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로 '플렉스'하는 IT 부호..김범수·김봉진 "재산 절반 이상 환원"

박수호·김기진·반진욱 2021. 3. 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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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격동의 시기에 사회 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 이상 결심을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식적인 약속이 될 수 있도록 적절한 기부 서약도 추진 중이다.”

2월 8일,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카카오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 담긴 내용이다. 이후 2월 18일에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아내 설보미 씨와 함께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 219번째 기부자로 등록됐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더기빙플레지는 2010년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시작한 기부 운동이다. 10억달러가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 이 중 50%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약속해야 회원이 될 수 있다.

▶1세대 IT 기업 수장 기부 봇물

▷김정주 1000억 기부 약속 매년 지켜

국내 기업인들이 잇따라 통 큰 기부 계획을 발표하며 주목받는다. 특히 1세대 IT 기업 수장들은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김정주 NXC 대표(넥슨 설립자)는 2018년 사재 1000억원을 내놓기로 약속한 후 매년 꾸준히 기부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2019년 대전·충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2020년 서울대 어린이완화의료센터 건립에 사재 100억원을 기부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기업은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허투루 한 말이 아니다. 2019년 국내 500대 기업 중 기부금 내역을 공시한 곳은 406개인데, 이 중 엔씨소프트는 매출액 대비 기부금 비중이 높은 기업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방준혁 넷마블코웨이 이사회 의장은 넷마블문화재단을 통해 장애인 지원에 적극 참여한다. 2019년에는 게임업계 최초로 장애인 체육 활성화, 사회 참여 등을 위해 ‘장애인 선수단’을 창단했다.

게임 ‘배틀그라운드’ 개발사로 유명한 크래프톤의 장병규 의장은 지난해 1월 18일 모교 카이스트에 100억원을 쾌척했다.

기업가들이 잇따라 통 큰 기부를 발표하며 주목받는다. 사진은 최근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사진 오른쪽)과 아내 설보미 씨(사진 왼쪽). <우아한형제들 제공>

▶IT 기업가 기부, 뭐가 다른가

▷특정 이슈 콕 집어 통 크게

IT 기업 리더의 기부는 전통 기업인의 기부와 무엇이 다를까.

가장 돋보이는 점은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김봉진 의장과 김범수 의장은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기부액은 김봉진 의장이 약 5000억원, 김범수 의장은 5조원가량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과거에도 기업 경영인이 거액을 기부한 사례는 있다. 일례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은 정몽구재단에 총 8500억원 규모 사재를 출연했다.

그러나 재계에서 사재를 털어 조 단위 기부를 한 것은 김범수 의장이 처음이다. 김봉진 의장 역시 재산 절반을 내놓기로 했다는 점에서 통 큰 기부라는 평가다.

회삿돈이 아닌 개인 재산을 내놨다는 점도 눈에 띈다. 그간 재계에서는 회사 차원에서 기부를 하거나 그룹사 내 사회 공헌 사업 부문 예산을 집행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전문가들은 개인 돈을 대규모로 쾌척하는 기업가가 하나둘 등장하는 이유로 인식 변화를 꼽는다. 창업자·경영자가 뛰어난 역량을 갖춰 기업이 성장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임직원과 소비자 그리고 사회 전체가 기여한 덕분에 성공했다는 인식이 확산돼 나타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석근 서강대 교수(사회적기업센터장)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사회 전체로부터 도움을 받아 기업이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경영인이 많다. 기부를 비롯한 이익 환원 활동 역시 자연스럽게 여긴다. 국내에서도 기업가의 의식이 선진화되면서 이익 환원에 적극 나서는 사람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SG 경영의 일환이라는 해석에도 무게가 실린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한다. ESG 경영은 단순히 돈을 버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배구조가 투명한 기업이 되는 데 힘쓰는 것을 가리킨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ESG는 필수다. 기부를 포함한 ESG 활동을 비용으로 생각하지 않고 투자로 여기는 추세”라고 말했다.

▶‘부정적 여론 무마’ 비판 여전

▷직원·소비자가 먼저라는 지적도

IT 창업자들의 잇따른 거액 기부에 마냥 긍정적인 반응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금액만 커졌을 뿐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비판적인 시선도 적잖다.

가장 큰 논란거리는 기부 시점이다. 왜 굳이 회사나 본인이 구설에 오른 후에야 기부를 하느냐는 것.

김범수 의장은 기부 의사를 밝히기 전 지배구조 이슈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당시 김 의장이 지분 100%를 보유 중인 카카오 2대 주주 지위의 회사 ‘케이큐브홀딩스’는 김 의장 처가 식구들이 돌아가며 대표를 맡는가 하면, 자녀들을 입사시키는 등 논란이 불거졌다. 한창 이슈화가 될 무렵 김 의장이 기부 의사를 밝혔고 케이큐브홀딩스 관련 의혹은 사그라들었다.

비단 김 의장뿐 아니다. 기부 선언 전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은 소유권 분쟁과 배달의민족의 수수료 횡포·독점 문제로 한창 논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국이 만들어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회사를 매각한 후 얻은 ‘배신의 민족’ 이미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채 여론의 십자 포화를 맞았다. 그러나 기부 의사를 밝히자 비판의 목소리는 급격히 가라앉았다.

사회 문제를 풀기 전에 본인 회사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비판도 나온다. 김범수 의장의 기부 선언은 카카오가 ‘인사평가 논란’에 휩싸이며 의미가 빛을 바랬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이 문제였다. 카카오가 인사평가를 할 때 직원들이 동료를 상대로 ‘이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냐’는 답변을 받는데, 답변 결과를 당사자에게 알리면서 압박과 스트레스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을 계기로 카카오 인사평가 제도에 대한 불만 글이 후속으로 올라오며 논란이 커졌다. 직원들은 ‘기부’보다는 카카오 ‘인사 제도 개편이 먼저’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계속된 질타에 카카오 측은 3월 11일 인사 제도 관련 간담회를 열기로 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역시 마찬가지다. 배달의민족 수수료 논란·갑질 문제 당사자인 자영업자와 라이더 처우 개선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빗발친다. 국내 최대 규모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이번 기부를 성토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5500억원을 기부한 것은 대단하지만 그 돈을 자영업자나 라이더를 위해 썼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글부터 ‘5500억원을 주고 명예를 산 것’이라는 극단적인 비판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기부 릴레이 이어지려면

▷기업인 의지 환영하는 분위기 필요

다소 비판적인 해석이 있다 해도 어쨌든 전반적인 평가는 긍정적이다. 기존 재계 오너들이 하지 못한 일을 젊은 자수성가 창업자들이 해내는 분위기를 반기는 인식도 팽배하다.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 문화의 가장 좋은 점이 한국에서도 본격화되고 있다고 본다. 김범수, 김봉진 의장이 공히 평소 생각을 실천(기부)에 옮긴 것이라는 점에서 창업 성공보다 더 크게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본다. 앞으로의 기부 트렌드는 기부자 자신이 뜻하는 바, 즉 좀 더 나은 사회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기부자의 방향을 존중해주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지마켓 공동 창업자 출신으로 최근 은행권청년창업재단 상임이사에 선임된 김영덕 디캠프 센터장의 총평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단순 물품이나 현금 기부에 그치지 않고 사회 문제 해결과 같은 좀 더 명확한 목적에 맞게 투명한 운용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양용희 서울신학대 교수(한국비영리학회장)는 “예전에는 사회 공헌 재단이나 단체에 자금을 전달하고 적절한 곳에 써달라고 일임하는 사람이 많았다. 요즘에는 ‘기후 변화 문제 해결’ ‘장애인 복지 개선’ 등 구체적인 이슈를 지정해 꾸준히 후원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최근의 달라진 상황을 전했다.

김정주 대표와 방준혁 의장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김정주 대표는 어린이 진료시설 확충에, 방준혁 의장은 장애인 복지 개선에 오랫동안 공들여왔다.

향후 기부자는 소속 기업과는 철저히 분리해, 개인 차원의 기부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공익법인의 회계 투명성을 평가하는 한국가이드스타의 박두준 연구위원은 “기업의 CSR은 기업의 특색과 연관시켜야 하지만 창업주나 오너 경영인의 개인 기부는 기업과 선을 긋고 철저히 본인이 ‘사회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려는 고민’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기부하는 이들을 존경하는 사회 문화가 조금 더 자리 잡힐 필요가 있다.

청년기업가정신재단을 설립, 적극 참여하고 있는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은 “과거 절세 혹은 편법 증여를 위해 재단을 활용해왔던 사례 때문에 (기업인의 기부 발표를) 안 좋은 시각으로 보는 이도 많다. 하지만 기부 행위를 두고 ‘좋다, 나쁘다’ 식으로 왈가왈부하면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기부 얼마나 활발한가

수조원 내놓는 자산가 수두룩

해외에서는 수조원을 기부하는 자산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첫손에 꼽힌다. 미국 공익 전문 매체 크로니클오브필란트로피에 따르면 제프 베이조스는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큰 금액을 기부한 인물이다.10억달러를 들여 ‘베이조스 어스 펀드(Bezos Earth Fund)’를 출범시킨 덕분이다. 베이조스 어스 펀드는 기후 변화 관련 연구·활동을 하는 과학자와 활동가, 단체 등을 지원한다. 이 밖에도 제프 베이조스는 푸드뱅크(음식 지원) 비영리단체 피딩아메리카에 1억달러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부문에서 사회 공헌 활동을 펼쳤다.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어린 리더 중에는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와 잭 도시 트위터·스퀘어 CEO가 돋보인다. 마크 주커버그 CEO와 아내 프리셀라 챈은 자신들이 보유한 페이스북 주식의 총 99%를 기부할 계획이다. 잭 도시 CEO는 지난해 4월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 피해를 입은 사람을 지원하기 위해 스퀘어 주식 10억달러어치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오랜 기간 사회 공헌에 힘써온 기업인으로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등이 있다. 빌 게이츠는 1994년 이후 지난해 상반기까지 500억달러 이상을 사회 공헌에 썼다. 워런 버핏 회장은 2006년 자산의 99% 이상을 환원하겠다고 공언했다. 그가 2006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기부한 금액은 약 370억달러다.

인터뷰 |양용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한국비영리학회장)

개인 재산 절반 이상 기부, 철학 없이는 어렵다

양용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내외 기부 문화를 집중 연구해왔다. 자원봉사활동, 비영리조직(NPO), 비정부조직(NGO) 등과 관련된 학술 연구를 진행하고 정책 개발하는 한국비영리학회 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Q. 최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 등 기업가가 통 큰 기부를 하며 주목받는다. 기부 행렬에 대한 생각은.

A 긍정적으로 본다. 한쪽에서는 경영권 승계 논란을 무마하기 위해, 혹은 기업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기부를 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단순히 이미지 개선을 위한 행보라고만 해석하기에는 금액이 크다. 회사 차원에서 사회 공헌 예산을 집행한 것이 아니고 개인 재산 절반을 내놨다는 점 역시 눈길을 끈다. 기업 활동을 통해 쌓은 부(富)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철학이 없는 기업가라면 하기 쉽지 않은 선택이다.

Q.해외 주요 국가는 기부 문화가 한국과 어떻게 다른가.

A 기부 문화가 가장 잘 정착된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에는 사회 공헌 재단 약 8만개가 존재한다. 이 중 90% 이상, 즉 7만개 이상은 개인이 기부해 설립했다. 그만큼 개인 기부가 활성화됐다는 뜻이다. 록펠러재단,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을 비롯해 인지도가 높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성과를 낸 곳도 많다.

과거에는 기부 자체에 의미를 두는 기업가가 많았다면 최근 들어서는 기탁한 돈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일지를 꼼꼼히 따져보고 기부를 결정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Q. 우리나라 기부 문화가 발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A 국내에서는 학교나 직장 등에서 압박을 받아, 혹은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부를 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기부는 자발적인 행동일 때 의미를 갖는다. 어릴 때부터 기부와 봉사 활동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구성하고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기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기업인이나 자산가가 좋은 취지로 거금을 쾌척해도 칭찬하기보다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박수호·김기진·반진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8호 (2021.03.03~2021.03.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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