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대란 낳은 부실행정? 강원도 주민들은 행복했다
[정덕수 기자]
▲ 눈이 그친 풍경 양양군의 남대천을 가로질러 놓인 여러 개의 다리 가운데 오래전 강릉과 양양군을 연결하던 이 교량은 이젠 양양군의 읍과 면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눈 내린 풍경이 평화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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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오후, 햇살이 좋아 오래전부터 나 홀로 복수초를 만나던 설악산의 한 골짜기를 찾았다. 제법 여러 날 매섭게 추웠고, 긴 겨울 가뭄이 들어 걱정했음에도 활짝 핀 복수초가 반가웠다.
▲ 복수초 2월 28일, 설악산에 핀 복수초가 활짝 웃는 얼굴로 반긴다. 이미 꽃이 핀 지 열흘도 넘었으리란 건 꽃들의 상태만 봐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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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도 겨울 가뭄이 오래 지속되면 흉년이다. 싹을 제대로 못 내기 때문이다. 두껍게 눈으로 이불 덮고, 호된 추위도 견뎌야 산나물도 튼실하게 잎을 내고, 들꽃도 제대로 피어 천상의 화원을 만든다.
▲ 3월 1일 오후 4시 새벽부터 줄기차게 쏟아지던 봄비가 오후로 접어들면서 눈으로 바뀌었다. 오후 4시 무렵 눈을 치울 생각으로 창고를 열었으나 연장이 마땅치 않아 근처 철물점에서 눈삽을 하나 산 후 시내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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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설 양양군 중심 도로인 군청에서 양양시외버스터미널로 이어지는 도로를 보면 차량이 움직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어 보이나, 눈은 쉼 없이 내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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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설 시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시외버스터미널 근처 커피숍으로 이동했을 때는 이미 오후 6시가 넘었다. 이때 고속도로는 연휴를 동해안에서 보낸 차들이 모이면서 제설작업이 원활하지 않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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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눈이 예전처럼 내리지 않는다. 과거에는 1m 이상 내리는 눈은 예사였고, 사나흘 그칠 기미 없이 퍼붓기도 했다. 설을 맞아 구룡령 아래 외진 산골에 있던 큰집에 차례를 지내러 가면 대보름이 지나도록 길이 안 뚫려 발이 묶였다.
당시 대보름을 지나 어쩔 수 없이 걸어서라도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는데, 산골짜기에서 버스가 들어오던 정류소까지 내려와서도 다시 40리(15km) 신작로를 터벅거리며 눈길을 걸었다. 그리고 친척 집에서 하룻밤 잠을 자고 다음 날 새벽 다시 얼어 버적거리는 눈길을 걸어 버스가 정차하는 가게까지 걸어갔다.
막 먼동이 튼 새벽에 버스를 탔던 게 엊그제 같건만, 아련한 옛이야기가 되었다.
▲ 폭설 긴 가뭄 끝에 반가운 눈이 내렸음에도 뉴스는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가 아닌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에 발이 묶인 차들에 대해서만 보도를 내보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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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돌아와 TV를 켰다. 뉴스에는 역시 그들만의 방식으로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기자는 "9시간 이상 도로에 갇힌 차량에서 운전자가 전화로 제설작업을 요청했지만, 폭설로 제설차량이 오지 못했다"고 했다. 제설차량이 폭설 때문에 고속도로로 진입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고속도로에 이미 들어가 뒤엉킨 차들 때문에 진입하지 못함에도 말이다.
"폭설엔 한계령을 넘는 44번 국도를 이용하라"고 얘기해도 "그래도 고속도로가 낫다"며 우기고 고속도로로 몰리는 그들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
뉴스는 농사를 짓는 이들이 트랙터로 눈을 치우거나 4륜으로 구동되는 소형트럭에 제설용 삽날을 달고 눈을 치우는 화면도 교묘하게 이용했다. 심지어 지게차에 버킷(BUCKET, 양동이)을 달고 눈을 치우는 건 양양군과 같은 지역에선 언제든 만날 수 있는 풍경인데도 말이다.
그러함에도 그들은 이를 모두 행정의 문제나 도로공사와 같은 기관의 문제로 만들어 버린다. 특정 지역을 화면으로 비춰주며 "여기는 지금 제설장비가 지원되지 않아 이렇게 작은 트럭으로 눈을 치우고 있습니다. 언제 길이 뚫릴지 모릅니다. 미리 대비하지 못한 행정의 무책임함에 주민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와 같은 말로 뉴스를 선정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 장독대 밤새 내린 눈으로 장독대 항아리가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굴려놓은 눈덩이처럼 바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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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내리는 아침 전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그칠 줄 모르고 내린 3월 2일 오전, 눈 치우기를 마친 후 골목을 둘러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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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설 차량이 소통할 수 있도록 군청은 소형 사륜구동 트럭에 삽날을 달아 밤새도록 눈을 치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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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오후 10시, 집에 들어오며 계단과 문 앞의 눈을 치웠는데 아침에 다시 발목이 빠진다. 장화를 신고 쌓인 눈을 다시 치우기 시작했다. 또다시 치운 자리에 눈이 쌓이겠지만, 한꺼번에 눈을 치우면 그땐 몇 배 더 힘이 든다는 걸 알기에 몇 번이고 반복해서 눈을 치웠다.
"산불 걱정, 물 걱정 한시름 덜었다"
▲ 폭설 차량과 사람이 통행하는 길부터 제설작업을 한 다음 가게 앞과 내 집 앞 눈들을 치웠다. 환경미화원이 눈을 맡아 치우는 도시와 달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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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설 골목마다 쌓인 눈은 도로와 인도를 확실하게 분리해 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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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설 차량을 이용할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눈을 치운 다음 차를 꺼낸다. 차량을 이용해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2~3일 정도는 눈 속에 그대로 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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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설 출근 하기 위해 눈을 일부 치워 놓았다. 골목마다 비슷한 풍경이다. 낮 12시 무렵이면 도로에 눈은 어느 정도 말끔히 정리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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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눈이 서서히 그쳐갔다. 한 번 더 눈을 치우면 봄기운이 알아서 눈을 녹여 주리란 걸 알기에 길을 나섰다.
▲ 제설작업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시장과 같은 곳은 장병들이 대민봉사를 나와 제설작업을 도와준다. 공무원들도 장비를 직접 사용하거나 빗자루와 눈삽을 들고 제설작업에 나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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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설작업 제설작업에 나선 장병들에게 사진 촬영을 해도 되겠느냐고 하자 "고맙습니다"라며 유쾌하게 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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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잔할 생각으로 터미널 근처로 이동하는데, 8군단 장병들이 지원을 나왔다. 군청 공무원들도 눈삽을 들고 나서서 길을 연다.
▲ 폭설 임시 제설작업을 한 길을 따라 이동했다. 1시간 정도 지나면 높게 쌓아 놓은 눈무더기들만 남기고 골목까지 제설작업이 진행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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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설작업 자동차정비소는 무거운 눈무게로 지붕이 주전앉는 사태를 막기 위해, 지붕에 올라 눈을 끌어 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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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눈삽으로 내 집 앞 눈을 치며 너나없이 "산불도 한동안 걱정 안 해도 되고 물 걱정 한시름 덜었다"고 말한다. "농사도 이젠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이만큼만 더 내리면 이젠 아무 걱정 없겠어. 겨울엔 눈이 내려야지"라고 말하며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 시외버스터미널 차량이 수시로 들고 날 수록 제설작업이 더디다. 양양시외버스터미널은 눈을 치워 놓아도 새로운 차량이 들고나며 눈을 떨어뜨려 지속적으로 눈을 치우는 작업을 진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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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설 오후로 접어들며 서서히 파란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도로는 차량이 소통하기 어렵지 않고, 곳곳에 높게 쌓인 눈더미가 엄청난 양의 폭설이 내렸음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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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설작업 도로와 인도 사이엔 높게 방호벽처럼 눈무더기가 자리 잡았다. 이 눈들은 군청에서 장비를 동원해 옮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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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코로나로 1년 넘게 답답한 생활을 한 이들이 봄꽃도 만나고, 시원한 바다도 만날 생각으로,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서기 좋은 시기다.
강원도의 동해안은 수도권은 물론이고 충청권에서도 백두대간을 넘어와야 한다.
3월에 눈이 자주 내린다는 건 그들에겐 복병처럼 여겨지겠지만, 지역 주민들이나 국가, 자연을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반갑고 다행스러운 축복이다. 산불을 방지하는 데 이보다 좋은 대책도 없다.
또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양양군에서 물을 얻어다 사용한 속초시는 제한급수 문제를 말끔히 해소했다.
돌아오는 주말에 또다시 눈이 내릴 거라는 예보가 있다. 동해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갈 때, 우리는 언제든 국지적인 폭설을 만날 수 있다. 이번과 같은 경우엔 교통통제를 따르고, 우회도로를 이용하는 게 더 안전하고 편하게 귀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면 좋겠다.
그리고 봄이라고 해도 4월까지는 차량에 체인이나 스프레이와 같은 월동장구를 반드시 갖춘 다음 나들이를 나서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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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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