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태리 "실패없는 필모? '승리호'로 부담감 터졌다"(종합)
SF까지 섭렵했다. 의미있는 한국 영화의 발자취를 함께 하고 있는 김태리(32)다. '거장 박찬욱 감독이 선택한 신예'라는 타이틀로 데뷔와 동시에 충무로 신데렐라가 된 존재감. 놓치지 않은 기회를 바탕으로 이후 행보도 그야말로 승승장구다. '1987'(장준환 감독·2017) '리틀 포레스트'(임순례 감독·2018), 그리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까지 영화계와 방송가가 주목하는 프로젝트에 늘 이름을 올렸고,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늘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김태리가 이번엔 2092년 우주선에 몸을 실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승리호(조성희 감독)'는 대한민국 첫 SF 영화로 역시 기록될만한 시발점을 알린 작품이다. 파격적인 비주얼 변신에 진취적인 캐릭터로 김태리의 강점과 새로운 매력도 가득 담겼다.
-'승리호'에 대한 글로벌 반응이 좋다. "너무 감사한 마음 뿐이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오랜 시간 준비한 영화인데 호응을 얻어서 기쁘고, 함께 한 배우 선배님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끼리 열심히 자축하고 있다."
-넷플릭스 공개가 전화위복이 된 셈인데. "너무 오래 기다렸던 것은 사실이다. 영화는 이미 완성이 됐는데 관객들에게 보여지기까지 얼마나 더 시간이 걸려야 하는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넷플릭스 공개가 결정돼 어떻게든 선보일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좋았고, 한국 관객들 뿐만 아니라 해외 관객 분들에게까지 인사 드릴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기억에 남는 평가가 있다면. "음…. (송)중기 선배님이 받은 문자였는데 '영화의 완성도 그런 것을 다 떠나, 중반쯤이 지났을 때 이 영화를 만든 모든 사람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어떻게 보면 베테랑들이 모였는데, 이건 처음 하는거야. '승리호' 선원들처럼 현장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어려웠지만 점점 끈끈해졌던 것 같다."
-해외에서 더 익숙할 법한 장르일 수 있는데, 역으로 해외 관객들이 '승리호'에 매료 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내가 매료된 점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승리호'는 굉장히 한국적이다. SF 하면 하얗고 은색에 차가운 느낌과 진지한 면도 보이기 마련인데, 우리 영화는 우리의 정서가 녹아져있다고 해야 할까? 가족 이야기를 여러 번 언급했지만 그 또한 한국적이다. 등장하는 사람들이 우주복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상하게 다 떨어진 거지같은 옷을 입는다. 그리고 지구에서 먹을 것 같은 것들을 먹는다. 케찹도 발라 먹고.(웃음) 아주 작은 소품 하나하나를 가져다 놓고 보니 더욱 한국적인 맛이 나게 된 것 같다."
-가족 코드를 두고 신파에 대한 호불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음…. 잘 모르겠다. 나는 재미있게 봤다. 태호(송중기)와 아이 이야기를 말씀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건 인물 모두가 각자 가지고 있는 사연들 가운데 태호 이야기에 집중한 부분이다. 조성희 감독님이 꼭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으로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 역시 그런게 생각하고 이해하면서 봤다."
-화끈한 캐릭터 변신에 대한 호평이 많다. "내가 나를 봐도 쉽게 상상이 안 되는 이미지라 굉장히 큰 도전이었다. 감독님을 만나 감독님이 구상한 세계관, 장선장의 전사들 같은 것을 구체적으로 들으니 어느 정도는 윤곽이 잡히더라. 그리고 클리셰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얼굴의 사람이 장선장 자리에 앉아 있으면 오히려 시너지가 날 것 같다'는 감독님의 말을 믿고 시작했다."
-비주얼만으로 캐릭터가 절반 이상은 설명된다. "감독님이 세밀했다. 2D 작업을 끝낸 장선장 이미지 보여 줬는데, 영화 속 최종 장선장 비주얼과 흡사하다. 거의 그대로 갔다. 다만 '헤어스타일은 태리 씨가 편한대로 해주세요'라고 하셔서 고민했고, 예전에 찍은 화보들을 찾아보다가 올백을 했던 사진을 보게 됐다. '이 머리 괜찮은데?' 싶어 장선장 옷과 맞춰 봤더니 가장 잘 어울려 채택했다."
-장선장을 어떤 인물로 분석했고, 또 이해했나. "나는 장선장이 '대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다른 인물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하나의 큰 신념이 있다고 해야 할까? 다른 캐릭터들에게서 성장 과정이 보인다면, 장선장은 처음부터 뜻한 바가 명확한, 정의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생각으로 캐릭터를 구축해 나갔다."
-단 한명의 여성 캐릭터라는 점에 대해서는. "그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솔직히 생각하지 않았다. '단 한명의 여성 캐릭터니까 이건 해야 돼, 안 해야 돼' 그런 식으로 결정짓고 결론 내리지 않았다. '그냥 우리는 다 같이 사람이고 인간이고 그저 그 상황에 놓여진 사람이지!' 그런 생각으로 임했다."
-선배들과 호흡 맞추며 놀랐던 지점들도 있었나. "유해진 선배님은 '1987'에 이어 '승리호'까지 작품을 두 번 함께 했다. '1987' 때도 느꼈는데 '승리호' 때는 더 했던 것이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능력이 진짜 최고다. 선배님은 캐릭터를 굉장히 구체화 시킨다. '승리호'의 업동이는 사람 아니다. 때문에 그 캐릭터를 어떻게 발전해나갈지는 온전히 해진 선배님의 몫이었다. 목소리 연기 뿐만 아니라 모션까지 직접 하신다고 하셔서 얼마나 더 재미있고, 유쾌하고, 신선한 캐릭터가 될지 나 역시 기대가 컸다. 선배님의 애드리브가 업동이의 대사가 된 경우도 많다. '이 대사와 대사 사이에 이게 들어가면 잘 보여줄 수 있겠다'를 연구해 오시더라. 나는 그렇게 연기를 못하니까. 준비를 해오시지만 순발력도 좋아야하는 것 아닌가. 정말 매 순간 놀라웠다. 내가 너무 말이 많은가.(웃음) 중기 오빠, (진)선규 오빠도 좋았다. 이번에 처음 작품을 같이 해 봤는데 함께 하는 내내 즐거웠다. 정말 좋은 배우들이다. 특히 선규 오빠는 몸을 잘 쓴다. 액션이라는게 몸을 크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이 보이지만 제일 중요한건 다치지 않는 것이다. 뭉쳐지는 장면에서도 보여져야하는 동작과 가볍고 다치지 않게 움직이는 모습이 다르더라. 중기 오빠는 나와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는다. 근데 어른같이 느겨지는 사람이었다. '저런 어른스러움이 어디에서 올까' 했는데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화합하고 조화롭게 아우르는 모습이 탁월했다. 캐릭터로는 내가 장선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진짜 선장에 어울리는 사람은 중기 오빠였다. '큰 사람이다'는 것을 느꼈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첫 SF 영화를 경험한 배우가 됐다. "솔직히 아직도 어렵다. 현장에 가면 앞 뒤 양 옆에 아무것도 없었다. 막막하기도 했고, 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더라. 근데 옆에서 유해진 선배님이 '이게 뭐하는건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말을 듣고 '아,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라고 그나마 마음을 조금은 편하게 놨던 기억이 난다. 그땐 너무 어렵고 힘들었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아, 더 했어야 하는데! 내가 더 크게 반응 했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되는 지점들이 있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승리호' 뿐만 아니라 현재 촬영 중인 '외계인'도 SF 장르다. "너무 감사한 지점이다. 한국 영화계에서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두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는건 굉장히 감개무량한 일이다. 진심으로 운이 좋은 것 같다. 내가 이 순간 배우를 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것이겠지만 그 또한 기쁠 따름이다. '외계인'도 나오면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실텐데, '승리호'를 선택했을 때처럼 '외계인' 역시 내 얼굴로 그러한 장르에서, 스크린 안에 존재한다면 어떤 인물로 보여질까 궁금하고 기대된다."
-작품 혹은 캐릭터를 선택하는 김태리만의 기준이 있다면. "시나리오 내에서 인물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게 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나름 논리적으로 생각한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이건 좋을 것 같고, 저건 안 좋을 것 같고. 근데 진짜 마지막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결정하게 되는 것 같다. 딱 두고 보다가 '아, 모르겠어. 이건 하고싶어!'하면 선택한다.(웃음)"
-오랜만에 나선 공식석상이라 그런지 홍보내내 기분이 좋아 보이더라. "기분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긴장을 많이 해서 아주 혼자 방방 뛰었다. 지난해 '승리호' 첫 제작보고회를 했던 날에는 집에서 이불킥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왜 저랬지. 왜 저랬을까' 했다. 하하. 말이 많아지고 웃고 톤이 높아지면 어마어마하게 긴장한거다.(웃음) 배우들과의 케미도 말할 것 없이 좋아 반가웠던 것도 있다. 사랑과 농담, 애정과 구박으로 서로를 챙겼다."
-최근 공식 SNS 계정을 개설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웃음) 저 쪽에 회사 관계자가 있어서…. 하하. 사실 회사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시더라. '지금은 할 이유가 없다'고 해도 계속 말씀을 주셔서 회사 요청에 응해준 부분이 있다. 대신 회사와 약속한 것이 '사진은 나에게 컨펌을 받아라. 함께 고르자'는 것이었다. 일단 회사에서 올리고 있는데 사진은 나도 같이 고르고 있다. 아직은 그런 식으로 한다."
-데뷔 후 실패없는 필모그래피를 자랑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부담감도 생길 것 같은데. "'아가씨'를 찍을 때도 그랬지만, 찍은 후에도 정말 부담감이 없었다. 난 내가 잘 못할 것을 알고 있었고, 다음에 만나게 될 작품도 '나만의 힘이 아닌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인지했다. 그래서 '리틀 포레스트'와 '1987'을 할 때까지는 부담감이 크지 않았다. 외부 압박 보다는 나 스스로 나에게 주어진 인물을 분석하고 연기하는 것 자체에 대한 고민과 스트레스가 많았다. 근데 '승리호' 때 대외적인 시선에 대한 부담감이 엄청 크게 오더라. 솔직히 너무 부담됐다. '왜 나를 캐스팅 하셨지?' 싶기도 했고.(웃음) 넷플릭스에서 공개됐기 때문에 관객 수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부담감이 있었다."
-여전한 마음인가. "한번 크게 느끼니 또 놓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다가오는 것이나 열심히 하자' 싶다. 하하. 지금까지 해오던대로 시나리오와 캐릭터 분석에 대한 내적 고민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김태리가 생각하는 김태리의 매력은. "편안함…. 솔직함…. 꾸미지 않은 마인드? …하하. 창피하니까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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