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의 근거 없는 자신감, 밉지가 않았다
[조유리 기자]
▲ 무명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JTBC <싱어게인>의 최종 우승자 이승윤. |
ⓒ JTBC |
<싱어게인>이라는 방송이 눈에 들어온 것은 비단 첫 출연자의 무대 영상이 유튜브 조회수 1700만을 기록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가요(세대가 세대이니만큼 'K-POP'보다 '가요'라는 단어가 익숙하고 편하다)를 사랑하지만 언제부턴가 TV를 장악한 아이돌과 힙합에는 마음을 주지 못하고, 그렇다고 트로트에 눈물짓기에는 아직은 어리다(?)고 주장하고픈 40대로서 정말 오랜만에 취향에 맞는 음악 프로를 만났다는 것이 아마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두 번째로는 '음악 오디션=트로트'라는 공식이 만연한 최근 분위기에서 차별된 주제를 표방하는 용기와 과감성에 호기심이 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 차별된 주제라는 것이 '이미 한 번은 가수로 활동한 적이 있는 무명가수들에게 회생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니, 이 기획에서 인간에 대한 배려와 연민을 읽었다면 방송 프로그램 하나에 너무도 오버스러운 감정이입을 하는 것일까. 의도가 어떻든 이런 주제로, 이런 방향성을 지향한 <싱어게인>은 다른 건 몰라도 참가자의 다양성을 확보하는데는 성공을 거두었다.
다른 이들처럼 나도, 30호에 끌렸다
여러 참가자들 중 유독 내 눈에 띈 이는 다름 아닌 30호 가수, 이승윤이었다. 다름 아닌 우승자가 아니던가. 나도 안다. 이렇게 글의 주제로까지 삼기에 너무 뻔하고 대중적이라는 비난도 있을 것이다. 내가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그에 대한 정보는 차고 넘친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나 나름의 이유가 있기에.
그가 1라운드 경연곡으로 <허니>를 부를 때, 나는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 신들린 기타 리프를 이어가며 음악에 푹 빠져 노래한 그의 <허니>는 내 한창 어린(?) 시절의 애창곡이던 박진영의 댄스곡 <허니>가 아니었다. 도대체 어떤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지를 의미하는 MC의 질문 "이거 장르가 뭐죠?"에 그저 '이 장르는 30호'라며 자신의 번호표만 들어 보인 이승윤. 저 근거없는 자신감, 왜 밉지 않지? 그때부터 그에 대한 호기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 이승윤은 음악을 그만두기 전 마지막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싱어게인>에 출전했다고 말했다. |
ⓒ JTBC |
원래 덕질이란 진지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방송을 시청한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 부분들이다. 그러나 나에겐 인간 이승윤에 대한 관심을 지속하는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이유들이 있다. 쓸데없이 진지한가? 원래 진지함이 덕질을 부른다.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BTS의 팬클럽 '아미'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이제 막 이름을 알린 오디션 우승자에 대한 관심을 감히 BTS와 아미에게 비교한다고 비난받을까 두렵기는 하지만).
①인간에 대한 배려와 연민
이승윤은 한 인터뷰에서 2014년 나라에 큰일이 있어서 음악을 그만두려 했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큰일'은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다. 희생자에 대한 슬픔이 얼마나 컸기에 음악까지 그만두려 했을까 싶은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리고 다행히도 그는 그 감정을 음악을 통해 극복한 듯하다. 그의 자작곡 <기도보다 아프게>는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과 위로를 담고 있다. 절절한 가사에서 그의 가슴 저린 진심을 읽을 수 있고 그의 다른 노래에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이 많이 묻어나있음을 알 수 있다.
② 평범한 개인에 대한 관심
'헤이 미스터 갤럭시 / 뭐 그리 혼자 빛나고 있어 / 착각은 말랬지 / 널 우리가 지탱하고 있어 / 별과 별 사이엔 / 어둠이 더 많아'라고 말하는 그의 곡 <게인 주의>나 '방 안에 가득히 내가 사랑을 했던 / 사람들이 액자 안에서 빛나고 있어 / 죽어서 이름을 어딘가 남기기 보단 살아서 그들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러 볼래'라는 내용의 <달이 참 예쁘다고>의 가사까지 파고들지 않더라도, 그가 세미 파이널의 경연곡으로 BTS의 <소우주>를 택했던 것만으로 이미 그의 '평범한 개인에 대한 관심과 존중'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이런 그의 태도가 빛나는 스타가 되지 못한 무명가수로서의 시간을 합리화하는 건 아닐까, 살짝 의심도 해보았다. 설령 그게 맞다 해도, 그는 그 억울함을 '스타가 되겠다'는 목표로 해소하려 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 자연스러운 마음을 음악 자체에 오롯이 담아내며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음악은 이제, 이 세상 수많은 '빛나지 않는 평범한 개인'들 한 명 한 명의 마음에 다가가 울리고 있다.
③ 경계의 애매함
지금은 그야말로 '캐릭터 홀릭'의 사회다. 연예인 뿐 아니라 많은 취업준비생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좀 우스운 것은, 우리나라 교육계야 말로 획일성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럽고 학창 시절 내내 학생 개별의 내적 욕구에 대해서는 절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부나 하라고 강요하는 환경인데, 그 교육을 받고 자라난 젊은이들이 사회 진출을 앞두고는 자신만의 캐릭터 구축을 강요받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자신만의 뚜렷한 매력이 없으면, 색깔이 분명한 모임에 속해 있지 않으면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냐고 추궁받기 십상인 이 사회에서 이승윤은 당당히 '나는 경계가 애매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정도 임팩트를 주는 애매함이라면 나도 애매한 것이 낫겠다'고 유머러스한 경의를 표한 MC의 말처럼 다양한 음악을 포용해서 '제대로 애매한' 음악을 완성한 그가 애매함을 견디지 못하는 파벌의 사회에서 이제, 제대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④ '나 자신'을 유지해 온 용기
가장 안쓰럽고도 존경스러운 것은 그가 '음악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 온 10년이라는 시간이다. 개인적으로 'Be Myself'는 최근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인데, 모나면 정맞을까 두려운 교육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자기 자신'으로 키울 수 있을지, 점점 스러져가는 인생의 절반을 나는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유지하며 늙어갈 수 있을지, 그게 가장 고민이다.
매달 월세 걱정을 하고 비빌 언덕을 찾아다니면서도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유지하려 했던 마음,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온전한 '나'를 지키려 애쓴 마음. 이승윤이 그 힘들었을 마음을 10년 동안이나 유지했다가 드디어 나타나 준 것, 그 마음이 지어낸 고운 음악들을 우리 앞에 펼쳐내 보인 것에 너무나도 감사하다.
이승윤은 인터뷰에서 이제는 더 이상 민폐를 끼치며 음악할 수 없다는 생각에 모든 도전을 다 해보고 작년 말, 과감히 음악을 그만둘 생각이었고 <싱어게인>의 출전도 그 마지막 도전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싱어게인>에서의 그의 무대는 음악을 그만둘 핑계로 삼은 무대치고는 지나치게 훌륭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절박함이 후회없는 실력발휘를 하게 했을까? '변명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무대에 선 그에게서 10년 내공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니, 그만둘 마음으로 <싱어게인>에 출전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 이승윤은 준결승 무대에서 평범한 개인들의 소중함을 다룬 BTS의 <소우주>를 열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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