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도 상관없다는 <프렌즈>, 그들만의 딴 세상
[이준목 기자]
지난 2월 17일 첫 방송을 시작한 채널A <프렌즈>는 과거 <하트시그널> 역대 시리즈에 출연했던 인물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신개념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다. 2017년부터 방송되어 총 세 번의 시즌을 거친 <하트시그널>은 로맨스+일반인 출연자+리얼리티 관찰 장르를 결합시켜 국내 방송가에 연애 예능물의 인기를 부활시킨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하트시그널'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 프로그램의 영향을 통해 젊은 세대에서 남녀간의 연애감정을 의미하는 새로운 유행어로 자리잡았을 정도다. 이 시리즈에 등장한 역대 출연자들 역시 많은 화제를 모았다.
<프렌즈>에는 오영주, 정재호, 이가흔, 김도균, 김장미 등 <하트시그널>에서 인지도를 높인 사실상 '연반인(연예인+일반인)'급 출연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각기 다른 시즌에 출연하여 <하트시그널>에서는 직접 만날 일이 없었던 오영주와 이가흔, 정재호와 김민재 등이 함께 등장하며 케미를 쌓기도 했고, 출연자들 각자의 근황과 직업-취미활동 등이 공개되기도 했다. 향후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커피사업가 김기훈 등 <하트시그널> 출신이 아닌 뉴페이스 출연자들도 등장할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하트시그널>이 '시그널하우스'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일정 기간 동거동락하며 조금씩 감정을 키워가는 청춘남녀들의 이성적인 '썸'에 주목했다면, <프렌즈>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 출연자들이 이미 서로에 대하여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정과 사랑의 감정이 어디까지 공존할 수 있는지를 관찰하는 '프렌썸'을 표방했다. 최근 영화에 이어 예능에까지 불고있는 '유니버스(세계관) 확장'의 <하트시그널> 버전인 셈이다.
<하트시그널>과 <프렌즈>의 출연자들은 한의사, 정비사, 공무원, 스타트업 CEO 등 젊은 나이에도 사회-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거나 여유가 있는 고학벌 혹은 전문직의 엄친아들로 이루어졌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직간접적으로 방송이나 관련 분야에 경험있는 인물들도 다수다.
외모-학벌-매너 등을 두루 갖춘 세련된 도시남녀들이 연애라는 미션을 마주했을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본능,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파악하기 위하여 물고 물리는 치열한 신경전까지, 요즘 2030세대의 가치관과 감정선을 추리하는 것이 바로 이 시리즈의 매력 포인트였다. 비슷한 장르의 원조격인 <짝>이 연애를 소재로 다양한 세대-계층을 포괄하여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야생 서바이벌'이었다면, <하트시그널>은 이를 좀더 우아하게 포장하여 연출한 '심리 게임'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하트시그널> 유니버스의 발목을 잡은 것은 출연자를 둘러싼 자질 논란이었다. 이미 <하트시그널>은 첫 시즌부터 시리즈 내내 출연자 검증 문제로 끊임없이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시즌1에 출연했던 배우 강성욱은 지난 12일 성폭행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고, 시즌 2에 출연했던 요리사 김현우는 과거 여러 차례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시즌3에서는 천안나, 이가흔 등이 방송이 시작되기도 전에 학폭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트시그널> 제작진은 각종 논란과 비판 속에서도 끝까지 방송을 강행하여 시청자들의 곱지않은 시선을 받았다.
<프렌즈>에는 하필 <하트시그널>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출연자들도 재등장했다. 시즌2에 출연했던 김현우는 지난주 예고편을 통하여 이미 출연을 예고한 데 이어 3일 방송된 3회에는 결국 정식으로 등장했다. 그는 2012년, 2013년, 2018년까지 무려 세 번이나 음주 운전에 적발되어 벌금형을 선고받고 물의를 일으켰던 인물이다. <하트시그널> 출연 당시 김현우는 시크하고 남성적인 매력으로 큰 주목을 받았고, 오영주, 임현주 등 여성출연자과 잇달아 러브라인을 형성할 만큼 시즌2 스토리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라 파장이 더 컸다.
<프렌즈>에 등장한 김현우는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들도 있어서 사람들에게 아예 연락을 할수가 없었다"며 음주운전 사건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하트시그널> 출연 당시 이태원에서 작은 일식당을 운영중이던 김현우는 현재는 식당을 폐업했다고 밝혔다. "하기 싫어서나 의욕이 떨어져서, 돈이 안되서가 아니다. 계약이 끝났고 그 공간을 떠나려 했어서 끝났다"라고 고백하며 현재는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고백했다. <프렌즈>의 멤버들도 김현우의 근황을 전혀 몰랐던 듯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진 에피소드에서는 김현우가 시즌3 출연자인 이가흔과 만남을 가지는 모습이 등장하며 앞으로도 출연이 계속될 것을 예고했다.
최근 연예계나 스포츠계에서도 출연자들의 '과거사'가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학폭, 왕따, 갑질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들은 징계를 받거나 사회적 퇴출 위기에 몰려있다. 사실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경우라도 방송 출연에서 편집하거나 대외활동을 자중하는 경우가 많다. 김현우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음주운전을 상습적으로 저지른 인물을 공적인 방송에 출연시키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프렌즈>는 여기서 더 나아가 김현우를 여전히 '매력적인 남자'로 포장하는 데 앞장선다. 오랜만에 등장한 김현우의 모습에 오랜만에 MC들과 출연자들은 모두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그를 띄워주기 바쁘다. MC들은 "9년 동안이나 식당을 꾸준히 운영해왔다는게 대단하다" "영화 킹스맨의 콜린퍼스같은 젠틀한 신사" "가만히 있어도 사람이 모이는 파리지옥 같은 남자"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최근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은 학폭 논란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출연자 진달래의 하차 과정을 안타까운 비극처럼 포장하여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학폭 의혹을 인정한 진달래가 오열하며 자진 하차 의사를 밝히는 모습과 다른 출연자들이 그녀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장면을 교차시키며 가해자 미화 논란에 휘말렸다. <프렌즈>가 김현우를 묘사하는 방식도 이와 다를 게 없다.
<하트시그널> 방영 당시 김현우나 강성욱이 논란의 중심에 섰을 때는 이미 프로그램 촬영이 다 끝났거나 방송이 종료된 시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미 물의를 일으킨 전력이 있는 출연자를 알고서도 기용했다는 점에서 제작진은 비난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시청률과 화제성만을 위하여 사회적 정서나 시청자의 비판 여론은 무시했다고 보인다.
<프렌즈>의 세계관이란 청춘남녀의 삶의 방식이 주는 대중적 공감대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 스토리다. 여기서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출연자의 진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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