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거트 회사가 발견한 박테리아의 비밀

이인미 2021. 3. 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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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다큐 보따리③] 넷플릭스 다큐 < 휴먼 네이처: 인간을 편집하다(Human Nature) >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지구환경을 위협하는 치명적 문제들이 점점 더 많이 포착된다. 막연한 불안감이나 빈약한 희망고문보다, 적합한 관심이 필요한 때다. 현 지구환경에 관하여 적합한 관심을 두루 나누며 함께 행동할 마음을 갖추고자, 환경 다큐 리뷰를 연재한다. 넷플릭스에서 관람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그 중심에 둔다. <편집자말>

[이인미 기자]

DNA는 우리가 평상시 자주 쓰는 단어는 아니다. 범죄수사 영화나 친자확인 뉴스 같은 데서 드물게 접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DNA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 DNA를 꽤 익숙한 단어로 만들어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제목은 <휴먼 네이처(2019)>,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러닝타임 1시간 34분 내내 DNA라는 단어를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번 듣게 된다. 
 
▲ 영화 포스터  <휴먼 네이처: 인간을 편집하다>
ⓒ 넷플릭스
 
이 다큐는 다만 그 단어를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DNA에 대한 '공부'를 아주 제대로 시켜준다. 골치아픈 생물학, 화학, 유전공학 따위는 몰라도 괜찮다. 다큐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이 아주 쉽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다큐를 보고 나면 DNA에 관하여 한두 마디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게다가 <휴먼 네이처>는 DNA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자연환경과 인간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하도록 이끈다. 그런 의미에서 'DNA 인문학'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휴먼 네이처>는 총 여섯 개의 장(chapter)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다. 인간의 경우 대략 2만5천개의 DNA 중에서 딱 한 개에만 문제가 생겨도 치명적 유전질환이 생길 수 있는데, 그 유전질환을 치료하려면 DNA를 바꿔주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러나 많은 DNA 중에서 오직 하나의 DNA만을 골라 교체하는 건 말 그대로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다. 

더구나 대체할 DNA를 인체에 주입했을 때 그것이 제자리를 잘 찾아 들어가리라는 보장이 없다. 불행하게도 엉뚱한 자리에 들어가서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 

2장에서는 인체에 유익한 박테리아를 배양해 우유에 넣은 제품 '요거트'를 제조하는 회사가 2007년 발견한 박테리아의 특별한 활동이 소개된다. 박테리아는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두 가지 반응(감염되어 죽거나, 방어해서 살아남거나)을 보인다.

박테리아가 바이러스를 방어해서 살아남는 방법은 우선 침입자 바이러스의 DNA 염기서열 한 조각을 복제하는 일이다. 다큐에 출연한 과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침입자 바이러스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해 현상수배범 전단지를 만드는 작업에 비유할 수 있다. 그 작업을 완료하면 이후 현상수배범 전단지와 동일한 얼굴(염기서열)을 지닌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네가 또 왔구나!"하면서 단번에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침입자 바이러스에 대한 복제와 처리 과정에서 박테리아는 자신의 DNA '크리스퍼(일정하게 반복되는 염기서열 구조, repeat-spacer 구조)'를 활용한다. 박테리아는 자기의 정체성을 이루는 염기서열의 마디 중에서 spacer 부분을 바이러스의 모습과 완전히 똑같은 염기서열로 수정, 변경할 수 있는 신비로운 능력을 갖추고 있다.
 
▲ 영화 스틸컷  리피트(repeat)-스페이서(apacer) 구조에서 스페이서가 바이러스의 DNA 염기서열을 복제해서 갖게 된 모습
ⓒ 넷플릭스
 
이 같은 박테리아의 면역활동을 발견한 요거트 회사는 이후에 박테리아의 복제활동을 인간이 원하는 대로 유도할 수 있게 되었다. 침입자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을 박테리아에게 미리 알려주는 방식으로 그 복제활동을 도운 것이다. 그 결과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갖춘 박테리아들을 양산할 수 있게 되어 요거트 품질이 좋아졌다.

한편 이런 신비로운 면역활동은 박테리아한테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서도 일어난다. 그런데 인체의 DNA는 박테리아보다 훨씬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그것을 인체 바깥에서 의도적으로 조절하거나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가 없었다. 버클리대학의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와 질 밴필드(Jill Banfield)가 'CAS9'이라는 RNA(단백질)로 크리스퍼 내부의 신비로운 복제활동을 성공적으로 유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우드나 박사가 사용한 CAS9은 아주 예리한 지우개에 비유할 수 있다. 다큐 속 또 다른 과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CAS9은 매우 정확하여 두꺼운 백과사전에 틀린 글자가 단 하나 있을 때 어김없이 그 한 글자를 찾아내어 지우거나 바꿔주는 일을 수행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인간의 DNA를 오류 없이 편집할 수 있는 도구'인 것이다.  

이 정도면 DNA에 대한 기본지식은 충분히 갖춘 셈이다. 이제 영화는 인류가 앞으로 더 편리하고 저렴하게 CAS9을 사용할 수 있게 되리라는 전망과 함께(3장), 좋은 유전자만을 골라 가진 맞춤 아기(designer baby)의 탄생이 멀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물론 그런 세상이 오는 게 '멋진' 일인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만(4장, 5장).

DNA의 편집도구인 CAS9을 통해 깔끔하게 유전질환 DNA를 삭제하면 그 인체는 치명적 유전질환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유전질환이 없는 신체는 그 신체에만 국한되며, 다음세대로 유전되지 않는다. 정자/난자(생식계열세포)에 직접 손을 대지 않는 한 당대에서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마침내 다큐멘터리는 우리 인류가 '인체의 생식계열세포에 대하여서도 DNA 편집기술을 들이댈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휴먼 네이처>에 출연한 과학자들의 입장은 반반으로 갈린다.

먼저, 부모의 유전자 중에서 좋은 유전자만을 골라서 자녀의 유전자로 선택해주는 것이 왜 나쁜가 질문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그들은 유전질환을 치료하는 게 왜 나쁜가 의문을 표한다. 그리고,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들이 진짜 멸종될 때까지 손놓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얼른 손을 써서(유전자 편집을 통해) 그들의 개체수를 현상유지할 수 있다면 그게 지구환경에 더 유익한 일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 반대쪽에는, DNA 편집기술이 유전병 치료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특수한 속성을 지닌 사람들을 목적의식적으로 산출하는 데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인간을 목적에 맞춰 도구화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휴먼 네이처>는 과학자들의 다양한 찬반논쟁을 들려주고, 유전질환자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들의 애끓는 심정과 생각도 알려준다. 그런 다음, 6장 "신 놀이(Playing God)"에 이르러, 주기적으로 혈액교체를 시술받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는 유전질환 '적혈구 낫형 세포병'에 걸린 당사자 소년(데이비드 산체스)을 인터뷰한다.

데이비드는 "DNA 편집기술을 써서 너도 그 병에서 완치되고, 나중에 네 자녀도 그 유전병에 걸리지 않고 태어나면 좋겠지?"라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낫형 세포병 때문에 내가 배운 게 많아요. 그 병 때문에 모든 사람을 참을성 있게 대하는 걸 배웠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다음으로, 혹시 그 병에 걸리지 않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는 "저는 원하지 않아요. 그 병에 안 걸렸으면 지금의 제가 아니잖아요"라고 응수한다. 그는, 자연 혹은 우연이 부여한 확률에 의해 자기에게 찾아온 유전질환에 대하여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연의 우연적 결과란 유신론자들에게는 '신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가 결론을 유보한 것처럼 DNA를 통한 인체의 치료 및 변형이라는 주제는 어차피 하나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DNA 편집기술이 이미 있는데 그걸 사용하지 말라는 건 가혹하다는 의견도 일견 타당하다. 물론 DNA 편집기술로 다음세대 인간의 신체를 조절해두려는 것 또한 성급해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말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자연의 우연을 따를 것인가? 인간의 결정을 따를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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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핵없는세상> 공동대표 &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지도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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