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민의 사이언스빌리지] 알루미늄 캡슐의 명암

최동현 2021. 3. 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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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회사들 공정무역 원두 등 강조
친환경 이미지 메이킹 속 불편한 진실
한 해 버려지는 커피캡슐 최소 8000t
김병민 과학저술가

우리는 지금 안전한 걸까요?

대한민국은 ‘커피공화국’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닐 정도로 국민 대다수가 커피를 즐깁니다. 필자도 하루의 시작에 커피가 늘 있고 날마다 평균 서너 잔을 마십니다. 커피 애호가들의 고민은 비슷합니다. 유명 음료 매장의 커피값은 어지간한 밥값에 달하고 저렴한 인스턴트커피는 커피 본연의 맛을 느끼기에 다소 부족하죠. 게다가 바쁜 삶에서 원두를 직접 갈아 내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쇼핑몰에서 고가의 에스프레소 기계를 구경만 하지 구매는 망설이기 일쑤입니다.

캡슐커피는 이런 고민의 지대에서 탄생했고 욕구를 빠르게 채웠습니다. 매장 커피 가격의 반의반에도 미치지 않는 비용으로 에스프레소는 물론 다양한 커피 맛을 즐길 수 있게 했죠. 게다가 편하고 품격마저 지킬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런 소비를 친환경적 행위로 연결합니다.

판매 기업 광고에서 농부의 행복한 미소를 보게 됩니다. 광고는 열대우림의 커피 농장과 협력해 친환경적으로 재배된 원두를 공정무역으로 거래하고 공급망 사슬 끝에 우리 자신이 놓여 있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소비자에게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기업 이미지와 자신도 이 숭고한 활동의 참여자라는 인식이 각인되죠. 이보다 좋을 수가 없습니다.

최근 기후변화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지속 가능한’입니다. 지구 환경이 나빠짐으로써 지금까지 인류가 누린 모든 풍요로움이 멈출 수 있다는 경고장을 받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속 가능함을 위한 어떤 행위도 구원의 행동이 됩니다.

사실 기업의 정책 변화는 개인의 노력보다 파급효과가 큽니다. 세계에 촘촘하게 얽힌 기업의 공급망 사슬에서 기업의 선한 변화는 짧은 시간에 괄목할 만한 환경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어느 글로벌 음료 프랜차이즈의 플라스틱 부품 하나가 종이로 바뀐 게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숭고한 선언이 된다는 겁니다. 비록 미미하지만 사람들을 계몽하며 깊숙하게 숨겨져 보이지 않던 근원적 고민도 꺼낼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류는 여전히 영리하고 지속 가능이라고 외치는 지점에서조차 욕망을 멈추지 않고 숨겨놓기도 합니다.

열대우림의 소멸은 더 이상 새롭지도 않습니다. 2019년 아마존 우림에서 화재가 산발적으로 발생했죠. 화재는 1년 이상 계속됐고 결과적으로 일본 규슈 지역의 넓이와 맞먹는 자연을 잿더미로 바꿨습니다. 화재는 기후변화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개발을 위해 인위적으로 일으킨 방화라는 것이 대체적인 판단입니다. 그리고 동토 지대인 아이슬란드가 공장과 댐 건설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내가 마시는 커피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각 가정 단위로 이뤄지는 재활용 분류 중에서 유일하게 다뤄지는 금속이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분리배출에 참여했다면 쉽게 알 수 있는 물질이죠. 하지만 아무도 질문의 형태로 옮기진 않았습니다. 많은 금속 중에 왜 알루미늄만 유일하게 재활용될까요? 금속이 희귀해서일까요? 기실 알루미늄은 지구에 풍부합니다. 산소·규소에 이어 세 번째로 풍부하죠.

캡슐커피

알루미늄 원료 채굴 위해 열대림 소실
연간 5억t의 이산화탄소 대기로 뿜어내
제련공정에서 나온 중금속 토양·물 오염

잘 알려진 음료 캔이나 포일, 은박 포장재가 알루미늄입니다. 합금으로 확장하면 일상에서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알루미늄을 재활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알루미늄 재활용에 드는 에너지가 채굴로 순수 알루미늄을 추출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5%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1743~1794)는 백반(alum)에 미지의 금속이 함유돼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이 금속의 강한 산화성 때문에 순수 금속으로 분리하기 어려웠습니다. 이후 반세기가 지나서야 덴마크의 화학자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1777~1851)는 최초로 순수한 알루미늄 분리에 성공했죠.

알루미늄 제품은 지금이야 쉽게 접하지만 한때 금이나 은으로 만든 제품보다 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유럽 귀족들이 손님을 맞이할 때 최상급 예우로 내놓은 식기가 알루미늄 제품이었죠.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은 당시 순수 알루미늄 추출 공정에 엄청난 비용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이라고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건 아닙니다. 19세기 말 홀-에루 추출 공정(Hall-Heroult Process)이 만들어지면서 비용은 획기적으로 줄었죠. 홀-에루 방식은 미국의 화학자 찰스 마틴 홀(1863~1914)과 프랑스의 발명가 폴 에루(1863~1914)가 효율적으로 순수 알루미늄을 추출하기 위해 발명한 공정입니다. 이 공정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공정은 전기분해 방식입니다. 문제는 1㎏의 알루미늄을 생산하는 데 약 15㎾의 전력이 소모될 정도로 아직도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는 거죠. 알루미늄산업은 전체 생산비용 중 전력요금 비중이 최대 40%에 이르는 에너지 집약 산업입니다. 알루미늄 1t 생산에 2인 가구가 5년 넘게 사용할 수 있는 전기가 필요한 셈입니다. 알루미늄 수요는 계속 늘어 세계 전기 소비량의 3%를 알루미늄 생산이 차지할 정도입니다. 이상적이긴 하나 수학적으로 계산해보면 모두 재활용할 경우 전기 소비량을 0.15%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재활용 분리수거장에서 커피 캡슐과 관련해 어떤 행동도 취해지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특정 기업의 작은 커피 캡슐은 알루미늄 소재입니다. 물론 기업이 별도로 수거한다지만 그 양은 미미합니다. 버려지는 소모성 제품의 양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해 버려지는 커피 캡슐 쓰레기만 최소 8000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재활용되지 않으면 결국 광석으로부터 제련해 금속을 얻어 공급해야 합니다.

결국 기업은 공급을 위해 세계 굴지의 알루미늄 생산업체와 협력합니다. 알루미늄의 원료 광석인 보크사이트를 채굴하려면 땅이 필요하죠. 매장량이 많은 호주·기니·브라질·인도네시아의 거대한 열대림을 없애야 합니다. 필요한 전기는 댐을 건설해 수력발전으로 얻게 됩니다. 알루미늄 1t을 생산할 때 평균 8t의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뿜어집니다. 연간으로 따지면 5억t, 세계 배출량의 2%에 달하는 양이죠. 게다가 제련 공정에서 나온 중금속은 인근 토양과 물을 오염시킵니다. 인류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숲과 동토 지대가 파괴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물질은 결핍의 대상이었습니다.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죠. 이후 인류는 두 차례에 걸친 지옥 같은 전쟁으로 많은 산업을 일으켰습니다. 세계적으로 알루미늄산업은 폭탄·항공기 수요를 맞추기 위해 고성장했죠.

지옥으로부터 탈출한 인류는 소비경제 복구 과정에서도 알루미늄산업을 놓지 않았습니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물질은 풍부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앞선 세대가 귀하게 여긴 물건을 모두 알루미늄으로 바꾸고 한 번만 쓰고 버릴 수 있게 변형시켰을 정도입니다. 인류의 품격 있는 삶을 잠시 채우고 눈앞에서 바로 사라져버리게 한 것이죠. 과거의 시간을 끌어다 한꺼번에 소모하는 플라스틱의 철학이 알루미늄으로 옮겨졌습니다. 플라스틱도 문제이지만 알루미늄은 여전히 포장재산업에서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인류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까지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부산 강서구 부산시자원재활용센터에 각 가정에서 배출된 플라스틱 등 재활용 폐기물 분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맛과 향 만족 가성비 좋은 '캡슐커피'
환경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비싼 커피

이런 일은 1차원적 시선에서는 대부분 숨겨져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입체적으로 보면 캡슐커피는 커피 중 가장 비싼 커피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은 커피뿐 아니라 삶의 풍경, 편리함과 품격 등 거기에 녹아든 전체를 누리는 대가입니다. 우리가 이 모든 풍요를 누리기 위해 지불한 비용의 영수증에는 보이지 않지만 과거의 시간을 끌어다 쓰고 미래를 복구할 대출금 숫자도 들어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진정 얻고자 하는 물질 외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물질이 우리가 지속 가능하다는 문구로 그렇게 애쓰며 지키려 하는 대상을 파괴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속 가능함을 위한 행위 선언은 우리 자신부터 해야 합니다. 커피를 마시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캡슐을 모으고 김밥 포장 포일도 세척해 모아야지요. 하지만 실행이 잘 안 되지요. 나의 작은 행위로는 선언은 물론 구원도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가정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나 아주 멀리 있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 자발적으로 희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이미 자본과 경제 논리 위에 놓인 영악한 자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정말 안전한 걸까요?

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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