고 하거나 닭고기를 먹을 때 뼈다귀를 쪼개 골수까지 빨아대는 건 10대의 배고팠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평생 수백 점의 보석을 모으는 등 낭비벽이 있었던 것도 절박했던 과거의 경험에 뿌리를 둔다. 어머니는 보석과 금화를 넣은 주머니를 목에 걸고 폴란드 시골로 도망쳤는데, 실제 보석 몇 점을 대가로 농부들의 헛간에 숨을 수 있었다. 당시의 경험이 보석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그런 일을 겪은 이후로 어머니는 금붙이나 보석을 안전이나 생존과 (동일시까지는 아니더라도) 결부시키게 됐으리라고 나는 추측한다.”

부모 세대의 아픔은 어느 순간 저자에게 전이돼있다. 저자는 1982년 유럽 여행도중 아버지 출생지인 독일 함부르크에 기차로 도착했지만 마비된 것처럼 그곳 플랫폼에 1분도 발을 디딜 수 없었다. 밤에 기차가 엉뚱한 선로에 들어서는 바람에 선로가 끝나는 곳을 향했던 순간엔 집단수용소의 어두운 역사가 떠오른다. “결국 우리는 기차를 후진시켜 원래의 선로에 돌아갔다. 독일 국경 순찰대가 발소리도 요란하게 객실을 돌며 여권을 검사했다. 그들의 입이 독일어 음절을 내뱉을 때마다 내 몸은 움츠러들었다. 내게 그것은 살인자들의 언어였다.”

연결되는 기억과 극복의 가능성

부모의 전쟁 경험담이 “그냥 늘 안고 있었던 느낌”이라는 저자는 생존자 2세들이 “유전성 트라우마”라는 비슷한 정서를 공유한다고 설명한다. 후성유전학 연구는 이를 의학적으로 뒷받침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32명과 그들의 자녀, 손주로 구성된 집안을 연구했을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후세대로 이어지는 현상을 세대 간 전이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건물 근처에 있었던 여성들의 자녀, 폴 포트 집권기를 거친 캄보디아인들에게서도 비슷하게 관찰된다. 저자는 “슬픔으로 채워진 모유를 마신다는 비유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정확한 표현”이라고 적는다.

저자는 역사에 새겨진 수많은 고통으로 범위를 확대해 이를 마주한다. 홀로코스트 피해자와 그 가족은 물론이고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군인, 아르메니아 학살, 베트남전쟁,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피폭자, 인종차별로 인한 집단 린치 피해자 등과 마주앉아 듣고 이야기한다. 때론 가해자의 고통에도 가닿는다. 일례로 “독일에서는 자신을 사랑하기가 너무 어려워요”라고 말한 나치 친위대원의 손녀를 통해 가해자의 후손이 겪는 마음의 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저자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군의 여동생을 만난 후 가해자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되풀이되는 비극의 원인을 둘러싼 보다 깊고 복잡한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어서다. “우리는 그들이 곧 우리이고 우리가 곧 그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그들의 이야기가 침묵 속에 묻히고, 잔혹 행위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구한다면…우리 인간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고 무슨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에 관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가 피해자와 가해자, 1세대와 2·3세대 등을 아우르며 마주앉는 것은 되풀이 되는 비극을 막을 힘이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기억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서로의 균열을 메울 수 있는 출발점도 대화다. 책은 저자의 가족, 다른 비극에 관련된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를 반복해서 확인시켜준다. “우리는 우리를 잇는 가느다란 실을 모아 굵다란 밧줄로 땋기를, 그래서 다양한 대륙과 다양한 경험, 다양한 세대를 널리 아우르기를 희망한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현대사의 수많은 아픔을 간직한 한국의 상황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드러나지 않은 채 묻혀버린 목소리들이 얼마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나아가 베트남전에서처럼 때론 가해자로 기억하고 연결해야 할 과거는 없었는지도 곱씹게 된다. 그런 점에서 책이 인용한 데이비드 로웬설의 문장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트라우마를 초래할 만한 기억을 억누르는 행위의 정신적 대가는 비단 개인뿐 아니라 국가에도 혹독할 수 있다. 때때로 역사는 소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통째로 삼켜야 한다. 그래야 현재의 오해를 깨우치고 미래에 진실을 전할 수 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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